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ge is the root node.
목차目次.
§
◤안내案內.
각 목차(제목과 내용)를 각 꼭지(◤◢)에 담음.
그 목차가 속한 최상위最上位로부터 해당위該當位 목차제목까지를 연달아 나열하는 것으로 한 목차의 제목을 만드는 ‘향월식香月式 목차目次매김’ 즉 ‘적술식積述式 목차目次매김’ 을 씀.
본本 웹web문서文書는 향월香月의
트리tree구조構造 공개公開글
= 공개公開웹web서고書庫
임.
웹브라우저 주소창(URL 표시란)에
https://docs.google.com/document/d/e/2PACX-1vQyGtBtuVbyqKBkpOXzywxnVnMRRbTXW4abWBf5oFEMBdhtuDacM-fYnObEpWjVnCswPs5RPW__vARJ/pub
향월.한국
향월.net
향월.com
hyangwol.net
hyangwol.com
giddnjf.net
giddnjf.com
의 여덟 가지 주소 중 하나를 입력하면 접속할 수 있음.
안내案內.◢
§
◤안내案內. 상세詳細.
띄어쓰기 등 어문규범.
필자의 띄어쓰기는 국립국어원이 정한 띄어쓰기 규정에 어긋날 수 있다. 띄어쓰기 뿐 아니라 다른 문법도 국립국어원 규범에 어긋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혹 후에 여기에도 상술詳述하게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본本 트리tree구조構造공개公開글에서 필자는 우리세계가 아닌 필자의 창작세계(관)인 누Nu의 말글규범을 따름을 원칙으로 한다.
꼭지(◤◢).
꼭지(◤◢)란 필자의 문서에서 글의 한 단위뭉치이다. 보통 하나의 목차(제목과 내용)를 하나의 꼭지에 담는다. 꼭지의 여는괄호(◤) 직후와 닫는괄호(◢) 직전에는 목차제목을 적는다.
향월식香月式 목차目次매김.
필자의 문서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문 본서가 목차번호를 매긴 방식이 낯설지 싶다. 필자가 필자 이름 따서 ‘향월식香月式 목차目次매김’ 이라 부르는 이 목차매김법은 필자가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써오던 목차매김법이다. 필자의 창작세계(관)인 누Nu에서는 ‘적술식積述式 목차目次매김’ 이라 불리며, 오랜 시간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목차매김법으로서 널리 쓰였다.
이 목차매김법의 한 예시는 지금 이 꼭지(목차)의 제목이 되겠다. 본 목차의 제목은 ‘안내案內. 상세詳細.’ 인데, 이는 ‘안내案內.’ 라는 목차 중 ‘상세詳細.’ 라는 하위목차가 있고, 현재 그 목차상 지점에 우리가 있다는 뜻이다. 즉, 목차의 구성은 자료구조로 치면 트리tree구조의 개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트리구조를 좋아하므로 이런 구조·개념이 각 목차제목 속에서도 나타나게 하는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다. 전산체계에서 디렉토리 경로를 기술할 때
‘C:\Users\username\Desktop\filename.txt’
‘C: > Users > username > Desktop > filename.txt’
와 같은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의 ‘\’ 나 ‘>’ 같은 구분문자를 향월식香月式 목차目次매김은 쓰지 않는다. 번거하기도 하고 목차제목이 길어지며, 굳이 그런 이질적인 문자를 끼워넣지 않아도 목차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목차일람目次一覽을 보면 목차들 간의 상하관계 즉 부모자식관계 즉 계통系統관계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일람目次一覽은 ‘목차目次’ 라는 제목으로 각 문서의 첫머리에 꼭지감쌈 없이 배치했다.
이렇듯 향월식香月式목차目次매김을 적용함으로써, 목차번호매김에 있어서 목차위계를 1위계(1. 2. 3. ……), 2위계(1.1. 1.2. 1.3. ……), 3위계(1.1.1. 1.1.2. 1.1.3. ……), 4위계(1.1.1.1. 1.1.1.2. 1.1.1.3. ……) 따위로 번호를 붙여가며 늘리는 대신에 최상위위계인 1위계(1. 2. 3. ……) 에만 (번호없이 목차제목으로 대신하며) 주로 머물며, 목차제목 속에 숲-국소숲-나무를 차례대로 적어 문서구조상 위계적인 양식 없이도 사실상 위계의 수를 늘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면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목차제목을 볼 때마다 현재위치를 상기想起하는 데 도움이 되고, 목차일람目次一覽을 뽑았을 때 상위위계적·큰틀의 제목이 그만큼 반복으로써 강조되고 그를 공유하는 인접목차끼리는 묶음지어져보여서, 흐름이 잘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로써 문서의 구조·짜임새에 관해서는 1위계(꼭지위계)선상에서 대부분 처리되도록 하였다. 간혹 (꼭지 내에서) 2위계를 초과하여 내려갈 지(늘려갈 지) 모르지만 오래 머물지 않으려고 하며, 2위계 이하(2위계, 3위계, 4위계, …)는 목차일람에 넣지 않았다.
한자직렬병기漢字直列倂記.
독자들은 필자의 문서에서 한자어의 훈민정음 표기 다음에 소괄호 없이 그 해당하는 한자를 바로 이어붙여 쓰는 것을 보았을 터이다. 일반적으로 한자어에 대해서 한자를 병기할 때에는 그 직후에 직렬로 붙여서 병기하였고, 이 때 소괄호는 생략하였다.
‘한자직렬병기漢字直列倂記’
처럼 말이다.
이를 ‘한자직렬병기漢字直列倂記’ 쯤으로 부를 수 있겠는데, 이처럼 소괄호 없이 붙여쓰는 방식은 누Nu에서는 ‘음의병기音意倂記’ 라는 이름으로 보편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누Nu에서 본 문서처럼 직렬병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좌횡서의 경우에는 한자어의 훈민정음 바로 밑에 붙여서 더 크지도 작지도 않게 꼭 같은 크기로 병렬병기를 한다. 그러므로 누Nu의 우리말 문서는 줄간격이 우리 세계의 두 배쯤 된다. 누Nu에는 그러한 전산체계가 구현되어 보편화돼있다. 누Nu 식으로 하자면 모든 한자어에 한자병기를 일괄적으로 하였겠지만, 필자는 그러지 못하였고 일부 한자어에만 조악한 직렬병기를 하였다.
영원히 미완未完인 문서.
본 문서가 완성完成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본 문서는 영원히 미완未完인 문서이다.
사람들이 저지르곤 하는 한 가지 실수는 완료가능한 목표를 최종목표로 세우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완료가능한 목표는 중간목표는 될 수 있지만 최종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윗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정년을 맞아 은퇴한 후 자기는 이제 할 일을 끝냈고, 더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리는 착오를 저지른 것을 나는 보았다. 자기가 어렸을 적 봤던 그 시대 노인들의 대략적인 사망연령에 이르렀을 때 자기도 죽게 될 것이라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감지·감안하지 못하고 잘못 계산하여, “죽을 나이가 됐는데 왜 안 죽지?” 하며 그 아까운 수십 년 세월을, 자기가 직장 다녔던 세월보다 더 오랜 세월을 아무런 보람된 일도 하지 않고 맹탕 흘려보냈다며 심히 후회가 된다며 한탄하던 노인도 나는 보았다. 은퇴 후 아무리 길어도 10년쯤이면 죽을 줄 알았는데, 죽을준비 해놓고 멍하니 30년 넘는 세월을 허비했다는 노인도 있었다. 최종목표를 완수한 ‘성공한 인간’ 의 모습은 마치 그런 것이 아닐까. 목표를 다 이루었으니 이제 할 일이 없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런 삶은 비참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취미로 할 수 있는 것을 택해서, 완료할 수 있는 중간목표들을 세우되 최종목표는 절대로 완료할 수 없게 세우고서, 죽을 때 죽더라도 하는데까지 끝까지 그것을 추구해가는 것이, 다 이루고서 멍청하니 죽을 날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휠체어를 탄 몸일지라도 계속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억만장자들을 세인들은 늘그막에 무슨 욕심이 저리 많을까고 흉보지만, 나는 그들이 완료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할 줄 아는, 생각이 닫혀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백조百兆 부자는 일경一京 부자가 되고 싶고, 일경一京 부자는 일해一垓 부자가 되고 싶다. 얼마나 큰 부자가 돼야 만족할까? 그런 건 없을 것이다. “난 얼마 정도면 만족하고 누리면서 살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게 자기 사고의 한계인 사람이다. 막상 그렇게 돼보면 자기보다 한 단계 위의 부자인 사람들이 보일텐데 아마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무한을 향해 트여있는 사람은 결코 만족할 액수를 미리 설정하지 않을 것이다. 대중은 “재산이 수십수백조가 되면 은퇴하고 편하게 살지, 뭣하러 90세가 넘어도 계속해서 투자를 확대하며 돈에 집착할까” 라고 심사深思 안 해본 티가 다 나는 멍청한 소리를 하지만, 그런 부자들은 그게 은퇴 후 편하게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다만 그 취미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돈벌기’ ‘재산불리기’ 일 뿐이고 이왕 하는 축재놀이이니 그 판에서 1등 먹어보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것일 터.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자기의 끝없는 욕심을 충족하지 못해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다. 끝없이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고정관념·한계에 갇힌 사람들이야말로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인들은 어떤지 몰라도 내 눈에는, 마음 경직된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보인다. 나는 만족을 모르고 끝을 모르는 부자들을 존경한다.
영혼은 늘 진화하며 삶도 늘 변화한다. 신선처럼 말해보자면, 삶은 무한하며 계속되는 진행만 있을 뿐 끝이 없다. 완료·완성된 것은 완료·완성되었으므로 더 발전·개선·진화·변화할 수 없다. 그것은 고여서 썩을 일만 남은 물웅덩이 같고 죽은 나무 같으며 더는 숨쉬지 않는 송장 같다.
완벽한 것은 진화를 멈춘 것이다. 그러므로 ‘완벽’ 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한계짓는다. 자꾸만 진화·발전하는 것은 영원히 완벽에 이를 수 없다. ‘완벽함’ 이란 주관적인 감상일 뿐이며 허구임이다.
삶에 완성은 없고 학문과 예술에도 끝은 없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우리가 십만 년을 살아도 삶은 여전히 미완일 것이다. 중도中道와 무한無限을 깨친 이에게 완성完成·완벽完璧·완료完了 따위의 유한계有限界스러운 개념들은 헛소리와 같다. ‘완벽完璧함’ ‘무결無缺함’ ‘완성된 상태’ 나 ‘최종목표의 완료’ 따위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나는 늘 이 말을 던질 것이다. “가장 큰 수數를 구할 수 있는가?”
우리가 최종最終에 도달했을 때 늘 깨닫게 되는 것은 그것이 최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에 도달해보지 못했던 당시에, 그 너머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최종이라 생각했던 것일 뿐. 무한無限을 깨치는 자 중도中道를 깨치리니, 마음을 해방시키라. 막힌 바는 본래 없는 것이다.
지금 하는 이 논의를 나는 본本 트리tree구조構造공개公開글의 엉성함과 조악함과 허접스러움과 미비未備함을 변명하는 용도로 쓰려고 한다. 필자의 사전에 탈고脫稿란 없다. 끝없는 개고改稿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쫓아보았는가? 쫓는 만큼 달아난다. 지척에 있으나 결코 이를 수 없고 잡을 수 없다. 이런 것이 나와 내 그림자의 관계이다. 구현具現과 상상想像·구상構想의 관계도 그와 같은 듯하다. 상상想像·구상構想한 것을 다 구현具現할 수 없다. 구현具現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상상想像·구상構想은 더욱 쑥쑥 뻗어나가 저만치에서 나를 돌아보고 있다. 그러므로 상상想像·구상構想한 것 중에서 구현具現된 것은 구현具現되지 않은 것에 비해 언제나 적을 것이다. 제목만 적어놓고 내용이 텅텅 비어있다든지 하는 것들이 필자의 문서에는 많다. 내용 미비한 문서·목차들이 언제 다 없어질 것이냐 묻는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구현具現되지 않은 상상想像·구상構想은 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상상想像·구상構想한 것을 절대로 다 구현具現할 수 없다. 상상想像·구상構想은 계속해서, 무한히, 구현具現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힘껏 달려도 그림자는 계속해서 더욱 달아난다. 그렇다면 굳이 내 그림자의 끄트머리를 잡아내려 애쓸 것 없이, 그림자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계속 탐험하며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영어 표현을 써보자면, 필자의 문서는 Never complete nor finished 하며 Ever-evolving and ever-expanding 한다.
끝이 없다는 것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은 축복이다.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갇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미지의 영역 즉 탐구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가장 큰 수數를 찾아내려 애쓰는 이는 절대로 목표를 이룰 수 없어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던 것보다 더욱더 큰 수數를 계속해서 찾고 음미하며 탐구해나가는 과정, 그 탐구행위 자체를 목표로 삼고 즐기는 이는 행복의 샘이 고갈될 일이 없을 것이다. 무한無限은 닫힌 마음들에게는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무한無限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는다.
단지 그 자체를 즐길 뿐.
롤(LOL)이나 배그(PUBG)를 하는 사람들에게 왜 하냐고 물으면 “재밌으니까.” 라고 답할 것이다.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돼서 명성·명예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래더 1위를 찍으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가 재밌으니 할 뿐, 그것이 일차적인 이유이고, 다른 것들은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부차적인 것이다. 본本 트리tree구조構造공개公開글에서 필자가 창작한(창작과정에 있는) 글들은 게임에서 얻은 경험치나 레벨, 습득 아이템에 해당하겠지만, 필자에게는 창작의 과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창작물의 용도는, 가장 중요한 창작행위를 그 결과물을 보며 간간이 되새김질하는 것 정도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목적이라기보다는 부산물에 가깝다. 물론 사라지면 안 될 소중한 부산물이다.
본本 트리tree구조構造공개公開글에서 글을 창작하는 행위가 필자에게는 하나의 취미요 즐길거리다. 이게 내 롤이고 내 배그다. 하고 싶을 때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거지, 끝이나 완성은 없다. 롤이나 배그를 “다 했다.” 라고 하지는 않듯, 내가 하는 이 것도 ‘다 하’ 는 건 없다.
본本 트리tree구조構造공개公開글에서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쓴다기보다는, ‘개인기록 중에서 남이 봐도 괜찮은 것들’ 을 형식·글투만 타인청자 상정하여 여기에다 쓰는 것에 가깝다. 이건 그냥 내 자기만족이며,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사랑하는 모국어 즉 한국어에 대한 개인적 찬송讚頌이자 건승기도健勝祈禱로서, 수익화하지 않고 웹에 무료공개하는 글로서 쓰는 것이다. 자발적 후원의 수단만 남기고 유료인 다른 창작물의 링크만 남길 뿐, 다른 수익화를 하지 않는다. 글 주위에 광고도 달지 않는다. 단, 웹에 무료공개한 글을 그대로 둔 채로 출판이나 저작권 활용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할 것이다.
안내案內. 상세詳細.◢
§
◤Child nodes.
Child nodes.◢
문서 끝.
This is the end of the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