영화산업 구조개선 요구 영화인 서명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4관왕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 던졌던 아름답고 뼈아픈 수상 소감입니다. 모든 한국 영화인들은 봉감독의 쾌거에 환호와 찬사를 보내면서, ‘97% 독과점의 장벽’에 갇힌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제2, 제3의 봉준호는 나올 것인가?

○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CJ·롯데·메가박스의 멀티플렉스 3사는 현재 한국 극장 입장료 매출의 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사는 배급업을 겸하면서 한국영화 배급시장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성장해가던 2000년대 초중반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입니다.
배급사는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제작비를 투자하고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 유통하여 매출을 회수합니다. 그렇게 회수한 돈은 영화에 재투자되면서, 제작자, 창작자, 배우, 기술진,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는 기준선이 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극장과 결합된 배급사들이 부당하게 극장을 살찌우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극장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부율을 조정하고, 무료초대권을 남발해 영화의 매출을 갉아먹고, 상영관 내 상품광고수익을 독식하고,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광고홍보비를 배급사에 떠넘기는 등* 그들의 불공정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조화로운 산업이었다면 배급사가 이러한 극장의 폭주를 견제하면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겼을 겁니다. 그 돈은 영화제작으로 환원되었을 것이고요. 그러나 상영과 배급을 겸영하는 그룹 차원에서는 극장체인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래서 계열 배급사들은 극장의 폭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방기하고 있고, 이러한 방기로 인해 미래의 봉준호들이 반지하를 탈출하는데 쓰일 자금이 착착 극장으로 흡인되고 있는 겁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에 갇혀 있다고 비판받는 미국은 이미 1948년 배급·상영업 겸업을 금지(파라마운트 판례)했습니다. 당시 판례는 지금도 유효하여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겸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도 제119조 제2항(경제민주화)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겸업 제한’을 요구합니다. 예컨대, 배급업을 겸하는 극장체인은 일정 시장점유율 이상의 극장을 경영할 수 없도록 하는 겁니다. ‘겸업 제한’을 통해 ‘97% 독과점의 장벽’을 해체하면, 배급사는 배급사다워져 극장의 폭주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장도 극장다워져 개별극장을 찾는 관객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겁니다.

○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극장들은 단기간에 관객이 몰리는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스크린 독과점 행태는 도를 지나쳤습니다. 지난해 한 인기 영화의 경우, 무려 81%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상영작은 총 106편이었습니다만, 한 영화가 상영횟수의 81%를 독점한 겁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도 스크린에 걸릴 기회조차 얻기 힘든 미래의 봉준호들은 씁쓸하고 허기진 반지하를 탈출할 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프랑스는 「영화영상법」과 「편성협약」을 통해 8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에서는 영화 한 편이 일일 상영횟수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한 영화에 일일 최다 4개 스크린만 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한 영화가 다양한 기호의 관객들과 만나는 것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크린 상한제’를 통해 대형영화는 영화의 질에 비례하여 관객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고, 소형영화에게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관객의 영화향유권은 더욱 확장되게 됩니다. “스크린 독과점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젠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독립·예술영화는 영화의 모태입니다.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상영이 활성화되어, 건강한 영화산업생태계를 만듦과 동시에 관객의 영화향유권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개봉된 독립·예술영화는 전체 개봉 편수의 9.5%에 달하지만, 관객점유율은 0.5%에 불과합니다. 오늘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2000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제작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봉준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영화법」을 개정을 통해, 멀티플렉스에 독립·예술영화상영관을 지정하여 해당 상영관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독립·예술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일수의 60/100 이상 상영하도록 하고, 국가는 해당 상영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부귀와 영화(榮華)만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회의 아픔과 꿈을 담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실험 영화들이 활발히 만들어지고, 공유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큰 나무만 들어찬 독과점의 숲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작은 풀과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는 숲에서만이 큰 나무도 커나갈 수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가치의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향유해야 할 건강한 영화생태계를 위해 작은 영화들이 함께 자라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합니다.

○ “인간은 창의적인 존재들이기도 하죠.”

이번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 소감 역시 우리에게 영화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되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늘 다른 이슈를 가지고 싸우는 것 같지만, 제가 보기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 우린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거죠.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인종, 하나의 젠더가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그 신념에 저항하는 싸움을 말하는 겁니다. …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 하지만 인간은 매우 창의적인 존재들이기도 하죠. 인간은 지구의 모든 존재들을 위해 유익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가칭)포스트 봉준호법」을 통해 ‘97% 독과점의 장벽’을 넘어 모두에게 유익한 영화생태계를 창조하는데 우리 모두 ‘함께’ 나가고자 합니다.

2020년 2월 17일

○ 1차 서명자 (59인)
강유정(학술), 권영락(제작), 권해효(연기), 김경형(연출), 김병인(시나리오), 김상윤(제작), 김소영(학술), 김형구(촬영), 김혜준(정책), 낭희섭(독립영화), 문성근(평창영화제), 문소리(연기), 박광수(연출), 박경신(학술), 박철민(연기), 박헌수(학술), 박현철(촬영), 방은진(연기·연출), 배장수(정책), 송길한(시나리오), 신철(부천영화제), 심재명(제작), 안병호(노조), 안성기(연기), 양기환(정책), 오동진(평론), 오성윤(애니메이션연출), 원승환(독립영화), 유영아(시나리오), 이민용(연출), 이범수(연기), 이용관(부산영화제), 이은(제작), 이장호(연출), 이정호(학술), 이준동(전주영화제), 이창동(연출), 이창세(학술), 임권택(연출), 임순례(연출), 장윤미(시나리오), 전영문(제작), 전철홍(시나리오), 정상민(제작), 정우성(연기), 정윤철(연출), 정지영(연출), 정진영(연기), 조근식(학술), 조진웅(연기), 주진숙(영상자료원), 최관영(시나리오), 최용배(제작), 최윤(제작), 최정화(제작), 편장완(학술), 한기중(연출), 한선희(제작), 황조윤(시나리오).

* 선언에 참여한 명단은 <영화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되고, 국회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 주변 영화인들에게 이 구글선언 링크를 보내주시고, 함께 힘 모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선언 1차 마감 : 2020년 2월 25일(화), 12시까지
* 개인정보는 선언 관련 공적 목적 이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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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업 배급사가 방관하는 극장의 대표적 불공정행위.
● 일방적인 극장 부율: 극장매출을 극장과 배급사가 보통 5:5로 나누지만, 상영 기간이 늘어날수록 극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율을 요구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일방적인 분배방식을 강요합니다. 이에 대응해야 할 배급사들은 순응할 뿐입니다.
● 무료초대권 남발: 극장들은 극장 명의로 무료초대권을 뿌리는데, 이는 극장 내 매점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영화의 매출을 희생시키는 행위입니다. 배급사는 이미 개봉 전에 구전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료시사회를 진행했습니다. 따라서 개봉 후 무료초대권은 극장을 위한 것일 뿐임에도 영화에게 매출 감소를 강요하는 겁니다. 무료초대권은 극장매출의 5%나 됨에도 불구하고 배급사는 침묵만 지키고 있습니다.
● 상품광고수익의 독점: 극장은 입장권에 고지된 영화 시작 시각부터 10분간 일반 상품광고를 상영하고 그로 인한 광고수익을 벌어들임에도 이 수익은 극장이 독차지합니다. 해당 광고수익은 특정 영화를 보기 위해 착석한 관객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해당 영화와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임에도 배급사들은 일절 요구하지 않습니다.
● 광고홍보비 전가: 상업영화 평균 광고홍보비 25억 원 중 극장 측이 부담해야 마땅한 비용을 배급사가 부당하게 떠안는 금액은 무려 6억5천만 원에 달합니다.
● 디지털영사기비용(VPF) 전가: 극장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영사기. 그러나 극장은 디지털영사기 구입비의 80%를 배급사에 부당하게 부담시켜왔습니다. 지금도 CGV신촌아트레온, 롯데시네마잠실월드타워, 메가박스코엑스 등 133여개관은 영사기사용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900만 명 이상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가 3편이나 나오면서, 한국영화 극장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극장매출로만 계산한 상업영화 45편의 평균 수익률은 –21.3%입니다. 이는 배급사의 무능한 투자와 극장의 폭주가 빚어낸 민낯입니다. 만약 배급사가 전언한 극장의 폭주만 방기하지 않았어도 흑자로 돌아섰을 겁니다.

** 우리나라 극장매출 상위 10편의 합계가 전체 극장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인데, 미국은 33%, 일본은 36%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스크린 독과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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