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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방위고등학교

Earth Defence Force Highschool

© Studio Animal, 2003~ / yuptogun, 2011~

머릿말

이 이야기는, 지구의 평화를 실제로는 누가 지키는가에 관한 거대한 농담이다.

원래 90분 내지 100분짜리 장편 극장용 시나리오로 짰던 이야기를 1쿨짜리 TVA 시나리오로 바꾸다 보니 스토리 전개에만 260분을 소요하는 좀 늘어지는 듯한 시나리오가 됐다. 이 이야기가 만약 재미없다면, 그것은 순전히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었던 원래의 엄청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TV판으로 수정했기 때문이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못한 채 글로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분명히 재미있었다.

나머지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서사로 말하겠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농담은 아주 치밀하다.



원안

스튜디오 애니멀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서 카메라 줌을 아주 크게 당겨 잡으면, 저쪽에 조그맣게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보일 듯 말 듯한 거리에서부터, 어두컴컴한 무중력과 진공의 공간을 거의 일직선의 같은 속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도 그렇게 찾아왔듯이, 이번에도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각본

엽토군

화창한 화요일이었다.

지구방위고등학교 1학년 시공B반 교실은 창문을 있는 대로 다 닫고 있던 탓에 그 교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가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오른쪽 턱을 괴고 창 밖으로 눈을 고정한 시공생 표동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이다.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 들어오는 교실에서 혼자 무심하게 창 밖을 보고 있다니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다. 그리고 잠시 후 동철의 책상 서랍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창문 너머에서, 전학생이랍시고 교실 앞문을 열고 미소녀들이 등장할 것인가? 그런 일은 한국에서는 없다. 대신,

“조용히 안 해?”

수업시간과 쉬는시간을 혼동하고 미친 듯이 떠드는 3류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조용히 시키려고 애꿎은 교탁만 매질하는 미묘한 미모의 여교사가 있을 뿐이다.

동철은 그때에야 표정을 무슨 생각 비슷한 것이 났다는 표정으로 조금 바꾸며 교실 앞을 본다.

“조용히 하고 있었는데.”

감수

전경진, 김진혁, 허희정, 고지영, 장선녀, 조은수

쿠구구구구구구구...

그것은 낮고 육중하게 울리며 직감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소리를 내며 푸른 별 지구를 향해 가속도 서행도 하지 않고―음, 잠깐, 방금 내가 진공의 공간을 날아오고 있다고 했던가? 그러면 그것은 소리를 낼 수가 없겠군. 다시 말하겠다.

(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무음)...

그것은 별다른 소리는 안 내며 한결같은 속도로 푸른 별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협찬

디시인사이드 한국애니갤러리

동철이 고개를 반사적으로 앞으로 돌렸다가, 문득 오른편으로 시선을 옮겨 교실을 한 번 훑어본다.

국어 교과서를 구겨 판치기를 하는 놈들, 뛰어다니는 놈들, 불량식품 간식 먹는 놈들, 서로 낙서를 주고받는 놈들, 자는 놈들, 잠꼬대에 욕을 섞어 꽥 지르고 다시 자는 놈들.

음, 별일은 없다.

안심한 동철은 다시 앞을 본다. ‘교   훈’, ‘지구를 지켜라’가 걸린 액자 아래로 지구방위사를 가르치는 여교사 구지영이 서툰 솜씨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주의를 끈다.

“얘들아 집중 좀 해. 이제 끝났어. 정리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듣고 집중을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동철은 선생을 보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달리 볼 것도 없는데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두면 혼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을 뿐이니 무효라 하겠다.

교탁에 내려놓았던 분필을 급하게 집어들며 선생은 말한다.

“자 다시 정리해보자. 뭐랬지? 10여 년 전만 해도 외계인이나 UFO의 정체는,”

칠판으로 휙 돌아선 지영의 오른손이 칠판 가득 어지럽게 적힌 글자들 중의 ‘無’ 자에 닿자마자 분필은 그 글자를 동그라미 치고 선생이 말한다.

“없는 셈쳤다고 했지?”

교사의 말이 칠판에 적은 내용과 큰 차이 없이 겹치기 시작하면서 동철의 귀에 선생의 말은 점점 들리지 않았다. 칠판을 가만히 살펴 보니, 판서는 크게 3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고비에 관한 것이었다.

UFO. 외계인.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이것들은 이 세상에 ‘전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등장’한 일이 없었다는 이유로 과학계로부터 이미 귀납적 존재 증명을 하지 못했다는 최종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그 해 12월 3일까지만 말이다.

미 국방부는 그 날 있었던 일을 공식적으로 Invasion by Monster’s Falldown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지구방위사 교과서에 따르면, 그 날 “거대 외계도약체”가 서울 테헤란로에 낙하하여 2시간 가량 “축소”한 후 “급팽창”해 다시 날아갔다. 불과 9시간 동안 지구에 닿았다가 사라진 외계 생물은 우리에게만 25조 원 규모의 막대한 참사를 일으켰다.

당장 다음 해에 UN 직속 지구방위회의가 신설되었고, 전세계적으로 군비가 증강되었으며, 한미연맹은 한국전쟁 이후로 가장 강력해졌다. 우리나라는 그 외계도약체의 피해를 가장 적나라하게 받은 나라로서 특히 이 문제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국민들의 대처 역량을 강화하고 한미연합 및 지구방위회의를 위한 전력과 인재를 증강하는 목적의 특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지구방위고등학교’가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동철이 칠판의 세 번째 단쯤을 보고 있는데 마침 교사가 목청을 높인다. 아마 수업시간이 지났는데 종이 울리지 않아 마지막으로 속도를 높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너네가 이 명문 지방고에 다니고 있는 거잖니? 어때, 알아야겠지? 시험에 나오겠지?”

누군가가 핀잔을 준다. “몰라요.”

명문이었던 건 정말 한때였다. 그때 훈련은 본격적이었고 장비는 최첨단이었으며 학생들은 전세계의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에 ‘거대 외계도약체’는 오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렇게 지난 지 벌써 10년째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벌써 2027년인 것이다.

그리고 구지영이 무슨 핀잔인가를 더 주려는데 드디어 종이 울렸다. 선생은 급하게 교과서와 다른 소지품을 챙겨 나가며 마지막으로 잔소리를 한다. 사실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시끄러운 교실이었다.

“얘들아 제발 중간고사 준비 좀 해. 아무리 시공반이라지만, 응?”

누군가가 한 번 더 선생의 등을 떠민다.

“아, 어차피 또 시공반일 텐데요 뭐.”

이쯤 되면 그냥 빨리 나가는 게 상책임을 알고 있는 여교사는 앞문도 닫지 않고 1-시공B 교실에서 도망간다.

이제 이 학교에는 긍지도 없고 지구를 지킨다는 생색도 없다. 이제 지구방위고등학교, 줄여서 ‘지방고’는, 그냥 진학률 낮은 수많은 동네 골칫거리 3류 실업계 고등학교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말없이 지켜만 보던 동철은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아이씨, 공부를 하긴 해야 되네.”

혼잣말이 끝나려고 하는데 앞문이 세차게 탕탕거리며 옆 반에서 온 웬 놈이 “야 대박! 완전 대박!” 소리를 지른다.

동철도 그렇지만 웬만한 시공B반 학생들은 모두 다 그를 주목했다. 그가 뜸 들일 겨를도 없이 바로 결론을 말해 버린다.

“지금 신소희가 플래닛셰이커 얘기한대! 중대발표!”

교실이 순간 들썩이고 동철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눈치 빠른 몇 놈들이 창가로 뛰어왔다. 창가 자리에 앉은 동철이 그 주변 분위기를 한 발 늦게 파악하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을 때쯤, 이미 동철은 창 밖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하고 쳐다보려는 꼴통 시공생들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싸여 있었다.

간신히 밖을 확인하니, 세상에 무슨 싸구려 일본 드라마도 아니고 구령대 한가운데에 일렉기타를 멘 신소희가 마이크 하나 들고 위풍당당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분위기의 동급생이 포커페이스를 하고 서 있었다.

소희가 학교 창문에다 대고 왼손으로 특유의 삿대질을 해 가며 외친다.

“야 잘 들어!”

가뜩이나 우렁찬 기차 화통 목청에 교장 전용 마이크 라인을 사용하니 안 들을래야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오늘부로 플래닛셰이커에 베이스가 생긴다!”

애먼 동급생들과 선배들을 삿대질하던 소희의 왼손이 그 포커페이스로 휙 돌아간다.

따라서 모두의 시선도 그에게로 휙 쏠린다.

“송형직이라고 한다!”

쿵!

“이번 기말고사 직후에 한 건 할 테니까,”

쿠웅!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쿠구웅!

“이상!”

왠지 이리저리 카메라로 왔다갔다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임팩트의 외마디 연설이 끝나고, 신소희가 “가자.”라며 형직의 어깨를 툭 치고 마이크 라인을 정리하고 있는데,

“헉, 헉, 헥헥...”

3층에서 한걸음에 뛰어나온 표동철과 하형준이 구령대와 정문 사이에서 헐떡거리며 신소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맞다.”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입을 떼긴 뗄 건데 숨이 차서 둘 다 말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임을 파악한 소희가, 허리에 오른손을 얹으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일러준다.

“내가 너네한테 먼저 말하는 걸 깜박했네.”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애니멀

음, 방금 내가 아까 그것이 한결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던가?

정정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보니, 그것은 신소희와 하형준과 송형직과 표동철의 머리 위로, 지구로, 10년 전에 지났던 그 궤적을 타고―점점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구방위고등학교 #1 이것저것 다가오고 있었다

제작

지구방위고등학교 입학처

새틀라이트

스튜디오 애니멀

이 네 명이 잠시 후 햄버거 먹으러 들어간 패스트푸드점 역시, 밖에서 보면 조용했다.

시끄러운 최신 가요 때문에 가게 안의 손님들은 거의 악을 썼고, 그 때문에 이 네 명 역시 거의 악을 썼다. 그리고 혼자만 2인분을 시킨 하형준은, 패티를 우적우적 씹으며 하던 얘기를 한다.

“아니, 그럼 얘기만 미리 좀 해 주지.”

표동철도 동의한다.

“그러니까. 베이스가 필요하긴 필요했잖아.”

“근데 그게 너무 이렇게 갑자기 말이야.”

둘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신소희가 한 마디 해 준다.

“그니까. 내가 좀 서둘렀지? 미안미안. 아니 근데 진짜, 얘를 빨리 영입을 해야겠는 거야. 그래서.”

형준이 패티를 삼킨 후에 조심스레 묻는다.

“이름이...?”

“송형직.”

이번엔 동철이 소희에게 묻는다.

“얘가 그렇게 대단해?”

“내가 얼마 전에 집에서 교회 가래서 한번 갔거든?”

그런데 학생부 예배 시작 전의 어수선한 틈에, 어디서 많이 본 애가 강대상에 혼자 올라가 앰프에 라인 꽂고 혼자 베이스를 치더란다.

“너 교회 다녀?”

동철의 질문에 형직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실 형직은 함부로 거기 올라가면 안 되는 것이었고, 잠시 후 준비 완료된 찬양단이 올라오자 형직은 당황해서 서둘러 라인 뽑고 내려가려다가 보기 좋게 굴러떨어졌다.

“쭉 봤는데 잘 치더라고. 그래서.”

그러더니 소희가 콜라 컵 커버를 벗기고 한 모금 벌컥 마신 다음 컵을 땅 내려놓고 형직을 가리키며 득의양양

“알고 보니까, 얘 오피. 오피.”

뭔 말을 하려고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뭐라고? 형준과 동철이 동시에 물었다.

“너 OP야?!”

형직은 당황해서 쑥스러워하는데 소희는 문득 괘씸한 생각이 불끈 솟았다.

“야 너네 뭐냐? 내가 초A급 AP인 건 놀라지도 않냐?”

“아니 너야 원래 할아버님한테 배운 것도 있고 하니까 보조파일럿 하는 거고.”

동철이 그 부분은 짧게 지적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묻는다.

“야 근데 OP는 머리 좋아야 하는 건데?”

“너 머리 좋아?”

형준까지 그렇게 한없이 단순하게 질문하니 형직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 뜸을 들이더니,

“...어, 좋아. 머리.”

“야~ 잘 왔다! 너 아주 잘 왔어!”

형준은 몸을 뒤로 젖혀 가며 반가워하더니 몸을 앞으로 확 일으켜 건너편에 있는 형준의 어깨를 툭툭 친다.

“야, 우리 플래닛셰이커가 말야, 공부도 지지리 못 하면서 맨날 논다고 얼마나 눈치 받고 살았는지 아냐? 이제 우리도 공부 잘 하는 애 있다고 해야겠다, 그지?”

하형준의 오버액션을 쌩까며 소희가 일어나 말한다.

“됐고, 일어나자. 다 먹었지?”

“어 잠깐만!”

형준이 그래 말해 놓고 남은 설탕 덩어리 샐러드를 허겁지겁 먹는 동안 나머지 세 명은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동철이 물었다.

“연습 가?”

“야, (우적우적) 그럼 당연히 가야지, (꿀꺽) 엉? 새 멤버가 왔는데!”

“다 먹고 말해. 제일 늦는 사람이 내일 빵 사기.”

“기다려, 소희야!”

이제는 삼면을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지방고의 운동장은 그래서 더욱 크고 허전하고 쓸쓸한 노을빛으로 물들려 하고 있었다. 그 오후 네 시의 텅 빈 운동장을 그 넷이서 오른편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근데 얘가 그렇게 잘 쳐?”

“작살난다니까?!”

학교의 오른편 현관은 자전거 자물쇠로 잠겨 있다. 앞장을 선 소희가 그 잠긴 현관으로 걸어가며 자세를 자연스럽게 낮춘다.

“오늘도 이 모양이네.”

문 앞에 쪼그리고 다가가서 문을 밀어 충분히 열리는 현관문 틈새로 오리걸음을 걸어 들어가는 소희의 뒤를, 나머지 셋이 그대로 따른다.

“도둑 들어도 모르겠다.” 형준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동철이 면박을 준다. “훔쳐갈 거나 있냐.”

모두가 동의하는 뜻에서 잠시 별다른 말이 없었다. 우측 현관에서 가운데 쪽으로 좀 걸어가면 아래로 이어지는 널따란 계단이 있다. 지하로 하염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이 계단을 걸어갈 때 이야기를 하면, 소리가 위아래로 쩌렁쩌렁 울린다. 동철이 입을 연다.

“근데 여기 원래 이 시간에 잠그는 거 아니래매.”

“진짜?”

형직이 반응을 보이자 형준이 바로 대답해 준다.

“몰랐어? 원래 정비는 여기 5시까지 무조건 남아서 점검하고 가야 돼.”

이건 천하의 신소희도 몰랐나 보다.

“근데 왜 안 남아?”

“왜겠냐? 점검할 게 없으니까 걍 집에 가는 거지.”

“원래대로 하면 너네도 학교 끝나고 내려와서 교육 받고 가야 된대.”

동철의 말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소희가 묻는다.

“누가 그래?”

“원래 그게 규칙이야, 몰랐어?”

“진짜?”

대화가 이쯤 되었을 때는 그들이 학교의 지하 1층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불 꺼진 ‘격납고’는 최소한의 빛만 보이는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거기서 동철이 익숙한 발걸음과 동작으로 스위치가 달린 벽을 더듬어 불을 켠다. 펑, 펑, 펑, 저쪽 먼 구석부터 이쪽으로 천장 조명이 점등되고 있었고, 발 밑이 제대로 보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하던 얘기를 하며 걸음을 다시 떼었다. 소희가 앞서 가며 뒤편에 대고 물었다.

“야, 그럼 원래대로는 우리 지금 다 땡땡이야?”

“그런 셈이지.”

“근데 뭐, 학교에서 문을 잠그잖아.”

형준과 동철의 대답에 소희가 맞장구를 친다.

“아 맞네. 완전 웃긴다.”

그렇게 앞서 가는 셋과 거리를 점점 벌리고 있던 송형직을 하형준이 문득 알아차리고 뒤를 돌아본다.

“뭐해, 형식아? 여기야 여기.”

다시 형준이 돌아서서 가던 길 가는 것을 확인한 형직이 몇 걸음 바삐 따라잡으며 혼자 궁시렁거린다.

“...형직인데.”

천장 높이만 30m를 넘는 격납고의 정 중앙에는 상시 출격 가능 상태의 거대 로봇이 태권도의 준비서기 자세로 학교를 등지고 서 있다. 그 로봇의 머리 위로는 운동장이 있다. 3층짜리 학교 건물의 밑에는 로봇의 왼쪽 뒤편에서부터 지하 대식당과 파일럿 대기실, 비상 발전시설이 위치해 있고 통제탑은 파일럿 대기실과 발전 시설 중간쯤에 따로 높이 서 있다. 로봇의 왼쪽엔 병기반, 오른편엔 시공반, 앞에는 정비반이 있다.

원래는 여기서 밤낮없이 지구방위 기술을 훈련받고 교육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제 여기는 매년 하는 교육훈련만을 정규 수업 중에만 대충 시키는 장소에 불과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방과 후의 격납고는, 미승인된 밴드 동아리가 한 대의 거대 로봇을 관중으로 세워 놓고 매일 고래고래 연습을 하는 초대형 연습실이 되었다. 드럼과 앰프와 마이크 세트를 짱박을 장소는 진작에 찾았을 정도다.

자기가 칠 드럼을 발전실에서 끌고 나오며 낑낑거리는 형준을 뒤로 하고 동철은 한창 튜닝 중이었고, 형직이 조심스럽게 소희에게 묻는다.

“저기, 이런 건 C섹터에서 해야 되는 거 아냐?”

C섹터라 함은 학교 건물 등 뒤에 동아리 전용으로 조잡하게 조립해 놓은 가건물 구역이다. 항상 학교 뒤쪽 아파트의 그늘 아니면 학교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 끔찍할 정도로 음습하다.

“아, 그건 걱정 마.”

“그래도 좀...”

잠자코 튜닝하던 표동철이 듣다 못해 한 마디 한다.

“야, 그럼 넌 그 곰팡내 나는 데서 베이스가 치고 싶니?”

형준도 마침 마지막으로 양손에 심벌을 들고 나와서 거든다.

“그리고 거기서 연주하면 주민신고 땜에 쫓겨나서 안 돼.”

형직은, 납득은 하고 있었지만, 모르는 게 많아 불편하다는 심기를 애써 감추고 있었다. 소희가 그걸 알아차렸다.

“됐고, 얘 악보 줘. 일단 쉬운 걸로 한 곡 가자.”

형직은 악보를 한 번 훑어보고서야 할 일은 하겠다는 표정으로 아까부터 메고 있던 베이스 가방에서 기타를 꺼내 앰프에 꽂고 조율을 했다. 물론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드럼 세팅이 훨씬 더 늦게 끝났기 때문에 베이스 때문에 시작이 늦어지지는 않았다.

세팅이 끝났다.

사방이 콘크리트로 조악하게 마감되어 음악을 연습하기에는 한없이 부적절한 그 격납고 안에, 세미한 하울링이 무슨 환청 혹은 백색 소음처럼 울리고 있다.

소희가 마이크 스탠드를 붙잡고 앞으로 기대는 자세를 하고 있다가, 그녀의 뒤에 자리한 세 명을 한 번 쭉 둘러보고 물었다.

“준비됐지?”

잠시 후 형준이 스틱을 네 번 치고, 4인조 플래닛셰이커의 역사적인 첫 연습이 시작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