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하고도 실질적인 보상으로써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시기를 재판부에 탄원합니다.

 2012년 여름 형제복지원 피해자 중 한 사람이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시민사회 차원의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목적으로 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안이 2014년 처음으로 국회에서 발의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TV 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이 꾸려졌으나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가운데 법안 통과도 좌절되면서 대책위 활동도 소강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같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마저도 벅찬 상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성장을 위한 롤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활동가 중심의 지원운동(advocacy movement)은 차츰 당사자 운동으로 바뀌어갔고 2017년부터는 피해생존자모임을 중심으로 한 특별법제정운동이 전개돼 나갔습니다.

그뒤 부산 형제복지원 터에서 서울의 청와대 앞까지 국토대장정을 자력으로 기획해 실행에 옮겼고 국회 앞 노숙농성을 3년 가까이 전개했습니다. 조직을 정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광화문 지하보도에 차린 서명대에서는 행인이 분뇨를 뿌리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추위와 더위, 혐오와 모욕을 이겨내고 계속해 나아갔습니다.

특별법 제정은 예산을 이유로 보류되다가 20205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과거사법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진상조사 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배·보상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건에 대한 국가책임이 밝혀지더라도 피해자들의 억울한 삶이 보상받을 길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법적 결여를 뚫고 피해보상의 길을 연 것은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국가나 시민사회가 아니라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직접 민사소송을 통해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길을 찾은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가 생각해냈고 스스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길고긴 재판 결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고물가저성장의 경제가 국민생활을 힘들게 하고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가운데 나온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런 소식도 함께였습니다. 청구액이 대폭 삭감됐다는 것, 그리고 법무부에서 곧바로 항소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더욱 슬픈 일도 뒤를 이었습니다. 부산지법에서 소송을 진행해 2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한 명이 작년 7월 이미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그의 죽음은 다른 피해자들이 재판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수소문하면서 3월초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최종 승소하더라도 아무런 연고가 없기에 보상금은 국가에 귀속된다고 합니다. 살아서 억울했는데 죽어서도 억울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가족을 찾지 못하거나 가족을 찾더라도 동화되지 못한 채 세상에서 또 다시 버려져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기간 동안 연 8천만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무부는 이마저도 많다고 항소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이 감금 기간 동안 잃은 것은 생명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보상은 다른 어떤 경우의 형사보상금보다 적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부당하게 겪어야 했던 고통은 감금된 기간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감금된 수년간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면 1987년 풀려나고 나서도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피해자들은 감금 기간뿐 아니라 인생 전체를 박탈당했고 박탈당한 그 기간 내내 인간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있던 몇 년의 시간 때문에 사회적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훼손되거나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풀려나서도 사회는 물론 가족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외면과 기피, 혐오뿐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1987년 형제복지원의 문이 열리고 그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뒤로도 계속, 그들 주위에는 착취하고 약탈하려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염전노예로 잡혀가거나 고기잡이배에 팔려가는 피해자도 있었고 임금 갈취와 구타는 사소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인간이 아닌 짐승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들이 전개한 진상규명운동은 스스로가 짐승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이자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사회가, 그리고 재판부가 그들을 인간 아닌 짐승으로 살게 한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판결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임의 소재뿐만 아니라 책임의 크기도 적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었던 기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살아야 했던 기간, 그리고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세월을 보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억만금을 주더라도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과거 우리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저지른 일이 얼마나 지독한 야만이었는지 늦게나마 알았다는 것을 증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늦었지만 국민들을 부끄럽지 않게 해주시기 바랄 따름입니다.

모든 잘못이 국가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끌려갈 때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19871, 형제복지원 5백여 명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도 국민들은 독재 타도대의를 위해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고 방관만 했습니다. 2012년 국회 앞 1인 시위를 시작한 것, 민사소송으로 스스로를 구제하고자 한 것도 형제복지원 피해자 자신들이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아직까지 그들에게 어떠한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판부에 탄원합니다.

피해자들을 외면한 국가와, 국민과, 역사를 대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라도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해자들이 인간이 아닌 채로 겪어야 했던 모든 시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시간이었다는 것을 판결로써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국가, 그리고 국민이 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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