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년, 역사와 헌법을 다시 생각한다-자유, 평등, 민주,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선언>

Ⅰ. 해방 70년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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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날이다. 일제가 조선 침략의 포문을 열었던 1875년 운요호(雲揚號)사건으로부터 70년이 지난 1945년에 우리는 해방을 맞이하였고, 그로부터 다시 70년이 흘렀다. 1945년 이전의 70년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반침략 민족해방운동의 시기였다면, 해방 이후의 70년은 냉전체제에 편승한 권위주의 폭압에 저항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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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세력과 외세의 침탈에 맞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농민군의 반봉건·반침략 투쟁은 의병전쟁으로 계승되었으며, 전국적인 의병들의 대일항쟁은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에 타격을 주어 강제병합을 지연시켰다. 1919년의 3·1운동은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그 결실인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거족적인 요구를 수렴하여 민주공화제를 선포함으로써 처음으로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우리의 민족해방운동은 민주주의운동과 불가분의 관계로 전개되었다. 1941년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앞두고 해방 후 건설할 민족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건국강령>을 발표하였다. 임시정부를 단일한 민족협동전선체로 재편하여 항일대오를 공고히 하고 나아가 곧 맞이할 해방에 대비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가담함으로써, 민족해방운동 진영 내의 이념적 갈등과 조직적 분열을 넘어 좌우세력이 연합한 통일전선정부의 토대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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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해방이 되었으나 식민지배는 분단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우리 민족에게  남겨 놓았다. 미소 양군이 남한과 북한에 각각 진주한 것은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다. 민족분단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냉전이 열전으로 분출한 첫 사례인 한국전쟁은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비화하였으며, 종전이 아닌 정전으로 일단락되었다. 한국전쟁은 38도선을 다만 휴전선으로 바꾼 채 막을 내렸다. 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인적 물적 피해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고 참혹하였다.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다. 또한 남과 북이라는 지리적 분단을 고착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민족과 사회 내부도 적과 동지로 분단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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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하였다. 그 여파로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체제가 들어서고, 자유민주주의의 외피를 쓴 ‘냉전반공주의’가 횡행하였다. 자유민주주의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의 원리,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민주적 선거제도,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운영하는 경제질서, 사법권의 독립 등을 구성요소로 하는 정치원리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통념화한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 다원성과 다양성의 존중을 기본으로 하는 본래적 의미의 자유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역대 독재정권이 조직적으로 수행한 오랜 세뇌의 결과, 자유를 반공으로 민주주의를 반공주의와 동의어로 오용하는 개념 실종이 일반화하게 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냉전반공주의와 동일시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잇따른 개헌으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으면서 장기집권한 독재자인 이승만과 박정희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포장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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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와 분단이 남긴 후과는 한국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오랜 기간 친일세력에 기반한 독재정권이 냉전체제에 기대어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농단하였다. 그러나 각성한 민중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엄혹한 시기에도 1960년 사월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등을 통해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진전시켜 왔다. 지금 비록 일시적으로 역사의 퇴행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는 신념을 함께 하며 나아갈 것이다. 이제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한반도에서 자유, 평등, 민주, 평화의 물결이 넘쳐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제정된 제헌헌법과 민주화운동의 이념을 바탕으로 개정한 현행 헌법에 담겨있는 핵심가치들을 재조명하여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으로 삼고자 한다.
 
-중략-

Ⅱ. 대한민국 헌법과 그 정신

Ⅲ. 청산하지 못한 친일잔재

Ⅳ. 민주주의와 인권

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Ⅵ. 백년의 큰 계획, 교육

Ⅶ. 격변하는 동아시아 질서

Ⅷ. 평화통일을 향한 노력

Ⅸ.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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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는 탈식민과 탈냉전을 위한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엄혹한 일제의 식민지배 아래서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독립투사들, 정부수립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하여 헌신한 민주화운동가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닥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분단세력과 맞서 싸워온 통일운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어디 그분들뿐이겠는가? 비록 이름 석 자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았지만 각자 자신이 서 있는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해 온 분들의 노고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다. 그분들이 흘린 피와 땀에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앞선 세대들로부터 큰 빚을 졌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명실상부한 주권 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성하고,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민족 분단을 극복하여 평화통일을 이루며, 나아가 이웃 나라들과 상생하면서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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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해방 70년을 맞은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앞선 세대들이 꿈꾸던 모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전시작전권 문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안보문제마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미국에게 의존하는 것이 OECD 국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한편으로 온 겨레의 염원이던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친일파의 후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 세력이 되어 발호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청산과 역사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면서 노골적으로 이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다. 이로 인해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이나 독재정권하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중단된 상태이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또 다른 현주소이다.
정부, 여당, 사법부, 보수언론이 한 덩어리가 되어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헌법의 기본 정신인 자유와 평등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도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면목의 하나다. 거기에 더해 어렵게 일군 남북대화의 싹이 독버섯처럼 되살아난 반공과 냉전의 논리 앞에 무참하게 짓밟혀버리는 것이 평화통일을 헌법 정신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실제 상황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해방 70년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것이다. 해방 70년을 맞는 우리에게는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평화를 억압하는 권력과 체제를 거부하고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 단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무이자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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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민주, 평화를 향한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우리는 독립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정한 제헌헌법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에 기초하여 개정된 현행 헌법에 담겨있는 핵심가치들이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래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선언문 전문 보기 http://me2.do/x3pbmDJe

제안자
강만길(전상지대총장) 강성호(순천대) 고석규(전목포대총장) 구만옥(경희대) 곽건홍(한남대, 한국기록학회회장) 김귀식(전국교직원노동조합지도자문위원) 김남섭(서울산업대) 김동택(성균관대, 한국정치연구회회장) 김민철(경희대) 김삼웅(전독립기념관관장) 김서중(성공회대, 민교협공동의장) 김성보(연세대, 역사문제연구소소장) 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시업(성균관대명예교수) 김익한(명지대) 김육훈(역사교육연구소소장) 김정인(춘천교대) 김창국(변호사, 전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수(코리아연구원원장) 김태영(경희대명예교수) 김한종(한국교원대) 김희곤(안동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김희수(변호사, 전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상임위원) 노중국(계명대명예교수) 노중기(한신대, 교수노조위원장) 도면회(대전대) 도정일(전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장) 박거용(상명대,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박걸순(충북대,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박구병(아주대) 박옥주(전교조수석부위원장) 박윤재(경희대) 박재승(전대한변호사협회회장) 박찬승(한양대) 박현서(한양대명예교수) 변성호(전교조위원장) 서중석(성균관대명예교수, 역사문제연구소이사장) 성대경(성균관대명예교수, 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송기인(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주명(한신대, 민교협상임의장) 안병우(한신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안병욱(가톨릭대 명예교수, 전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양정현(부산대, 한국역사교육학회회장) 여인철(민족문제연구소운영위원장) 오동석(아주대) 원영만(전교조지도자문위원) 유승원(가톨릭대명예교수) 육영수(중앙대) 윤경로(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회장, 전한성대총장) 윤정옥(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지도위원, 전이화여대교수) 이강래(전남대) 이대로(초등교과서한자병기반대국민운동본부상임대표) 이동기(강릉원주대) 이만열(숙명여대명예교수, 전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호(전교조지도자문위원) 이병천(강원대) 이병휴(경북대명예교수) 이부영(전교조지도자문위원) 이수일(전교조지도자문위원) 이수호(전교조지도자문위원) 이시영(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영희(전교조지도자문위원) 이이화(전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이재승(건국대,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이준식(전친일재산조사위원회상임위원) 이지원(대림대) 이철(민청학련계승사업회공동대표) 이태수(꽃동네대학교) 이태호(명지대) 이해동(평화박물관이사장) 이헌환(아주대)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임경석(성균관대) 임종명(전남대, 역사학연구소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장병화(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석웅(전교조자문위원) 장완익(변호사, 전친일재산조사위원회사무처장) 장혜옥(전교조지도자문위원) 전기호(경희대명예교수, 전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명혁(동국대) 전형택(전남대명예교수) 정근식(서울대) 정동익(사월혁명회상임의장) 정연식(서울여대,역사학회회장) 정요근(덕성여대) 정용욱(서울대,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정진화(전교조지도자문위원) 정태헌(고려대) 정해구(성공회대) 정해숙(전교조지도자문위원) 조광(고려대명예교수) 조규태(한성대, 한국민족운동사학회회장) 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사무총장) 조인성(경희대) 조한경(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주보돈(경북대) 주진오(상명대) 최갑수(서울대) 최열(미술평론가) 최영태(전남대) 하일식(연세대) 한상권(덕성여대, 역사정의실천연대상임대표) 한시준(단국대) 한홍구(성공회대) 함세웅(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허수열(충남대) 홍석률(성신여대) 홍순권(동아대) 황민호(숭실대) 황보영조(경북대)(이상 1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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