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미래와의 새로운 약속> 연속콜로키움 제5회
잘 쉬고 서로 돌보는 사회를 지향하자.
2012년 5월 30일(수)
제5회 콜로키움 취지 - 잘 쉬고 서로 돌보는 사회를 지향하자. 우리는 과로를 찬양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강수돌 교수가 개념화한 ‘일중독 사회[1]' 또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2]'가 한국사회를 잘 보여주는 말이란 데 대해 공감이 큽니다.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은 사람들을 끊임없는 자기개발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개발이란 환상 아래 스스로를 착취하는 기재에 몸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휴식은 사치처럼 여겨지고 행복은 죄악시됩니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습니다. 친구들과 즐길 문화가 없는 도시는 아무리 일자리가 많아도 나쁜 도시입니다. 성인도 누구나 필요할 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몸이 한가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야 옆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속도는 너무 빨라 나 하나 챙기기에도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경쟁의 속도에서 탈락해서, 또는 애초부터 끼지 못한 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돌보는 돌봄노동이 생산노동만큼 가치로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돌봄노동의 활성화는 복지의 핵심이며, 그 자체로 많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자리 창출이기도 합니다. 중점 토론내용
참여자
발제문 |
1. 강수돌 고려대학교 교수 발표
저에게 주어진 제목이 잘 쉬는 사회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된 것은 한국사회가 일중독사회[3]라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한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일중독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개념규정이나 이런 것들을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놀 줄 모른다, 쉴 줄 모른다, 내가 일을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하는게 아니라 일이 나를 끌고 다닌다라고 달리 표현할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예를 들어 60~70년대 어른들이 12시간~ 15시간씩 일하면서 못사니까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지만, 2010년이 되면서도 마찬가지의 양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라는 원초적 문제 의식이 필요하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어른들이 그렇게(12시간 ~ 15시간) 일을 했다면 80~90년대 와서는 8시간~10시간, 2000년대 넘어서는 6~8시간,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크게 된다면 그 세대는 대여섯시간만 해도 되거나, 더 줄어서 저는 4시간 정도 일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전진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이 사회가 진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발전이라고 할 때 뭐가 발전이냐, GDP, GNP와 같은 수치화 된 액수, 수출액, 월급봉투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여유롭고 또 일 뿐아니라 일 이외의 삶에 대해서도 균형 잡히게, 풍부하고 다양하게 관계를 맺고 다양한 활동에도 참여하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고 주변의 아픔이나 잘못된 것을 고쳐내는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하지 않나 이런 문제의 식이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또 다른 한편으론 노동시간을 줄여서 삶의 균형을 잡아야하는 것이 단순히 노동시장이나 노동과정만 당면한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사회의 경쟁력중심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삶의 질 중심의 구조혁신이라고 하는, 사회를 진보적으로 바꾸는데 핵심 키워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실업문제에 대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책도 되고, 그러면서 삶의 균형도 잡아갈 수 있고 그러면서도 한겨레신문사 같은 경우에는 노동시간감축에 따른 임금감소는 없다고 못박았는데, 개별기업 입장에서 이렇게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많은 기업에서 임금감축도 해야한다고 당연히 생각할텐데 그런 논의가 나오면 그걸 매개로 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제가 주장하는 대안은 주거나 교육과 같은 문제들을 사회 공공적으로 풀어내면서 임금감축이 오더라도 실질소득이 저하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날 수 있는 사회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질문이 되는게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세제도나 공공지출이라던지 우리사회의 부가 빠져나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좀 더 논의되가면서 그런 부분까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매개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한단계 더 들어가면 경제나 경영분야에서 사람이나 자연을 살리지 않고, 망가뜨리거나 과잉중복되거나 건강한 삶의 질 차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는 점차 줄여나가면서 그러면서 사회적 삶의 재생산에 필요한 부분을 요약해서 전사회경제적 구조조정을 해나가면 이것이 선순환이 된다. 우리가 사회적 삶의 질 차원에서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나간다면 이렇게 일 많이 안해도 된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일하자 이런게 의식적으로 정책적으로도 마무리되어가면 보통 걱정하는 실업문제는 물론이고 삶의 질 향상까지 같이 도모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노동시간과 생산성 관련하여 경제나 경영하시는 분들은 생산성에 대한 우려를 많이 하는데 그동안 노동의 절대양을 많이 투입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는 저차원의 경로를 걸어왔다면, 보통 말하는 선진사회일수록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질적으로 고양되는 그런 의미의 색다른 생산성, 품질, 디자인 경영방식,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등 다른 차원에서 장시간 노동 대신 단시간 노동으로 다른 분야를 추동하면서 혁신을 가속화하는 형태로 가야한다.
지금까지 생산성이 말로는 생산성이지만, 사실상 인간이나 자연의 건강을 침해하는 형태로 높여왔다. 이런 생산성을 저는 파괴적 생산성[4]이라고 일컫는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창조적 생산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같이 책도 읽고 대화도 나누고, 잘 돌보는 사회에서도 말씀하시겠지만, 친밀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지혜와 상상력들이 발전하면서 질적 고양이 이루어지는 그런 의미의 창조적 생산성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정보들이 선진국일수록 많다는 것이다. 아이들 조차도 오래 잡고있다고 공부 잘하는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는 것이 목적도 아니다. 충분히 놀고 쉬고, 놀이가 아무것도 안하고 노는게 아니라 놀이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과정이고 이게 사회성이기도 하고 실컷 놀아야 원도 한도 없기 때문에 다른 데에 매진할 때 집중력도 생기고 이런 부분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오래 잡아두는건 문제다. 이렇게 따지면 교육 문제하고도 연결된다. 공부시간도 단축해야한다(노동시간과) 어릴 때부터 야간자율학습에 길들여저 우리의 사회적 DNA가 바뀌어버렸다. 거기다가 50% 초과수당까지 주니까 바뀌어진 DNA에 대해 직장인들이 여지가 없어지고 자본의 논리를 더 강하게 내면화 해버리는 그런 경향이 있다. 거기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인상적 이슈가 노동시간이고 그런의미에서 잘 쉬는 사회라는 키워드는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오늘 발표문은 새로 쓴 것은 아니고 예전에 노동사회연구라는 잡지에 썼던 글에 박스 부분은 추가로 한 것이다. 박태주 선생이 현대자동차 2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분석, 면접 후 발표한 자료이다. 현대차 노동자는 어떻게 쉬는가와 관련하여 논문을 보니, 대부분 퍼져 있거나 TV보거나, 축구하거나 낮잠, 이정도다. 적극적인 의미의 여가활동이나 자기를 성찰하거나 사회적 활동에 동참하기 보다는 워낙, 만성과로에 시달리고 있고 그래서 어쩌면 그런 분위기의 사회에 갇혀 있는게 아닌가 싶다.
OECD와 국제비교하는 그래프는 워낙 많아서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가 자랑스럽지 않은 1등이 많다. 산재 왕국이라던지, 노동시간 길다는거, 자살률, 청소년 불행도 1등, 40대 과로사, 일본이 1등이었는데 지금은 1,2등을 다투지 않을까 싶다(정확한 데이타는 없지만)학부모 교육열도 일본과 1,2위를 다투고 있어. 그런데 그 교육열이 훌륭한 인격체로 민주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 교육열보다는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 일류 직장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교육열이 강하다. 그런부분을 종합해보면 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히도, 연결지어서 한 패키지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1등이다. 그만큼 오래 공부하고, 부모들은 학원비, 과외비 조달을 위해 그만큼 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삶의 질 향상이 눈에 안보이니까 아이들에게 좀 더 출세하기를 기대면서도 아파트 한 채 얻어서 시세차익이라도 날 까 이런 투기성향에 기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삶이 안나아지니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성적에 풀기도 하고, 인간관계도 꼬이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받아야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데 이런부분이 노동시간 관련속에서 생활과정에서 이미 왜곡된 형태로 재생산되고.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스트레스나 직업병 산재, 이런 부분에 노출되어서 건강한 삶을 살기 어려워한다.
노동시간 단축 하나로 모으는 것을 환원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커다란 패키지의 중요한 고리를 형성하기 때문에 잘 쉰다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잘 먹고 잘산다, 살기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데,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문제의식이 커졌으면 좋겠다.
현대차나, 유성기업 둘 다 자동차 산업이지만 12시간씩 주야 맞교대해오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365일 중, 360일 이상 일하는 사람도 많다. 50%의 수당을 더 받거나, 야간노동까지해서, 노동법에선 50%지만 단체협약에서 100%로 보상해줬기 때문에 그런 경제적 인센티브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크게보면 어떤 내 자신의 삶이나 사회적 삶에 있어서의 대안이라는 것에 대한 심층적 학습이나 문제의식의 공유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성실하게 해서 희망이 있다면 내자식은 내 신세를 탈피해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노동자나 우리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다. 그런식으로 하다 보니, 어제도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영국에서 발표된 의학전문학술 논문중에, 교대 노동, 야간 노동을 많이 한사람 들은 생체리듬의 괴리가 높아지면서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재미있게도 오늘 한겨레 신문사에 강남/강북의 사망률 격차가 심하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크게보면 그것과 비슷하다. 한국사회가 둘 다 스트레스는 높겠지만, 그나마 덜 받는 집단과 많이 받는 집단 사이에 분명히 사망률의 차이가 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추측할 수 있고, 구체적 데이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최고의 생산력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생산력 개념 아래 사람이 포함되는 것은 기분 나쁘지만 결국엔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생산력과도 관련이 있다. 파괴적 생산성이 아닌 창조적 생산성 개념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사람이 존엄하게 산다는 것,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노동이라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한편으론 일중독 한편으론 소비 중독이라는 두 수레바퀴에 매달려 끌려가는 형태가 아니라 마치 내가 설사 빨간 불인데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미안한 마음으로 건널 때 자동차 몰고가던 사람이, 사람이 지나가니까 그래도 서서 기다려줘야지 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이 그래도 내가 사람이라고 존중을 받는구나, 이런 느낌처럼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우리 일상인 노동 과정이나 일상 생활과정에서 삶의 여유, 사람을 만나서 차 한잔의 여유를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삶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것 아닌가? 좀 일찍 집에와서 아이들하고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거나 보통 우리가 말하는 가사노동에 남녀 직장인이 모두 짧아진 노동시간을 바탕으로 가정생활을 함께하면서 가사노동도 분담하고, 가정교육 문제도 협력하고, 자녀들 교육문제도 같이 고민하고,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할 수 있는 프로그램? 이런걸 같이 하면 전체적으로 통홥되어 사회적 차원의 생각능력이라고 할 까? 이런것도 성장할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개별기업차원이나 작은 기업의 차이를 과감히 뛰어넘는 이런 것도 필요하다
7쪽에 사회공공지출 그래프(OECD국가 중 한국이 매우 낮아)를 인용했는데, 주거문제, 교육문제, 노후문제, 의료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내는게 필요하다고 느낀게 이런 부분과 관련있다. 내가 직접 일을 해서 노동시장에서 받은 임금으로 주거, 교육, 의료, 노후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예전에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었거나 봉건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던 시절에는 자녀 많이 낳는게 노후복지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그대로 복구하긴 힘들고, 되돌리기 힘들다면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일차적으로 국가복지 차원이겠지만 점점 갈수록 지역 내지 마을공동체를 통해서 사회공동체에 내놓을 부분이 많다고 여겨진다. 사회공공부분의 지출이 높은게 대부분 선진국이다. 결국은 내가 월급으로 해결 해야 하는 생활 상 문제들이 적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내가 내야 하는 등록금이 낮으면 부모님은 부담을 덜 느끼게 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 부분이 먼 7~8%많아봐야 10%미만에 물고 있고 일본은 20%까지 되는 것 같다. 미국도 일본과 비슷하다. 네덜란드 이태리 독일 영국 이런데가 인제 20 북유럽이 30%정도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부분을 보면 노동시간단축과 더불어서 사회구조적 변화가 같이 이루어지면, 개별노동자나 개별기업이 갖고 있는 두려움들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11쪽에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에서 주야맞교대 12시간하던것을 최근에 구호가 8시간씩 또는 연장작업을 하더라도 10시간씩 해서 낮에만 일하자 이런 구호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그런 구호가 필요하고 굉장히 소박한 구호로 밤에 잠좀 자자 이런 것이다. 이걸 좀 장기적으로 땡겨서 여섯시간식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만약에 우리가 필요한 사회적 필요노동량이 9명이 10시간씩 일하는 90명/h의 필요도가 있다면 보수진영이나 기득권측면에선 사람을 줄이고 노동시간이 늘리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발전과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사람을 늘리고 시간을 줄여야해, 당장 이걸(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실현하지 못해도 반대 방향이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시간을 줄이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나?
실업문제를 고민할 때 두가지 방안이있다. 하나는 시간의 축이 있다.
두번째는 땅이다. 땅의 경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거나, 유기농을 중심으로 해서 가공하고 유통하고 이런 자연에 가까운 경제로 돌아가게 되면, 땅은 사람을 다 받아준다.
그래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잉여인간을 만들고 심지어 사람을 쓰레기로 만들고 호모사케르[5]처럼 죽어가도 아무도 안쳐다보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내는게 보수의 논리라면 이건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필요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지극히 일자리 내지 일을 매게로하느 지위, 그런걸로 말미암은 보상 이런것과 동일시하고 있는 왜곡된 자신의 삶을 통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맨 마지막에 제가 삶의 질 구조 혁신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것을 요약한 것이다. 교육과 직장, 노동시장이 분리된 것이 아니니까 구호 내지 큰 방향성은 이렇게 가야 한다. 실업계고교던 인문계던, 지방이던 서울이던, 일류던 이류던 개성껏 개성에 맞게 배우고 사회 나와서 대접이 비슷해서 인간의 존업성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회. 그러면서 노동시장단축, 일자리 나누기, 주거교육 등 공공성이 강화되고, 유기농농민이 일반 공립교사처럼 소신껏 유기농했을쩍에 시장에 내다파는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건강한 시장자본률이 높아질 수 있는 그런 패키지가 같이와야, 쉬는사회, 놀이와 쉼 속에서 성찰하는 그런 사회가 가능하지 않겠냐 하는 말로 마무리하겠다.
2. 이숙진 젠더사회연구소 소장 발표
[강수돌 교수발언에 대한 보조발언]
여성들이 야간근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유방암 발생률이 높다. 일주일의 두번 이하하면 보통의 여성과 차이가 없지만 그 이상이 되면 어제 오늘 발표된 연구결과 암 발생률이 높다고 한다.
함께 “잘” 돌보는 사회다. 그냥 돌보는 사회가 아니다.
함께가 의미하는 바는 이제까지 우리가 돌봄에 대해 오해가 있었을 수도있다. 돌봄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리를 해봐야겠다.
이럴 때 돌봄에 대한 개념정리 하나와, 이제까지는 돌봄이 여성의 영역으로 쉽게 생각되어왔는데 제가 말하는 함께는 국가, 사회, 필수적으로 남성, 그래서 일정 정도 탈가족화와 탈성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함께다. 이제까지는 가족이 돌봄의 책임지는 장소로 여겨져왔다. 농경사회에서는 물론이고 산업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밖의 공장이나 직장에선 일하고,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장소로써의 가족은 돌봄을 담당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그다음에 함께 “잘” 의 의미는 이것이 돌봄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회라고 할지라도 시장을 통해서는 제대로 잘 돌보아 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돌봄 자체가 일종의 상품으로서의 생산성, 이윤을 내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시장경제하에서는 돌봄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려운 구조다.
잘 돌본다는 의미는 그 서비스의 돌봄의 질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구조로 가야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함께 “잘” 돌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 돌봄의 정의
먼저 돌봄에 대해 간략히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 자본주의에서 가장 성공한 인간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굉장히 경제적, 합리적, 독립적 인간이였다.
그건 노동자로써 자기의 생존을 임금을 통해서 열심히 일해서 자기 생존을 보장 받아야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기본적으로 직업 자체가 없거나 임금소득자체가 없으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서의 가치관은 독립과 개인이라는 것이 중요한 형태의 가치이자 목표인데, 과연인간이 이러한 상태가 되는 것은 통계적 수치로 이야기하면, 경제활동인구만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인구이다. 15세 이상의 취업자인 사람만 인간으로써 대접 받는 사람들인데, 과연 그런 개인과 독립적 인간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일한 가치를 갖고 있는 그런 인간인가,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경제학이 정의하는 경제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의미한것 아니가 생각한다.
인간의 생애주기를 살펴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고 그 순간 개념적으로는 15세 이해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의존적 존재라는 것이고 의존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애에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다.15세 이상부터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18세든 20세던, 일을 하기 시작한 그순간에는 취업한사람과 취업못한사람으로 분류가 되고 그래서 계속 임금소득과 여타의 다른 소득활동에 종사하면서 이 사회에서 일정한 자기정체성릉 획득하게 되는데, 이 단계가 불안한 상태인데, 어느정도 이 단계가 보편적으로 경험된다고 하더라도, 60세 , 64세까지 일을한다고 가정이 되어있고 이러한 단계는 모두가 다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거나 상호적으로 돌봄을 주고 받는 상태에서 우리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Care를 돌봄, 보살핌으로 번역을 했지만 이것은 어쩐 특정한 Normal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기에 걸려서 나 자신이 한 때는 의존했었고 또는 독립하기도 하고 그런 상태를 들고 나고 하면서 경험 해야하는, 인간의 보편적 상태로 의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편적 상태가 의존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 모두가 의존의 상태를 경험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돌볼 수도 있고 내가 돌봄을 받아야 할 상태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이제 돌봄권과 돌봄을 제공할 의무라는 것이 작동하게 된다. 이것은 이러한 논의를 하게 된 사회경제적 환경변화가 뒤따라 왔었다. 그러한 환경변화 전에 철학적, 심리학적, 윤리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의 윤리라는 것의 발달이 굉장히 정의중심적으로 되어왔었다. 이런 얘기가 길리건(캐롤 길리건)[6]부터했는데, 정의의 윤리라는 것을 통해서 계속 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도덕성이 떨어지는가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도덕에 대한 기준자체가 정의를 기준으로해서 남성은 교육과 놀이문화와 조직사회에서의 적응과 이런것들을 통해서 룰이 작동되는 문화속에서 살아서 정의의 윤리를 발생 시킬 수밖에 없어.
그러나 여성은 이러한 정의에 룰이 작동되는것 보다는, 서로 돌보고 서로 잘사는, 인간관계속에서도 니가 옳다 그르다 룰이 아니라 관계적인 룰이 작용되는 그런 도덕성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길리건의 논의가 굉장히 다른 측면에서 비판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그러한 논리를 발전시키면 그러한 논리를 실천하는데 여성들이 적합한가에 대한 문제가 돌아오기 때문에, 과연 돌봄은 여성만의 특성인가에 대한 비판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윤리학적, 심리학적 논의부터 시작해서, 돌봄이라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인간다움의 완성을 위해서 이제까지는 간과되었던 한 측면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부족한 그러한 결여, 독립의 결여라고 돌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결여, 인간생존의 또 다른 상태이고 보편적 상태라는 측면에서 돌봄을 봐야한다.
- 돌봄의 가치와 특성
돌봄과 관련하여 논의를 좀 하고 싶은 것은, 현재 돌봄을 논의할 떄 많은 나라들은 돌봄의 가치라는 것과 돌봄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
돌봄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이것은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의미 있는, 우리 사회 자체를 지속가능게 하는, 재생산이 가능하게하는 조건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야할 단계에 왔다. 그 이유는 이미 산업사회에서 돌봄을 책임졌던 가정이 이제는 더이상 그러한 기능을 감당할 수 없는 형태로 구조자체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구조가 바귄 이유 3가지를 말씀드리면
1. 노동시간 자체가 달라졌다. 노동시간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은 남성만이 노동시장에 나가고 임금소득자였고 여성이 주부로서 전통적인 성별 분업이라고 하는 것이 일정정도 와해되기 시작했다라는 것이다.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많이 참여하게 되는 구조 이런것들이 이미 서부사회에서는 스웨덴 같은 경우는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75%가 넘었다. 이런 나라의 돌봄은 굉장히 사회화, 제도화, 공공화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는 외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남성 1인, 가족 구조안에서 1인의 생계벌이자, 홑벌이를 통해서 가계소득이 유지될 수 없는 상태까지 와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의 변화는 가족 내에서 돌봄 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사람을 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 자체가 돌봄을 가족안에서 더이상 책임질 수 없게 만드는 구조변화를 가져왔다,
2. 인구학적 변화이다. 흔히 저출산 고령화라고 쉽게 이야기하는데, 저출산고령화라는 것이 왜 발생했는지 왜 이러한 경향으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출발이 돌봄에 대한 사회 전체의 책임성을 부과시킨다는 것이다, 아이를 더이상 낳지 않으려고 하고 인간의 수명은 길어졌는데 이 두사이에는 돌봄을 누가 담당하고 돌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 돌봄을 그 사회 시스템에서 어떻게 구조화하는 지에 대한 또 다른 결과로써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안되어있고 개인과 가족의 책임에게 방치가되어있을 때 굉장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3. 여성역할의 변화
사회가 이제 변화되는 것과 더불어 여성들의 평등에 대한 욕구, 경제활동 참여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이제까지 근대적 개인으로써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들이 어쩌면 독립과 개인과 합리성과 하는 개념들이 여성이 남성보다 지체되어 경험하고 있다. 일정정도 사회변화와 변혁, 나도 이제 개인으로, 근대적 인간으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시민으로써 역할하고 싶다라는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돌봄이 우리사회에서 속에서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 형태이자 거치가 낮은 형태의 일로 간주되고 있다.
- 돌봄의 특성
돌봄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 할 때,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 중요하다고 하고 이런 얘기하지만, 돌봄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 일인가에 대해서 이 안에서 여러가지 정치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돌봄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되느냐에 따라 그 돌봄을 누가 담당하고 궁극적으로는 아주 좋은 가치이지만, 나는 하고 싶지 않아 이런 형태의 결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시간단축 후에 보니 남자들은 자기계발에 쓰고 돌봄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돌봄을 담당하는 남성들은 돌봄에 대해 지극히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거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보다 더 발달되고,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모두에게서 이러한 특성과 기질이 없는 것이냐? 그것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을 따름이다라는 측면에서 인간 모두의 보편적상태임과 동시에 인간 모두에게 이러한 노동(노동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협소한 개념일수도 있는데,)을 수행할, 돌봄을 수행할 권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성들도 내가 이사회에서 돌봐야할 권리가 있는 주체야라고 하는 그순간에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것 자체도 급진전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돌봄의 특성이라는 것을 해부해가야할 필요가 있다. 돌봄의 특성과 관련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측면 중 하나는 시장노동과 돌봄노동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 주요한 이유는 돌봄에는 정서적 동기가 작동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지금까지 가족 안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에, 가족간에서는 이해관계가 작동되어서 그런 것이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고 자녀가 노모를 돌보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로 표현되는 것인데 그런것은 애정과 헌신과사랑에 의해서 암묵적으로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것이 우리 가족관계 하에서이루어지는 돌봄이라는 것이다. 그 돌봄의 수혜자는 어머니나 아내나 딸과 같은 여성이었다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이러한 돌봄이 정서적 동기를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장 노동과 다르다고 한다면 이런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그럼 돌봄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애정과 사랑이라는 것이 항상적으로 개입되어야하는가, 현실적으로 우리의 가족관계 안에서 애정과 사랑으로 이러한 돌봄이 수행되고 있는가, 우리 현실이 그런가를 해부해 봤을 때 긍정적 답을 하기 어렵다.
상당수 많은 사람들은 돌봄을 가족밖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가족 밖에서 해결해야한다는 것에 유형이 보육이나, 요양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가족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요양하지 못하는 형태를 가족 안에서 애정과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이 가족 밖에서 높은 서비스의 질,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가족 밖에서도 이런 애정과 헌신으로 노인을 돌보는 사람이 그런 동기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를들면 보육교사나 요야교사가 그들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애정을 갖고 해내야한다는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이 시장노동과 다르기 때문에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아야한다면, 사실은 시장에서 제공하는 여타의 다른 노동과는 가치산정 방식이 달라져야한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경제학자들이 얘기하더라. 돌봄경제학자(낸시 폴브랜)[7] 이러한 정서적 동기는 치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기 어렵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까 잘 돌보는 사회에서 잘이라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치 자체에 대한 직접적 평가가 중요한 것보다 이러한 돌봄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환경을 어떻게 만드는 것이냐, 그일에 종사하는 사람, 그일을 수행하는 사람, 그 일에 대한 보람과가치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그 일의 트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보육교사의 임금을 대기업수준으로 올려줘야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고 주장할수도 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육교사의 시간을 단축하고 환경을 만들어주고 보육교사가 짧은 시간동안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돌봄 노동의 특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12시간 고용하면서 임금을 대기업수준으해줘도, 돌봄노동의 특성이 발현되기 어렵다.
돌봄의 특성이라는 것이 감정과 정서라는 것의 감정과 정서를 표준화상품화를 할 수 없다면 이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의 환경이라는 것을 돌봄 노동자의 지위라는 것의 개선을 통해 돌봄노동의 특성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돌봄의 범주
현재, 재생산을 보다 더 잘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노동이라는 것을 수행하고 그 나머지 영역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재충전하고 잘 즐기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또 다른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지는 그렇게 이어지는데 개념적으로 정의하자면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은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더 상태가 좋아지기 위한 모든 활동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만 갖고 쳐다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활동과 행위가 개입되는 것이다. 아이로 인해서는 돌봄을 노동이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활동이 수반되는 예기이다. 돌봄노동을 적어도 이 사회안에서 사회화, 제도화를 목표로 한다면 일정정도 제한된 범위의 돌봄 노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이때의 돌봄 노동이라는 것은 이용자의 상태를 좋아지게 하는거고 이 이용자의 상태라는 것은 초기에 우리가 의존적인 상태,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의존의 상태가 존재하는 시기에, 돌봄의 제공자와 돌봄의 이용자가 존재한다.
돌봄을 제기하는 방식은 국가별로 차이가있다. 급여로 수당이나 시간, 서비스 등으로 주는 나라가 있다. 물론 이 3가지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복합적으로 주어진다. 구분할 수 있는 것은 , 수당줌심의 지출이 높은 나라일수록 이러한 나라들은 이 일들을 여성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수급권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성들에게 과거에 프랑스는 모성수당, 전업주부수당, 현재 우리의 양육수당의 형태, 돌봄을 가족내에서 수행했던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보상의 형태로 지급되던것이 현금급여의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서비스라는 것은 돌봄을 가족 밖에서 공동체적으로 사회적으로, 구각가 개입해서 이걸 어떻게 수행하게끔 하느냐라고 하는, 여기에 더 많은 지출을 하게 하는 나라 일수록 공공사회지출이 굉장히 높고, 더불어서 성평등도 높은 이런 나라들에 해당한다
시간과 관련된 부분은 예를 들면 육아휴직 등을 지원하는 나라들인데, 육아휴직의 경우에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가 일을 하고 있는 형태의 나라들에는 대부분 경우 육아휴직 사용도가 높다. 스웨덴의 예를 들면 스웨덴은 육아휴직과 관련해서 0세 아이를 둔 경우에는 전적으로 육아휴직에 의해 아이를 돌보는 구조이다. 우리나라처럼 0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경우가 없다. 거의 0%에 가까움. 어떻게 그 나라가 돌봄이라는 것을 제도화할 때 수당중심으로 갈까, 서비스 중심으로 갈 까 시간 지원의 형태로 갈 까 시간 지원의 형태는 각종 휴가, 휴식, 가족 돌봄과 관련 여러가지의 형태로 지원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를 어떻게 국가가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나 국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봣을 때 여전히 탈 성별화와 탈 가족화라는 것을 여전히 그러한 상태로 이행하고 있지 못한 나라에 해당한다. 돌봄의 가치를 보고 그 가치를 제도화할 때 어떠한 형태로 의 사회로 지향할 것인가 보면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어떠한 복지국가라고 하는것에서부터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한 논의들 속에서 서비스 중심의 사회, 시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될 때 돌봄에 의한 가치라는 것도 훨씬 더 그사회속에서 제대로 발현되어질 수 있는 그런 구조가 되지 않을 까 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전체적으로 고용이나 소득에 있어서의 양극화가 심하게 나오고있는데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고용과 관련된 일자리를 늘리고(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돌봄이라는 것도 어떻게 공공의 영역에서 좋은 형태의 일자리, 질이 높은 퀄리티가 높은 형태의 돌봄을 같이 담당할 수 있는, 공공화 제도화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탈 가족화, 탈성혈화를 잘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이뤄져야 돌보는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될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한다.
3. 조혜원 보리출판사
노동시간 단축을 직원들 어떤 복지제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든 강요하기 위해서 선언했다. 물론 여기있는 내용들은 제가 정리했지만 저희가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엮은겁니다(참고자료) 출판사에서 9년을 다녔는데 반년이상을 야근을 했다. 6시간 노동제 준비하면서 TF팀의 일원으로써 하면서도 책 작업을 마감 하는게 있어서, 야근을 많이 했다. 토론도 하고 TF팀 회의도 하고, 그랬다. 이 자료도 주말에 썼습니다 ^-^; 그런 모순이 있다. 작년에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를 다룬 책을 갖고 사내 토론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생각이 일중독, 우리회사는 야근수당 없는 회사다.수당을 더 벌기위해서 한건 아예 있던 적이 없고, 주어진 일에 맞추기 위해서, 플러스로 욕심으로 하는 그런 것들이 많다. 젊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결혼은 했는데 아이는 없어서 무엇을 벌기 위해서 하기엔 적다.
교수님 글에도 보듯 일의 가치를 신성시한게 어느 순간부터 내면화되어있다는 것을 이것을 준비하면서 처음 깨달았고 충격을 받았다. 일하면서 친구, 가족, 연락이 와도 일하고 있다고 하면서 넘겼고, 일하고 있어 하면 가장 강력한 꼬리를 내리는 그런것이였는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삶과 어떤 분리된 어떤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준비하면서 너무 강력하게 깨달았다. 깜작놀랄 정도였고 저의 모든 직원이 다 놀란 것은 아니고 각자가 받아들이는 수위는 다르기 때문에, 어쨋든 주요하게 이 제도를 꾸려가려고 앞장서는 사람들은 건강한 삶, 노동에 너무 치우친, 노동신성시 그래서 유해노동에 보도자료에는 핵무기 이렇게 했지만 긴 노동도 유해노동이라고 얘기한다.
책만드는 노동은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데, 긴노동은 아무리 좋아도 유해노동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시작한것이고 이것은 개인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공동체 역과 같이 엮어서 그런 사회를 꿈꾸고, 만들고, 그런게 인간다운 사회이고, 그러려면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대표를 맡고 있는 선생님께서도 이거에 대해서 더 적극 좋아하셧고 바라셨고 공동체가 까지 만드신 분이니까, 안에서는 내부적인 충돌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 출판사가 자유로운 분위기다. TF팀 만든지 한 달반 만에 시행안이 만들어지고 10흘 만에 단체협약에 의해서 통과되고, 1월1일날 TF팀 결성 후, 3월1.시행하는, 압축되고 빠르게 될 수 있었 던 것은 취지가 그러니까, 임금감소 없다, 이런것도 뭐 대표가 깔고 가신다. 논쟁거리나 그런것들이 없고, 오히려 논쟁거리는 6시간 안에 일을 끝낼 수 있을까, 일중심으로 사고가 되고, 그런 단점은 있지만 어쨋든 저희는 노동시간을 줄여서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보도자료가 나오고 인터뷰만 몇십군데 했다. 이 자료를 보고 뜻이 좋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임금감소를 안하냐, 생산성 어떻게 하냐 이 두 가지 질문이 항상 나온다, 생산성 고민 맞는데, 1번이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 저희는 그거 크게 중요하게 생각 안하고 준비했다, 그런 데이타갖고 고민한게 아니라 운영방법만 고민했지 일 줄여서 노동시간 줄이자, 일도 줄이자, 시간 줄이고 강도높이자고 하는거 아니다. 이런 얘기하면 당황한다. 대외로 알리려고 한건 아닌데, 어딘가에 보도가 되면 어디선가 이걸 갖고 고민도 하고 연구도 하겠지 했는데,(문화형성으로 바라보고 했는데) 파급이 너무 커져버렸다. 방송국에서 올지도 몰랐고, 저희가 생각하기엔 이 단축은 실제로 33명 직원인데, 직원 모두가 이 철학을 내면화하거나 승화시키고 있진 못하다, 일 덜해서 좋을뿐, 또는 연장근로를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는데 나만 더 일하나?라는게 구체화되어서 불편해지든, 회사일로 생각하고 하는것도 그렇지만 노동시간을 줄이는게 인간다운 삶으로 가는데 출발이고, 저처럼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으면 알려서, 어떤 작은 회사의 헤프닝으로, (잘되나 보자 지켜보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임금감소도 많고, 사장님이 부자냐는 소리도 많이 듣고, 사장 개인소유가 아닙니다하면서 정리하고 이렇게도 한다.) 같은 출판업자들 부러워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경영하시는 분들이, 주로 그렇다, 다른 산업쪽에서는 말한대로 잘 되나 보자, 응원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운영하시는 분들 쪽에서는 이런 것도 많다.
시행한지 3개월이 지났고, 시행규칙만들 때도 근로기준법 참고할 것이 없어서 상당히 골치썩었다. 일주일에 12시간 넘기면 안되고, 출발이 달라버리니까, 저희는 주 30시간에 하루 6시간이니까. 한달에 18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고 넣었다. 저희가 만든 시간이다. 일주일에 4시간 넘게 연장근로하면 6시간 노동제 취지에 어긋난다, 4x4=16해서, 날짜 맞추자해서 18시간을 해야 날로 떨어지니까 잡았고, 회사 내에서 참고할 자료가 없어서 의논해서 잡았다.
시간적립제도, 수당을 바라는 직원들이 있었다. 살림에 비혼자가 반이 넘었고, 기혼자분들도 살림에 궁한 사람은 없었고, (여기가 적게 벌고 안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출판사라) 그런데도 수당에 굉장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었다.(특히 젊은 사람들이) 수당은 인간에게 욕망을 자극하는 크지 않은 돈이어도, 처음부터 수당이라는 개념은 없다, 대신 전에 야근수당은 없지만 연장근로는 완벽하게 없어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수당을 주는 대신, 연장근로하면 더 쉴 수 있도록 한다(자율적으로) 그래서 실제로 연장근로하는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다. 지금 저희는 일을 줄이는 전제인데, 일을 줄이는 준비와 방법찾기를 사원 하나하나가 스스로 하기는 어려운게 저희 출판사니까 출간 권수를 줄이거나 영업방식을 바꾼다던지 이것은 사원들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은 찾아가는 중이고, 그래도 연장근로 하고 있고. 조금만 더하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욕망이 있는데 도 그걸 꾹 누르고 집으로 퇴근한다.
4시에 싸그리 없는 날도 있고 한 두명 남아있을 때도 있고 9시부터 출근해서 한시간 점심시간 빼고 6시간 근로한다.
잘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에 평가팀을 갖을 건데
정착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운영하면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 18시간 넘긴 사람이 2쯤있것는데, 작년말부터 미룰수없는 출간일정때문에 어쩔수없었던 부분도 있다. 시작이 그러했고 지금은 직원들이 추가로생긴 두시간도 사레로 보여줄만하게 읽진 않는다, 아이돌보는 일이 가장많고, 젊은 친구들은 자기계발, 학원, 저같은 사람은 영화, 연극, 일단 시간이 생기는 것을 준비가안되고 즐길수있는 것들이 한계가 있다보니가, 그러다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아지고, 그렇게 되었다. 두시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겠지만 4시에 나가는것 만으로도 모든것을 다 얻은 느낌이 든다. 잠을자던 뭘하던, 4시에 나간다는거 하나가 어쩌면 가장 큰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릭 싶은건 마음이 한편으로 불편하다, 다른 노동자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우리는 4시에 퇴근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하니까)그래서 그런 게 없어지려면 널리 퍼져서 잘 해야겠다. 우리가 모델로 남아있겠다.
4. 엄규숙 경희사이버대 교수 의견
아까 강수돌 교수님이 노동과 관련된 체계를 바꾸면서 주거나 교육이나 의료나 이런것들을 공공화하는게 중요하다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이것보다 우선이 돌봄과 관련된 체계이다. 노동시간과 돌봄은 하나의 짝이다. 같은 하나의 구조적인 짝이라는 것이다. 돌봄과 함께 노동시간도 줄여가는 것이 맞겠다. 이숙진씨 발제도 어떤면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바뀌는거, 양성사이의 관계가 변해가고 있는 것, 가족구조 이런것들이 변하고 있고, 비혼인 사람도 많고, 1인가구가 23.3% 2010년도에, 그정도 되고, 노인이면서 1인가구도 늘어나고, 예전엔 평생 같이 살았지만(결혼하면) 현재는 그런게 무시되는 상황속에서 살고 있고,
한가족에서 태어나서, 그 가정에서 죽을 때까지 돌봄을 받는 그런 인생 경로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어. 돌봄과 관련된 제도를 바꿔야하는데 선진국에서 사회서비스로 하고 있고 그 모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분기점인 것 같다. 보수언론에선 복지예산 많이 쓰면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된다 겁을 주지만 그리스나 스페인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복지예산을 더 써야하는 그런시기인것 같다.
세번째로 노동시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시간을 배치하는 구조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야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노인을 돌보고 일도하고 자기를 위해 쉬기도 하고 일하다 말고 공부하고 싶은게 생기면 돌아가서 공부도 하고 재충전해서 돌아올 수도 있게 하는 그런 근대적 삶의 경로를 이루어줬던 바이오그래피의 틀을 사회적으로 바꿔줘야할 시점에 왔지 않을 까, 우리가 오랫동안 살고 마지막에 아프면서 사는 그렇게 사는데, 그걸 바꿔줄 수 있는 것도 사회서비스가 바꿔줄 수 있는 틀이다, 개인이나 가족의 힘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봄과 관련해서 여성주의자들이 복지국가를 어떻게 바꾸자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왔다, 그래서 제가 토론문을 늦게 준비를 해서 그 전에 두개를 붙였는데, 앞에것은 제가 6월달에 복지동향에 썼던 짧은 글이고 마지막에 요지를 묶어놓은 것인데 두개가 겹친다.
여성주의자들이 얘기할 때 복지국가가 잘되어있는 스웨덴 같은 나라들 보면 전통적 핵가족이 아닌, 그런 형태의 가족이 아닐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아니냐라고 얘기한다.
복지국가가 어떤 형태로던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체하거나 지원해 줘야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어떤 형태로 가는가에 따라서는 돌아오는 결과가 다르다. 이숙진 애기처럼 여자들에게 애기를 돌보면 돈을 주는 그런 형태의 보상이 주어지면, 그 일을 게속할 수 없고, 왜냐하면 노동시장으로 나가면 유사하거나, 더 낮은 보상을 받기 때문에 그럴바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겠다는 선택하기 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돌봄의 위기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여성운동이 한때는 국가별로 복지국가확대에 대해서 사적인 가부장제에서 공적인 가부장제로 가는거 아니냐이런얘기도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복지국가를 확대하고 복지제도를 강화시키는 것과 일정하게 전략적인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올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확대된 것 자체가 여성에게 반드시 유리한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오히려 스웨덴이나 스칸디나비아 같은 경우 노인이나 아동 주로 돌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제도화된 돌봄을, 스웨덴의 0세아동의 경우 가능하면 집에서 돌보고, 그 이후에 보육이나 이런 방식으로 하긴 했지만, 집합적인 해결책, 공공의 해결책을 추구하면 남유럽가면 집에서 돌봐라, 해결책 주겠다고 한다, 똑같이 돌봄을 하는데 결과가 엄청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대가족속에서 살고 있지 않고 공동체 경제체제가 아니라서, 노인을 돌보는것 아이를 돌보는것 장애를 돌보는것 지역사회 내에서 정신보건의 과제, 이런 것들이 돌봄의 부문에서 뛰어들어야할 부분인데, 그런것들을 어떻게 재조직화 할 것인가, 현대사회의 모습에 맞게 어떻게 조직화해야할 것인가 이런것이 결국은 그 나라, 복지의 모양이 될텐데.
같은 수준의 복지를 하더라도 표(두번재 페이지) 스웨덴하고 에컨데 프랑스를 보시면 맨 위에 gdp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29% 같이 써도, 평균급여의 프랑스는 더 많이 쓰고, 서비스 중에서도 의료서비스에 돈이 많이 나간다. 휴먼서비스영역에서 돈을 많이 쓰는 국가가 사실 복지가 좋은 국가가 되는건데, 초창기에 현금으로 무엇인가를 주고, 의료는 기본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거이다(세게적 추세) 애초에 사회서비스 자체에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권리를 많이 늘려준 국가들의 질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비슷한 국가로 독일을 보면 독일도 현금급여가 높은 나라이다. 독일과 핀란드보면 핀란드가 높다. 복지지출에서 사회서비스비중이 높다. 사회서비스가 높아진 이유는 보육이나 이런 것이 높아져서 그런데 우리나라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의료의비중을 높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에서 의료가 차지하는게, 3.9~3.2가 의료라는 것이다. 0.7이 사회서비스이다. 2005년에. 고사이세 조금 더 늘어나긴했다. 절대수준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회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확대해야한다고 얘기한다. 구조가 똑같은 돈을 쓰더라도 현금쪽으로 몰려있는 국가, 그리스보면 현금에 몰려있고 의료에 많이 쓴다.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현금으로 가고, 의료는 경향성을 갖고 의료비지출이 늘어날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있어서, 다른방향으로 틀어주지않으면 곤란한 시점이다. 아동이나 노인분 아니라 장애인, 정신보건 가족지원, 청소년 지역사회에서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들 있는데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돌봄을 굳이 아동이나 노인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재구성하자는게 맞다고본다. 아까 얘기한것 처럼 시장에서 서비스를 돈 주고 사는 것과 다른 영역이다. 한사람 1:1의 관게로 몰입해서 보기때문에 그 돌봄이 좋다고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한다면 한사람이 10명을 보던 20명을 보던 한꺼번에 맞춰놓고 약이던 밥이던 똑같이 주고 그러면 좋은데 그것은 질좋 은 돌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인, 노동, 가족, 여성의 고리를 떼어내고 싶은 이유가, 하나는 사회서비스가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OECD의 반정도밖에 안된다.(사회서비스 지출이)
그리고 그들이 돌보아져야하는 그런 편견 자체를 깨버려야한다. 가족이 그 부담을 다할 수 없을 때에는 서로 도와줄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가져야한다.
#하승창
어쨋든 대상별 서비스 수급형태를 변화시켜야한다는 것인가요?
#염규숙
아니죠, 대상별 서비스 자체가 변한게 아니라 돌봄서비스 자체가 사회서비스 라는 클안에
돌봄서비스가 사회서비스 안에서 같은 틀안에서 이야기하는게 맞다라는 겁니다
#하승창
지금은 따로따로 분리되어있는데?
#염규숙(계속)
아동이나 노인에 대한 돌봄이 여성의 몫이고 이것에 대해 보상이 있어야한다는 논리구조를 계속하면, 돌봄이 성별화 되는 악순환 속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영역에서 계속 필요한데, 넓히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돌봄의 질로 이야기한 것이다.
돌봄노동과 관련하여 일자리가 어떻게 변했는가 추적한 연구를 보니일자리가 확대되는 추세인것은 맞다. 그런데 대부분이 저임금에서 늘어, 비정규직, 준전문직 영역에서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나다보니 이것이 여성의 몫으로 늘어나, 집에서 돌보던것을 저임금의 여성근로자가 시장의 형태로 들어가 돌보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근로조건이 안좋은 것이 근로계약서를 안쓰다던지가 많다. 장시간 근로를 한다던지, 요양원의 경우 12시간 맞교대로 장시간으로 있다던지 등 일자리의 질이 굉장히 낮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기때문에 인력을 끌어오기도 힘들다.
수요자입장에서는 아동이나 노인이 욕구가 변덕스럽고 그런 수요자인데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노인은 치매걸린분도 게셔, 묵어놓는것이 최고가 아니고, 투정도부리고) 그러려면 이용자의 상태가 좋아지는 서비스를 해야하는데, 시장의 입장에서 절대 그럴 수 없다.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이유가 국가가 서비스를 위한 재원을 주기는 하지만, 전달하는 체계를 민간 전달체계를 쓰고 있는 고질적 질병이 있다. 민간 어린이 집이 들어와서 계속해서 보육단가를 올려 달라고하면서 보육에 들어간 예산이 증가한 것에 비해서는 보육이 그렇게 좋아지지 않았다. 보육을 90년대 중반이후에 시작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20년이 넘었으면 그만큼 보육이 지원된 만큼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났어야한다. 그런데 그사이에 10~5%도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이다. 보육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맞벌이에 대한 지원의 형태로 들어오긴했지만 실제로 서비스자체를 통해서 여성이 여전히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하는데, 이것은 보육서비스가 나빠서 보다는 일하는 시간 의 구조자체가 더 이상 늘어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제한 받는 것같다.
서비스의 성격도 바꿔줘야 돌봄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된다. 서비스를 늘려야하고 공공적인것으로 바꿔줘야하고, 그것이 일자리의 질과 연결이 되어야, 일자리의 질은 사회적으로 노동하는 시간, 사회적으로 사랑하는 시간, 등의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토론시작
#강수돌
아까 노인과 아이가 돌봄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 하셨는데, 저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남녀노동자들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 중독에 빠져있고 자기를 성찰하지도 못하고 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 돌봄이 필요한 그사람들 못지 않게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염규숙
그래서 정신치료상담 이런 분야가 각광을 받는 분야중에 하나이다.
#강수돌
쌍용차같이 극한적으로 내몰리지 않아도, 현대차의 노동자조차도 삶의 구조로 보면 병적이다. 성실하게 다니는게 비정상적이다.
#하승창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정신보건과 관련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인력
#염규숙
지역사회중심으로 필요하면 가서 우울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하는데, 우리사회의 경우에는 병이 이미 터질 때 그 때 치료하는, 오죽하면 힐링캠프가있나
#이숙진
그니까 교육 건강 전 분야로 확대되는거고 대상별로 한다고 했을 때 굉장히 가족이나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 기업 차원에서 제도화된 차원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가장먼저 시작될 대상화된 집단군이라고하죠, 대상화된 집단이 일종의 의존적상태를 경험하는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시작되어야하는데 사실 이부분도 제대로 안되어있어서 지출이 늘어나야하고, 말씀하신 부분은 사실은 국가와 사회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일정부분 담당해줘야하고, 아니면 보편적으로 사회서비스 자체가 확대되어야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내용들을 포함해야한다는 것이죠.
#염규숙
OECD평균에 비해 노동시간이 많다, 600시간짜리를 3개모으면 1인의 연간 노동시간이 나온다, 3사람 노동시간 단축해서 한사람 노동자리 만들수있다고 계산도 한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게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영역이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있다고 보고, 어떻게보면 자영업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나눌방법이 없다, 일을 분담하고 줄어드는 만큼 자기는 쉬고, 쉬어서 재충전이되면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돌보는 이런 구조로 가야하는데, 아직까지는 어려운것 같다. 보리출판사 궁금한 것이 2시간을 줄여도 소규모 출판사니까 일자리를 더 만들기는 어려웠지 않을까?
#조혜원
당연히 당장은 힘들고 하지만 일자리 늘리길 염두에 두고 있고, 1년에 25권씩 밖에 책을 안낸다. 그래도 매출결산하고 순매출 이런거 연말에 정리할텐데 연장근로가 계속되고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연장근로양이 6시간으로 줄였지만 연장근로자의 통게를 내면 그 양이 노동력에 준할 수 있을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 재정상태랑 그것을 감안해서 일자리 늘리기는 기본전제로(회사능력이 되면) 가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1차목적이 아니라 일이 줄어서 여기있는 직원들로 해결이 되면 고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요한데 안쓰지는 않겠다, 일을 더 줄이거나 더 이상 줄일 수 없다면 사람을 늘려야한다. 내년에는 제대로 확인도하고 실천도 필요한것 같다.
#이봉현
보리출판사처럼 자발적으로해서 나중에는 서울시나 모범사레가 퍼지면 좋은데 쉽게 잘 안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수돌에게 묻고 싶은건 제가 알기론 유럽이나 그쪽은 자영업자도 저녁 때 일정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해서 지금은 가면 술 먹을 곳이 없다
우리사회를 보면 여섯시간 일해도 4시부터 술먹으면 똑같다. 우리도 6시에 끝나서 11시 12시까지 술먹는데, 그런 것도 있는데, 문화도 달라져야 하지만, 너무 밤 문화가 성해서 이런식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하는데..
#강수돌
야간자율학습부터 없애야한다. 야간자율이 야간음주로 연결된다. 공부시간과 노동시간이 연동된다고 본다. 사람들이 일찍집에가면 어색해한다. 50%더받거나 음주문화로 빠지거나, 놀줄을 모른다. 자기를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서 한다는것이 무엇인지 감이 없이 그게 더 신자유주의적 태도로 자기개발 스펙쌓기로 가는데, 성찰하고 생각할 삶의 과정들을 음미하고 그야말로 주변, 자기를 돌보면서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돌보면서 자기를 돌보는, 이런 내면의 성숙의 과정들이 필요한데 음.. (잘 안되는 것 같다)
#이진숙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어야 되는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한다.남은 두시간은 여타의 사회활동을 하는게 맞다고 본다, 공공재에 형성이 되어있거나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와서 자는거 말고는 어떻게 쓸 줄을 모르고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고,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닌 게 오랫동안 지속이 되어 온것 같다. 그 소득이 있는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닌 다른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눈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봉현
저녁에 기타를 배우거나 애를 돌보거나 이런 것들이 있는데 남자들에겐 술 밖에 없는
김정훈 교수가 술이 집단문화활동의 유일한 문화활동이라고 하던데
#하승창
저는 노동시간축소하면 그게 다른 수요가 생길것이라고 보고 그 수요가 생긴다는 것은 다른 일자리가 생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가봐야하는 것이다.
문제는 보리출판사야 직원들이 생각해서 했다고 치지만, 우리가 이것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본다 하면 앞에 말씀하신 것 처럼 공공지출을 확대 해야 한다. 어쨋든 임금의 총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니까, 말씀하신 것 처럼 돌봄이 그 짝이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재원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니까 그것에 대한 주장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냥 조세개혁으로 하고 하던 이야기들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지금의 재정을 있는 것만 갖고도 잘 쓰고 살 수 있는 것인지 어쩐건지 궁금하다.
#강수돌
지금 파이가 작아도 어떻게든 지혜를 모아서 사회적으로 해결해내는 비중을 하나라도 늘려 나가려고 하는 가운데 그 사람들의 파이를 키우고자 하는 동기부여도 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콩 하나를 갖고도 나눠먹을 조직적 사회적 분위기라면 콩 3가마니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 철학이나 논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다음에 소득세 누진세를 늘리던지 국방비 4대강비를 줄인다던지, 얼마나 많냐, 부정부패 썩은돈, 이자까지 보태서 찾아내면 많을 것이다. 그다음에 저는 잘 산다는게 끊임없이 물가인상이 되면서 많이 버는 이 과정, 악순환의 과정 그러면서도 크게안보이면서 많이 파괴되는 그런것 보다 적게 먹고 적게 쓰는 푸지게 사랑하는 이런 삶의 가치 이런 논의가 되면 돈이 덜들면서도 여유를 누릴 수 잇는 그런 방향성이 필요한 것 같다.
#조혜원
우리가 이걸 할 때 노동이 시간=돈을 극복하려고 논의한것 처럼 논의하다가 중단한게, 어쨋든 시간 적립을 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시간동안 밥을 먹을 수 있게하거나, 의료를 받을 수 있게하거나 기분좋은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하려고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적어두기만 했다. 노동이나 시간이 자본주의의 확폐로 환원되는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이것을 품이라는 표현으로 품이 형식상으로는 교환수단, 지역화폐로 하는데도 있고 그런데, 국가단위까지는 모르겠고, 마을 마을단위, 공동체에서도, 예를 들면 돌봄도 주고받는, 공동육아보다 좀 더 나아간, 돌봄도 주고받는, 돌봄 등 이런것들이 조세, 무슨 세 이렇게 되는 것은 국가단위이고 그 행위도 노동은 돈으로 환원이 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것 같지만 작은 물결이라도 노동이 화페로 바로 환원안되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가치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박원순시장이 서울에 마을공동체를 추진하는데, 이런 정서가 속리산이라는 기본으로 품을 개발하느넥 맞는 것 같고 여러방향으로 퍼뜨리려고 하는것 같더라, 그게 국가단위로는 안되더라도, 사례들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라는 노동 = 돈으로 되는 것들을 우리 방식대로 만들어가고 싶다.
#강수돌
생활의 화폐의존도를 줄이자, 그게 길게가면 일종의 에스핑 엔더슨[8]의 탈상품화[9]전략과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시장을 통해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나 마을, 공동체 이런 것들이 가사 노동내지 돌봄 노동을 화페로 생각할 수 있느냐 말씀 하셨는데, 그런 어려운 것들 정의나 유대망의 든든함 푸근함 이런 건 경제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어찌보면 돈을 적게 벌더라도 그거런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존엄을 누리면서 인간으로써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이렇게 찾으면 그게 진짜 복지 아닐까
우리가 좀더 잘 선명하게 성공해서 타의 귀감이 되면 폭발적 효과를 누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염규숙
하나는 미친 속도에서 내려가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새로 자생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내서 네트워크 안에서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그런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나 사회가 갖고 있는 틀을 바꿔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에게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몇개를 늘려라 이런 주문은 우리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주문이 아니다. 성공적 노동을 하거나 기업전체가 큰 위기에 부딪혀서 문제다. 그거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조건도 바꿔야하고, 운동도 세져야하는 부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축이 동일한 돈을 가지고 라도 OECD평균만큼이라도 복지를 위해 써라, 그리고 그 쓰는 돈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사회서비스를 공적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돌려라 물론 정권이 바껴야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겟지만 그 일자리가 가족하고 노동시간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거라고 본다. 돌봄이 모두 좋은 돌봄이라고 볼 수 없다. 얼마나 세부적으로 교육도 더 잘해야 되고, 얼마나 서비스가 잘 이루어지고 있는 지 봐야 안다. 일자리가 많이 생길수 있는 부분은 그부분이다. 그러면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잇는 것이다.
#하승창
법제화하는거죠
#이원재
지금 말씀하신 고 순환은 제가볼 때 시장이 잘하는 영역아닌가 생각한다. 이용료를 받고 임금을 주고 임금에서 세금을 받고
#염규숙
아니죠. 뵤육서비스 있잖아요 그 재원은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다 장기요양에 대한 정부(사회보험료)에서 나온다. 애초에 구조를 잘못 놓아서 민간기구로 들어갔고 민간에서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기려고하니 보육교사 요양교사를 착취하는 것이다.
#이숙진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업는 이유는 시장의 자본은 돌봄영역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없어. 돌봄 영역은 개인대 개인의 서비스가 제공되어야하기 때문에, 인건비에서밖에 낼수가 없어. 그래서 기업이나 시장이 여기에 진출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규모의 경제도 시행될 수 없고 사람이라는 것이 움직여야하는 영역이라서, 공공의 영역이 들어갔는데 인프라나 전달체계를 공공화한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는 비용만 공공화하는 정책 만을 한 것이고, 예를 든것이 보육이고
#하승창
육아의 경우에, 공공서비스 질하고의 문제도 있겠지만 공공이 아니라 민간에서 제공된 경우도 돈을 많이 받고도 운영하지 않냐. 줄서있고 들어가려고 난리치는데,
#이숙진
보육구조는 이렇게 되어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죠. 어린이집은 국가가 전액을 지원하는 것이고 여기는 상한선이 제한되어있어요. 유치원은 유치원비에 상한선이 제한되어있지 않아. 각 기초단체에서 비용을 결정하도록 되어있어, 유치원은 기본 비용에서 별도의 활동에 대해 추가로 비용이 들고 보육료는 국가가 지원하는 비용 내에서 아이를 보육하게 되어있는데 거기에 운영비 및 기타운영비를 받게 되어있어요. 육아 운영비라는게 돈을 얼마든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간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어떤 근거냐?
#하승창
그런게 열려있으면 제한이 있거나 그런게 아니라, 시장에서 그러면 오히려 더 기업이나 그런쪽이 더 잘 해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
#이숙진
삼성어린이집 있는데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라 사회공헌의 일환이다. 이윤창출 구조가 돌봄서비스 구조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하승창
삼성이 그걸 사업으로 하지 않으니까 그런건데, 혹시 그런걸 사업으로 하면 잘하는 구조 아니냐
#이원재
보육을 잘하는게 아니라,
#이숙진
요양보호가 지금 시장에서 제공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제공하는 단가가 더 높으니 시장이 들어올 수 없다.
#염규숙
제가 말씀드린 순환은 우리가 사회서비스에 고용되어있는 비율이 OECD평균보다 반정도 적다. 그래서 평균만큼 고용을 늘려도 된다는 것이다. 그거를 민간분야에서 못들어온 이유는 돈이 안생겨서 그런것이다. 그거를 정부가 들어와서 지자체나 공단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필요한 서비스를 공공부문 노동자로써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랬을 때 이사람들은 월급을 받고, 공공부문 에서 제공하고 세금내고, 고용보험 상태이니까, 사회보험도 내고, 일정하게 경제활동 인구자체도 늘어나는 그런 효과도 있다.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는 그런 영역이다라는 것이다.
#이원재
최근에 수치를 보니까 사실은 노동시간이 계속 줄고 있다. 아주 최근에는 2150시간으로 내려왔고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보니까 여성파트타이머들이 늘어나는거 특히 사회서비스분야에서 파견교육이라던지 그런데, 질문이 이렇게 쭉 가면 노동시간은 줄어들고 사회서비스는 늘거든요.지금 이야기했던것이 다 되는 거에요. 우리가 이루고자하는 롱텀의 보육이라는 것이 그 지표로 평균노동시간이나 사회적서비스 일자리라든지 혹시 이거 보다 더 구체적인, 하승창 말한것처럼 제도적으로 주당 30시간 노동제 도입을 생각하고 말한 것인데 좀 더 구체적인 그런 게 있는지 궁금하다
#하승창
그래서 그것과 연결해서 사회서비스의 재구조화 , 재구조화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런게 (명확해야한다)
#염규숙
쉬는 시간에 잠깐 그 얘기를 했는데 이태리 오스트리아 이런데는 간병이나 요양노동하는사람들이 동부권 사람들이 넘어와서 해요, 우리나라 조선족 아주머니들 와서 일하는 것처럼 그 이유가 여성들의 취업률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돈을 벌 수가 없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설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지도 않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은 늘어 그러다 보니 노인을 돌보는 수당을 마련했는데, 그 수당을 가족에서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일부 사용하거나, 가족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 보니 내부노동시장에서 안되고,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다. 돌봄도 글로벌화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스웨덴 같은데 가면 그렇지 않고서도 해결이 된다. 시설도 있고, 사회서비스도 있고, 사회서비스 영역에 상당히 많은 부분 여성이 진출해있다. 앞에서 사회서비스에서 투자를 많이 해야하는 때로 애기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이태리를 뺨칠 정도로 우리나라가 급속히 고령화로 가고, 아이 보육문제도 해결안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돌봄의 영역들을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어떤 서비스가 확충이 되어야 하는데, 민간에서 해결이 안되니 공공에서 해결해줘야 한다.
#하승창
지금 아까 그러면 말씀하신 것 중에 재구조화 한다는것은 수당주는 것 보다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던 시설이라던, 제공되는 것과 시간이 주어지는 것 이것이 재구조화의 기본적인 방향과내용인가요?
#이숙진
돌봄과 관련된 사회적서비스가 기본적으로 부족한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양은 늘려야한다. 사회적 지출을 어떻게 확대하느냐, 현금수당으로 확대?서비스로 확대? 서비스로 확대하자, 서비스로 확대하면 일자리와 일자리를 통한 선순환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것이다.
구조는 그렇고, 시간관련 제도화 애기를 했는데,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져, 8시간 노동제가 아무도 가장 바람직한 노동시간이라고 정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는 33시간에 대한 애기가 나올 정도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고 노동 시간 단축은 그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맥락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시간을 단축해서 제도화시키는 방식이 30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이라고하면 제도화하고 아까 특정하게 자영업 이야기했는데,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도 그것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어떤 영업시간 제한법이나 이런형태의 것들을 제도화하는것도 같이갈 수 있다도 본다. 그런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도 크겠지만, 그 저항이 노동자의 삶의 질이라는 부분에 있어 서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지 않는 상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된다. 여성관려 여성 파트타임이 늘어나고 노동시간 단축이 결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하셨는데, 우리사회를 총량적으로 볼 때는 가능하다, 그런데 총량은 항상 양극화의 합이다. 양극화를 나눠버리는 민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전혀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숫자에 놀아나는 함정이다. 파트타임의 갖고 있는 문제가 소득이 안정이 되면 파트타임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요. 그러나 전혀 소득이 안정되어있지 않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풀타임과 파트타임이 신분직 정도의 차이를 갖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효과 없다. 파트타임의 표면적으로 봐서는 그것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더구나 대다수의 여성들이 하고 있다는 것은 더구나 대다수의 여성들이 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들이 어떻게 그 일자리를 들어가고 잇느냐는 경로를 전혀 파악하지 않고는 그것이 지니는 의미는 해석할 여지도 없는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과 일자리와 소득의 안정, 일자리 문제를 봤을 때 여성들이 다른 한편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여성은 남성보다 시간만으로 봐도 시간이 적다. 여성은 13시간, 남성은 18시간 정도된다(평균) 전반적인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일자리의 창출 이런것들을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소득보장이라고하는것이 여성의 관점에서는 시간과 연동되어있다는 측면이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여성이 소득자로써의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는 그러한 상태가 되면 그만큼 여성이 조세를 납부할 수 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는 여성이 어떻게 세금을 내겠나?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소득을 갖게 하고 그 소득에 근거해서 세금을 내게하고 그 세금에 근거해서 사회서비스를 늘려서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하고, 이러한 구조속에서 남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끊임없는 착취를 경험하는게 아니라 이 돌봄이라는 영역을 나도 돌볼 떄라고 나서야한다는 것이다.
#하승창
젊은 친구들은 하고 싶어한다고 본다. 실제로 육아휴직을 하려고 한다.
#이숙진
남성들의 육아휴직은 현저히 낮아요.
#하승창
5년전 10년 전에 비해서는 조금씩 늘어나는것은 하나의 흐름이라고 본다.
#염규숙
월급이 낮은 사람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승창
그걸 하는 것 자체를 생각도 못했는데 그걸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숙진
육아휴직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 고민했는데, 육아휴직을 단큐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남성이 해야한다. 기업에서의 문제, 육아휴직 후의 고용에서의 불안정 문제, 고용불안정, 여성비고용문제 이런 것들이 남성이 사용하기 시작하면 쟁점이 사라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만큼 탈성별화라는 논의도 중요하게 하지 않으면 노동시간 단축 이후라는 또다른 성별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승창
그런게 없다가 그런게 소수라도 시작한거시 큰 변화라고 본다. 그리고 그 흐름은 결국은 확산된다고 본다. 그러면 확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어떻게 해줘야하는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염규숙
상한선이 100이고 50~100사이다
#이숙진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그것의 남성들이 더 쓰도록 하고 있는 제도를 가져왔는데요. 남성들이 임금이 더 높기 떄문에 그런데, 둘 다 맞벌이면 여성이 통상적으로 임금이 낮고 남성이 높은데, 남성이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휴직을 쓰는 이유는 임금격차를 세금을 통해 보전을 해주는 그런 형태로 남자의 휴직을 장려해주기도 합니다.
#이원재
연금이 줄어드는 것 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라 전체로 봤을 때 생산이 줄어드는 것 까지 생각을 하시는 건지, 경제성장 자체가 없는 상태까지도 생각하는 것인지?
공공복지, 교육, 의료 사회서비스가 무상으로 주어지면 임금이 줄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 했는데, 생각을 조금 바꿔서,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은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대차 노동자들이 자꾸 더 많이 일하려고 하고, 임금은 굉장히 많이 받는다, 그러면 임금 깎고, 여성노동자들이 파트타이머로 가서 일하는데 여기서 임금 올리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쪽은 쉬고 이쪽은 더 일하고 이러면서 노동시간이 자발적으로 줄지 않겠냐?
마지막으로 한가지는 이게 상충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한데, 공공에서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주도해서 제공하는 모델과 그게 이제 예를 들면 강교수님은 공동체를 중시하시는 거고요, 공동체 단위로 협동조합이라던지, 마을단위로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과 상충이 없는지 두개가 다른게 없는지?아까 프랑스 얘기하는거 보면 약간 다른 것 같긴한데요.
#강수돌
임금이 보리출판사같이 개별기업단위에서 CEO의 마인드던 개별조합의 압력이던, 임금 감축 없는 노동시간 단축 하겠다고 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좋아하는 기업경영자들은 좋다고 그러면 노동시간 줄인만큼 임금 줄이겠다 할 수 있으니까, 감안해서 전략적으로 대응하자면, 사회적으로 생활에 들어가는 지출, 사회적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간접성이 보전이되면 좀 덜 벌어도 된다, 이런 논리다. 그것과 맞물리지만 전체적으로 삶의 질 향상의 생계유지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앟는 부분은 줄이거나 없애 나가아 한다, 그러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의 총량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다 일하자라는 개념에 훨씬 더 실현가능성이 높아지기 떄문에, 지금시스템에서의 생산총량이 마이너스로 갈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IMF나 2008년 세계귬융위기 이후 마이너스성장 이야기 나오는데 경제가 퇴보하면 어때서 매일 성장하는데 마이너스 성장 중독증이다,일중독과 마찬가지로. 시스템 자체가 중독 메카니즘말로 돌아가고, 개인들도 살아가는 방식이 중독적 메카니즘이 많은 것 같다. 하다못해 동문회 모임을 하더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재밌게 놀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정규모임으로했으면 좋겠고, 회장뽑고 부회장뽑고 매월 며칠 통장에 돈 입금해라하면서 그 조직의 생동성이 없어지고 친밀함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업무적으로 나가야 하고, 자꾸 일을 만들어야 하고 심하면 상근직이 생기면 월급도 줘야하고, 월급값해야하니 프로그램만들어서 뿌리고, 나중에 탈퇴시킨다고 하고, 그런 메카니즘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정말 진정한 의미의 쇼크테라피. 생산규모 줄일 수 있다 줄여나가자 그런식으로 연결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두번째로 말씀하신 공공복지를 늘리거나 아니면 임금격차를 해소하거나 꼭 배타적인건 아니고 이런걸 병행해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이런 마인드로 가려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의 돌봄이라 그럴까? 내 건강을 돌 볼고 내 정서적 건강을 돌보고 관계, 자식과의 관계, 삶의 동반자와의 관계를 생각해봐야한다. 그래서 노동조합 열심히 활동하는 아버지들이 숙제가 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라는 거였는데 쓰다듬어주니까 애가 팔을 올리더라고 한다.
잘 산다는게 무엇인가, 이런거를 성찰하는 과정으로 같이 가야 할 것 같다. 그러면서 그래 맞아 하면서 임금격차를 기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성찰을 통해서 우리가 무조건 돈 많이 벌어서 성적 더 받아오게 그런 메카니즘보다는
결국은 중독 메카니즘과 같다라는 것이다. 노동조합가면 이런 얘기한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맞는데 어렵다 이런 얘기하죠.
그다음에 상충되지 않을 까 하는 우려, 시장의 논리와 국가의 논리를 근본적으로 보면 시장 중심적인 어떤 패러다임과 국가중심적 패러다임도 크게 보면 자본의 울타리 속에서 놀고 있는게 강해서 마을 내지 공동체 협동조합 이런 패러다임은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고자 하는 제3의 지향성으로 되어 상충되는 면도 있다. 하루아침에 이걸 이룰 수 없기 떄문에 공통된 사회적 구호로써는 사회복지내지 국가복지에 대한 욕구에 대해 제기하면서 그 한계까지 경험하고 그러면서 한계를 최대한 내다보면서 마을공동체, 다양한 형태의 복지시스템 이런것들이 저는 이제 국가복지보다는 자유복지, 공동체적인 마인드를 가진 지역과 마을, 또는 국가적 이름으로 지원해주는 이런형태? 그런것으로 가는 과정이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으로는 노동시간이 통계상으로 단축되고 있는데, 그리고 사회서비스 종사하고 잇는 분들의 노동의 질이나 약화되고 있는데 앞뒤가 안맞는 이런 부분, 제시한 부분 2004녀부터 연차적으로 쭉 해서 2010, 2012년 이러면서 이론적으로는 전문화되었다. 그런 로드맵 처럼, 로드맵을 정해서 노동시간 단축에 향후 5년 10년 이런 단위로 엄밀하게 계산도 필요하지만 일정을 잡아서 36시간제 35시간제 이런 식으로 연차적인 로드맵이 나와야할 것 같다.
공식적인 노동시간보다 실노동 교육 시간이 중요하다. 실 노동교육시간, 말씀하신대로 어떤 사람은 8시간 칼퇴근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에 3~4시간 밖에 없어서, 8시간을 채우길 원하는 사람도 있고, 평균적으로 로드맵을 잡으면 긴 사람은 충분히 있고 짧은 사람은 그정도라도해서 생활유지를 하거나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그런 정책들도 필요하겠다. 경우에 따라서 강압적 권위도 필요할 것이고. 조직이나 사회적분위기가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염규숙
우리가 노동시간을 줄이는데 자기가 일하고 싶은 시간에 일하자는 요구는 적다. 올빼미족은 늦게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그런 사람도있고 왜 우리가 9시 땡하면 미친듯이 기어나와야하는가? 사실은 6시간 정도로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다양한 형태로 늘어나고 보상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고 한다면 자기가 원하는것 선택할 수 있지 않나?
#조혜원
운영이 복잡해서 (출퇴근 카드도 없고) 부서장이 책임지게 되어있는데, 부서장에게 노동이 가중되어서 하지 못하고 운영이 복잡해서..
#강수돌
10~12시 코어타임엔 반드시 있고 그 외시간은 알아서 하자는 그런 탄력근무제 아이디어는 있는데,
#염규숙
공무원들이 2시간 먼저나오면 2시간 먼저 퇴근하고 그러넥 있다고 들었는데,
#이봉현
기획재정부 박재완이 일찍 출근해서 일찍 나가고 그거하려다가 못나가고 ,.
#이숙진
노동시간 단축의 문제가 모든 노동자들의 보편적 시간을 줄여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에를 들면 파트타임처럼 고용시간에 따를 다른 유형의 노동자군이 생겨날수밖에 없다면 다 8시간이나 6시간 할 수 없다면 어떤사람은 4시간할 수밖에 없고 그런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생겨나는건 상관 없는데 제도적으로 정규적인 근로시간이라고 하는것에 비해서 비정규직 차별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거를 기업과 노동시장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 파트타임이 풀타임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비례한 임금과 대우를 받되, 이러한 근로를 하더라도 자신의 사회적 안전망이 이미 일정 정도 갖춰져있다면 어쩌면 이사람은 이사람보다 더 좋은 질들을 누릴 수 있을 건데 많이 일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임금의 더 잘 살수 없는 구조로 간다면 적게 일하는 사람은 항상적으로 여기를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구조로 간다면 비례해서 적게받지만 기본적인 삶이라는 것은 보장되어있는, 그래서 공공의 복지가 일정 정도로 늘어나야한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완전히 무상으로 가야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려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무상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너무나 소득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되어있는 구조하에서 무상이 아니라 일정정도 수익자 분담으로 원칙으로 간다면 결국은 개인이나 가계소득에 일정정도의 비율로 작동되어야할 측면이 있는데 그게 정확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소득구조가 정확히 파악이 되어서 모든 세원이 드러나면 수익자부담의 원칙을 조금은 가저갈 수 있겠다, 공공의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마을 공동체와 상충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예를 들면 협동조합이나 공동체나 사회적 경제나 등등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운동을 하거나 이런 논의들이 사실 전폭적 단위로 일어나진 않아 굉장히 지역 중심이다. 지역중심은 그 지역주민들의 능동적 행위라는 것이 매게가 될 때만 가능한, 그것은 굉장한 장점이자 한계이다.
지역간 격차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어떻게 조절할 수 없다. 이런 부분을 복지재정의 복지혼합 이런차원이 아니라 이런 자율성과 전폭적 행위자로서 하는 것을 국가가 서포트 해주지만 국가가 인위적으로 제도화할 때 이것 역시 제도화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페이들이 발생할 수 있어, 국가복지에 대해서 일정정도 찬성하면서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국가복지가 지나치게 관료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이지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때문에 그래서 적어도 그부분에 대한 논의는 일정 정도 밀고 나가야 한다. 국가복지의 역할이 약화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여야한다.
#염규숙
어쨋든 공공성을 갖고 있는 복지영역을 대폭키워줘야하는 시점인데, 돈을 무조건 주며 확대하는 것은 문가 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그런쪽에서의 서비스를 늘리고 그걸 늘리는 과정에서 이미 키워 놓은 보육이면 보육, 요양이면 요양 쪽의 민간인 사업자들을 교통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자체가 굉장히 로비벽이기 때문에 아동이나 노인을 쥐고 흔드는 세력이다. 표가 붙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움직인다. 보육시설 연합회 이런데서 와서 해달라하면 복지 이러면서 쩔쩔 맨다. 채널을 만들어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내야하는데 그중에서 많이 말하는것이 비영리 법인으로 변화시켜가자 법인차가 된것들이 좀 공급자로 남아있도록 하자는 얘기들이 있고, 그렇다라고 하면 공동육아나 이런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것 인가 얘기가 된것 처럼 노인들 그루포넟럼 운영하는 그런것들 약간 공공성을 띄고있는, 공공성을 띄고 있는 준 공공기관의 형태들이 그 다음의 공급자가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공급구조에 대한) 개인이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를 하면서 이름은 요양시설 이름은 민간어린이집 이러헥 해놓고 국가돈을 갖고 사업을 하는 행위를 빨리 깨주어야 한다.
#하승창
그걸 뭐라고 하나요? 공급구조의 비윤리성을 깨야한다는 건가요?
#염규숙
미국은 웰페어 믹스를 바꾼다고해서 국가가 신자유주의가 들어서면서 국가는 안하고 지방으로 다 미루고 민영화한다는 논리를 써서 시장에서 하는 조치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국가가 하지도 않으면서 지방화해야한다, 민영화한다고 하는데,보수적인 분들이 많이 주장하신다. 이미 많이 민영화되어있고, 이미 많이 지방화되어있다(없는 가운데) 우리가 공공성을 강하고 사회적 성격이있다는 것을 강조해야하죠.
#이숙진
그 공공성이라는게 오해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 국가가 돈만 내면 끝이 아니야, 그건 오해할 수 있다.
#하승창
노동시간 축소라는 것이 갖는 의미나 이런것들이 단순히 일자리를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이야기한것 같고, 법제화 이런 얘기한 것도 실제로 정말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가능한 방법이냐, 보리의 예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게 옳은 건지, 기다리면 되는 것인지, 말씀하신것 처럼 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운동의 수준으로 이야기하려면 굳이 정책적 기조로 이야기할 필욘없자나요
정책으로 강요하는거보다 운동으로 자발적으로 하는거는 변화시킬수 없다. 문화적 변화를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라는 것도 그 이상의 반응이어서 놀라고 있다고 하셔서
#조혜원
저는 정책으로 해주시길 바랐고, 국회까지 보내려다가 여력이 안되서 못한것이고 국회에 다 뿌리고 싶었다. 한국노총이던 민노총이던 아무도 연락이 없고 실리지도 않고, 그당시에 많이 실망했다. 주최들이 , 노총이던 노동사회연구소던 국회던 모델이 있으니까 이걸 활용해서 빨리 정책으로 노동시간 단축 의제를 많이 들고 나왔는데 12시간으로 줄인다는 치고나가는 것이 매체가 아니라 그런것 들이길 바랬는데 정책으로 운동+정책으로 되게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단계적으로 먼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승창
막연하게 30시간 하자고 하면 안받아진다,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하면 받아들여질거라는게 있다는 것이죠, 그 이러이러한것이 무엇이냐.
#이봉현
옛날 부터 공무원부터 선도하면 바뀌는, 공무원은 강제력이 들어가니까 8시간 일하지말고 가라. 그러면 대기업들이 따라가는 사회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이숙진
야간근무 금지. 점심시간 한시간을 근로시간으로 하자, 그래서 한시간 줄이자, 이런 얘기했다.
#이원재
산업마다 다르긴 한데, 여름휴가 한달 가는것도
#이봉현
그것도 괜찮다. 봄가을에 전사회가 쉬는...
#하승창
우리는 여름한철은 일이 없으니 공장문 닫을게 그럼 오케이
#염규숙
임금을 안준다그러면 안되는 것이죠^^
#강수돌
안식년 제도도 필요한것 같다. 단체교섭으로 협상의 대상이 될수도 잇겠지만 무급이던 유급이던 6개월이고.
#이숙진
전근로자의 안식년 제도,
#염규숙
1년을 쉬는건 상당히 불안하니까,
#강수돌
한겨레도 안식월이 있나요?
#이원재
10년에 한달이요
#조혜원
저희는 5년에 6개월
#이봉현
그럼 10년에 1년
#조혜원
다쓰진 않고있는데 몇몇이 쓰고있다.
#염규숙
부분적으로 줄여주는 방법도 있다. 자기가 집에 돌보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일을한다, 그러면 일하는 시간을 10%~20%줄이고 임금손실없이, 이거는 사실 근로시간 단축지원해서 고용보험에서 주면되거든요. 이사람은 보호받아야할 근로자이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6시면 4시에 퇴근할 수 있게, 예를 들어 자기네 근무시간을 10시간으로 따지면 파주에 사는데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사람 애는 데려갈 수 있도록 이런 구조로 돌아가는 이런 것은 바꿔줄 수 있어
#이숙진
Carence ~~? 돌보는 사람에 관한 법들이 있다(미국에도 있고) 우리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의 변형된 형태가 남녀고용평등및 일가족양육지원에 관한 법이있는데 굉장히 형식적이고 원시적이다. 그런 형태의 돌보는 사람에 제대로 돌봄을 수행하기 위해서 국가와 기업이 전방위적으로 일정한 서포트해줄 필요가 있다.
#염규숙
보상이 아니나 일정한 행위를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완전히 대체해주는 것은 서비스를 주는 건데, 서비스를 받아도 서비스의 24시간을 받는 건 아니니까.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
#하승창
노동시간 축소라는 문제가 사회 자체를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매게가 된다는 말씀을 해주신게 이숙진선생님 포인트중에 하나였고 공공지출의 확대라는 것은 돌봄노동이라는 것과 짝을 이룰수밖에 없다는 것, 그 외에도 있겠지만 출이면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복지문제도 이렇게 접근하면 다른 양상으로 복지 문제도 우리사회를 다른 패러다임으로 만드는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그런차원에서 지금의 사회구조를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겠다. 노동시간 축소의 경우 법제화가 가능한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축소한 사업장에 대해서 제도적 지원이 가능한지, 어떤 로드맵이 좋은 건지는 더 이야기를 해봐야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의미라는 것과 방향 이런것들은 새로운 문제제기를 위해 가능할 것 같은데 실제화 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방법들에 대해 의제로 만들기 위한 검토가 필요한것 같다
#이봉현
자본에게 인센티브가 되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제도를 바꿔야하는게 맞는것 같다. 시간은 한두시간 늘리는게 다가 아니라는 그런 얘기를 해줄 수 있고 그 증거가 있으면 좋은데.
#하승창
그런 얘기까지는 못나갔다.
#강수돌
데이타 찾아보면 노동시간 단축할 수록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하승창
다른수요도 생길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일자리도 창출될것이라고 생각되는데....사회서비스 재구조안에는 서비스 공급자의 형태나 주체 등도 중요한 형태로, 그런 정도는 의제가 될 것이다 그래야 이런게 박근혜 복지가 아니겠죠. 패러다임이 좀 다른 복지가 필요하니까
#강수돌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을 통해서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방지하려면 노동시간 다축논의는 기본적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 없는 잠정적으로 모든 사람이 정규직개념으로
가고 정규직의 정규노동 시간 단축 으로 밀어야한다.
#하승창
모든사람이 정규직이 될수는 없으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라는 것에서는 지금과 동일하게 잣대로 작용하기는어려운것이고 하더라도, 그만한 동의를 받던지, 사회적 안전망이 있던지 그런 것들이 전제가 되어야 겠다.
<마지막 발언>
#강수돌
저는 계속 강조하고싶지만 모두 조금씩 일하자. 자기에게도 좋고 가족이나 주변에도 좋고 세게평화에도 도움이 된다. 일 덜할수록 좋을 것 같고 잘 놀아야 일 잘할 것이고 그 다음에 많이 일하는 사람은 많이 쉬어야 한다, 쉬운 개념인데 보편적으로 공유했으면 좋겠고 이런 논의들이 좀 저녁마다 음주문화를 하는데 술 한잔 하거나 차 한 잔 하더라도 일상적인 의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적게 일하면서도 푸지게살 방법 없을까? 이런 의제들이 주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숙진
모두 조금씩 일하자를 다시해석하면 모두에도 남녀가 포함되어야하고, 일에는 돌봄 노동도 포함해야한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염규숙
그 돌보는 일이 괜찮은 일이어야하고, 공공부분 일자리주자 공공부문되어서 파업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재구조화할 때 돌봄을 받는 사람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아동이면 아동 장애인이면 장애인,그거를 잘 생각할 수 있는게 잘놀고 일도 잘하고 성공하는 것이죠. 돌본다는게 잇으면서 같이 놀아준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중요한 것이다.
#이원재
조부장님 생산성이 높아지실것 같다. 편집하신다고 하셨는데, 두시간 줄어서 그걸로 영화보면 훨씬 상상력이 풍부해져서 생산성이 풍부해질듯 ^^ 돌봄서비스 이야기도 중요하고, 제조업의 노동자들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지식 산업의 경우에는 또 다른 중요성이 생산성 높아진 다는 것을 조금 더 창의적 혁신이, 어쨋든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그런 게 있지 않을 까
#조혜원
교수님 글에 4시간 나와있는데 조화로운 삶 보리에서 나온 책인데, 그책을 볼 때부터 꿈꿨다. 그 노동이 출판이던 농사던 그리고 땅이랑 결부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랑 가깝지 않다. 스콧 니어링[10]의 삶에서 벌기 위해서 일 하는게 아니고 살기 위해서 농사를 짓고 우리도 우리 노동이 그냥 살기 위해서 하는 노동이 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 몇 시간 노동제 이런게 사라지고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받고 싶은 만큼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봉현
자전거타고 헤이리 갔다왔다. 쉬는것도 경쟁적으로 쉬느라 피곤하다. 자전거탔는데 주차를 못해서 돌고, 사회가 조금 자전거 타는 속도로 가면 옆에도 좀 보면서 관조도 하고 성찰도 할 것 같은데 우리 프로젝트 어딘가에 소제목이라도 자전거 타는 속도로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더라고요.
#하승창
오늘 30시간 노동제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별로 논의를 안해서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나와서 올해 조금 더 논의해보면 어쩌면 보리의 바람이 정치적 의제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만큼 돌봄 노동쪽도 가치 면에서 새로워 질 것이니까.
끝
[1] "강수돌 교수가 추천하는 '일중독 벗어나기'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2012. 30 May. 2012 <http://www.hani.co.kr/arti/SERIES/402/532871.html>
[2] "피로사회 | 문학과지성사." 2012. 30 May. 2012 <http://moonji.com/book/%ED%94%BC%EB%A1%9C%EC%82%AC%ED%9A%8C/>
[3] "강수돌 교수가 추천하는 '일중독 벗어나기'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2012. 7 Jun. 2012 <http://www.hani.co.kr/arti/SERIES/402/532871.html>
[4] "노동자와 생태주의." 2012. 7 Jun. 2012 <http://www.nodongnews.or.kr/(S(0qsvx245sjmrpi55n4a13u55)A(4u1HNLJVzQEkAAAAZmFkMTdlMGEtZTA4Ni00OWRmLWFhZWMtYmJjZGEzYzU2ZGNl3-miTv4O2qHCMVSi-1--us6CeO81))/News/View.aspx?pdsid=3869&page=12&type=special&totalid=5354&keyword=&keyfield=>
[5] [글로벌] 왕따, 호모 사케르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39
[6] 캐롤길리건 : 미국 페미니스트, 발달 심리학자, 윤리학,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30년 이상 교수로 일했다.
[7] 낸시 폴브레 :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대중경제학센터 상임경제학자, 호주국립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사회정치이론 프로그램 객원 교수. <맥아더재단 가족경제연구네트워크> 부회장, <세계은행>, <국제노동기구>, <인구협의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세계여성경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학회지 <<여성주의 경제학>> 부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8] 에스핑 엔더슨 :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으며,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트렌트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폼페우 파브라 대학의 사회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9] 개인이나 가족이 시장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를 가르킨다.
[10] 스콧 니어링의 삶(웰빙 생활 습관)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77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