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 club

2025.3 -

김예솔

박주원

신승주

신혜정

* 2026년에는 매월 다른 주제를 바탕으로 한 텍스트가 공유됩니다.

2026 4월의 주제: 소화전

김예솔, 비밀창고

나는 담배를 핀다. 아니 폈었다? 아니 가끔 즐긴다. 20살이 넘었고, 나는 합법적으로 담배를 즐길 수 있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본가에 갈 때 내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집 앞에 내려놓는다. 소화전 안 호스 사이에. 나의 일부. 소화전은 비밀 창고이다.

나는 본가에 들어가면 하나의 의식을 치른다. 나 왔습니다! 라고 방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한 뒤, 강아지와 가장 먼저 만진다. 절반은 창고로 바뀐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일단 거실을 지나 냉장고를 스윽 열어 남은 음식을 먹는다. 이 의식이 나름 나는 집이 그리웠다는 표시인 것 같다. 집밥이 먹고싶었어. 그리고 나는 집 안에서 또 다른 사회적 가면을 쓴다. 나를 숨기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 겨울잠을 자듯 시간을 보낸다. 무방비한 모습으로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나를 숨기는 간단한 방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모습.

소화전은 흐름에 접속 할 수 있는 권한을 보관하는 장치이다. 나는 소화전의 밸브를 잠근다. 그 앞에서 내가 열 수 있는 어떤 상태를 잠시 보관한다. 담배를 피울 수 있지만 피우지 않는 상태. 그리고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 상태. 열릴 준비는 되어있지만 고요하게 그저 잠긴 상태의 소화전.

나는 그리고 나올 때 다시 꺼낸다. 담배를, 내모습을. 부모님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 줄 모른다. 하지만 소화전은 알고 있다. 열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닫혀있으면 어떤 상태로 유지되는지. 소화전 아직까지는 열리면 안돼. 아니 어쩌면 계속 열리지 않는 것이 좋겠어. 비밀을 지켜줘.

박주원, 세심함을 키우자

아이가 치아 사이에 충치가 여러 개 생겨서 치료를 받으러 갔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틈인데 그 안에서 계속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드러난 것이다. 정기검진 3개월에 한 번씩 갔는데 표면은 안 썩었는데 사이가 썩어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이에 생긴 충치는 엑스레이를 찍어야만 보인다고, 그나마 빨리 발견한 거라고. 그럼 정기검진을 간 게 다행인 건가? 아닌 건가.. 그래서 레진도 하고 은니도 해야 된다고.. 여러 개를 해야 한다고 하던데..과잉진료는 아닐까? ㅜㅠ 은니 한 걸 보니 너무 눈에 잘 띄어서 깜짝 놀랐다. 아이한테는 대충 아이언맨(?) 같다고 둘러대놨다. 아무래도 그냥 어른 치과도 가봐야 될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은니를 안 해봐서 아이의 은니를 잘 못보겠다. 나한테 돌아오는 화살 같아서 웃는 아이의 눈을 오래 못 마주친다. 미안해서 눈을 피하고 싶다.

이번 달 주제가 소화전이다. 예전 소화전은 지하를 흐르는 물 파이프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그 나무에 구멍을 내고 평소에는 막아둔 채 물을 흐르게 했다고 한다. 불이 나면 그 땅을 파서 마개를 열고 물을 호스에 연결해서 불을 껐다. 영리한 방식이다. 서양의 아주 초기의 소화전은 물을 양동이로 퍼서 나르는 방식을 썼는데 그러다가 늦어지면 불이 더 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물로 끄는 것도 있지만 호미나 기구를 이용해서 불이 나면 그 옆에 불에 탈 만한 것들을 부쉈다고 한다. 초가집 등이 많아서 순식간에 타버리기 때문에 막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수는 것. 원인 요소를 차단시키는 것. 오늘의 나였다면 아마 덜렁대다가 호스에 연결하기 위해 어디를 파야 될지도 몰랐거나, 마개를 잃어버렸거나 하지 않았을까. 원인 제거를 위해 이제 젤리는 그만 사줘야 할 것 같은..

문득 당장에 불이 났을 때 소화전을 쓰는 방법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불나고 망치 위치 찾고, 불나고 나무 심는 뭐 이런 방식의 이어짐이 계속되는 느낌.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최초 소화전 특허 아카이브가 있던 곳이 불이 나서 최초의 소화전 특허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1836년 12월 15일 미국 특허청 화재로 1790년부터 축적된 특허 기록 약 9,957건과 관련 모형 약 7,000점이 소실되었다. 그래서 소화전의 발명자 또는 초기 특허가 누구 것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1836년 특허청 화재로 초기 기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 일부 자료는 필라델피아의 기술자 프레더릭 그래프(Frederick Graff Sr.)를 초기 소화전 설계와 연결하지만, 그 특허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원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본다.)

소화전의 특허가 타버린 것과 충치, 갖다 붙이자면 다 비슷한 구조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를 막 생각하다가 느꼈다. 아, 세심함의 부족.

조금만 더 세심했다면, 내가 조금만 더 이를 잘 닦아줬다면, 치실 해주라고 할 때 더 시켰더라면, 한 번만 더 확인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이 한 살부터 치과치료를 가면 뭐하나 싶기도 하고. 아이 어금니에 씌운 은니가 반짝반짝하다. 어쨌든 늘 느끼지만 나는 세심함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길게 말했지만, 나한테 화가 난다는 얘기다. 이건 완전한 내 잘못이기 때문에 신 포도도 안 되고 그냥 자책의 순간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냥 자책의 순간에 한 시간 째 며칠 째 매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오늘의 주제 : 세심함을 챙기자. 몸을 움직이자. 더 빠릿빠릿해지자. 도망가는 아이를 붙잡고 이를 잘 닦이자. 아직 유치니까 치실까지 잘 해주자. 인내심을 기르자. 유튜브를 적게 보자. 쇼츠를 적게 보자. 기록하자. ㅜㅜ

신승주, 나 여기 있어

고스트클럽 4월의 키워드는 ‘소화전’이다. 이 난감한 단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소화전이 되어보기로 했다.

(*이 아이디어는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얻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집이 되어 글을 썼다.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집의 시선으로 담담히 풀어냈다.)

나는 소화전이다. 어느 공간에든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를 발견하는 순간은 이미 정해져있다. 어딘가에서 불길이 피어오를 때나 불길이 피어오를 것 같을 때나. 가장 아픈 상황에서야 나는 ‘존재’가 된다.

그 전까지의 나는 그저 거기에 있는 것으로 있다. 누군가의 눈길에 닿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억에 몸을 틀어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같은 자리에 묵묵히 있다는 것은 실상 어려운 일이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혹여 흔들린다고 해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를 무겁게, 더 무겁게 침잠시켜야 한다.

나는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언제든 불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 준비는 만일을 위한 만반의 준비이다. 나를 닦고, 감각을 곤두세워 날을 갈며, 그렇게 시간 속에 머문다. 하염없이 그렇게 있다보면 때로는 무력감에 침몰하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에 나를 태워버리기도 한다.

나는 물러설 수 없다. 겁이나도, 한 없이 무거운 무언가가 나를 짓눌러도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선다는 선택지가 나에겐 없다. 정해진 역할에 그저 묵묵히 그렇게 있다. 나의 역할은 태생부터 정해져 있었다. 불길이 고개를 들면, 나는 나를 열어 불길 속으로 제 몸을 던져야 한다.

전쟁에도 봄이 왔고, 눈을 감았다 뜨니 세상이 만개했다. 개화의 아름다움에 만끽하려 눈을 돌린 순간, 알람이 울린다. 건조한 날씨는 화재 위험이 있으니 불을 조심하라는 작은 공포탄이 세상에 퍼져 나간다. 폭격, 화재, 봉쇄, 위기로 줄을 서는 단어들이 올해의 봄을 대변한다. 흐드러진 꽃이 흩날리기 시작했는데, 밤새워 힘겹게 피어났는데, 거대한 지옥도의 한켠일 뿐인가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늘 밝고 다정했던 아이가 요즘 이유없이 퉁명스러워졌고, 묵묵히 버텨주던 사람이 고갈된 힘을 쥐어짜내며 간신히 서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불씨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기, 저기, 저 너머에서 아지랑이들이 몸이 긴 뱀처럼 스르륵거리며 나와 가까운 곳으로 향한다.

나는 가만히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그것들을 살핀다. 타 오르기 직전의 건조함, 사소한 마찰, 조금씩 오르는 열기. 화마가 온 집안을 헤집고 분해시켜 버리기 전에 구원받을 수 있게, 정확한 타이밍, 속도, 방향을 계산하고 주시한다.

화마를 마주치기 전에 준비가 필요하다. 내 몸을 잘 닦고, 묵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녹슨 곳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내 안에 충분한 물이 있는지, 화마에 맞설 용기가 남아 있는지, 늘 있던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를 점검 한다. 그리고 지옥도를 바라본다. 우리가 마주할 그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나 여기 있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이 말은 늘 같은 자리에서, 너를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 불이 뿌리고 간 씨앗이 자라 나의 안전지대를 다 태워 먹어버리기 전에 그들에게 닿을 수 있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주시하고, 눈과 침묵으로 그들을 어루만진다. 나는 그들과 함께 가기 위해 그들이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모든 신경 세포 그물을 넓게 펼쳐 진을 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속한 불씨는 계속 피어오른다. 이곳이라 생각하면 저곳에서, 저곳을 향하면 또 다른 곳에서. 앞에서, 뒤에서, 위에서, 아래에서, 숨 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서서히 번져 간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귀신 같이 옮겨 붙어 나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그래도 남아 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잿더미도 다시 일굴 수 있으니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버틴다. 그러니 당신이 한번쯤 돌아봐 이 소리를 어루만지면 좋겠다.

 “나 여기 있어.”

신혜정, 비결정 구간

:4월의 주제는 소화전인데, 어떤 글을 써볼까 하다가 sf 비스무리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이 글에서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존재로 그려내려 했습니다.

도시는 완벽하게 계산되고 있었다. 모든 위험은 사전에 감지되었고, 모든 대응은 최적의 경로로 실행되었다. 화재는 발생과 동시에 진압되었고, 구조는 지연 없이 이루어졌다. 붉은 소화전 네트워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입력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적은 사망자를 남기는 선택을 반복했다.

이 도시는 스스로를 중립이라 불렀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수치와 확률에 따라 작동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계산은 하나의 몸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평균적인 속도, 평균적인 반응, 평균적인 힘.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몸들은 점차 오차로 분류되었고, 결국 모델에서 제외되었다. 느린 몸, 흔들리는 몸, 통증을 가진 몸,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지닌 몸들은 여전히 도시 안에 존재했지만, 더 이상 계산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꼈다. 단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보호받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우주인이 돌아왔다. 그는 오랜 시간 심우주를 항해하며 인간적 감각을 거의 제거한 존재였다. 그의 사고는 완전히 계산으로 환원되어 있었고, 모든 판단은 확률과 효율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에게 죽음은 변수였고, 생명은 최적화의 대상이었다. 이 도시는 그에게 완벽하게 이해 가능한 구조였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기록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간이 있었다. 연산이 멈추고, 출력이 발생하지 않는 짧은 공백. 시스템은 그것을 ‘비결정 구간’이라 표기 했다. 그 구간은 언제나 짧았지만, 그 사이에서 반드시 누군가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은 설명되지 않았다. 원인도, 경로도, 선택의 과정도 남지 않았다.

우주인은 데이터를 반복해서 확인했다. 그러자 한 가지 패턴이 드러났다. 비결정 구간에서 발생한 죽음은 언제나 특정한 유형의 몸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패턴은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것을 유의미한 데이터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 외곽에서 이상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소화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는 예술가였다. 이상한 예술가였다.

그는 아무 도구도 사용하지 않았고, 어떤 결과도 기록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몸으로만 접촉했다. 그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았고, 반복되지 않았다. 압력과 속도는 매번 달랐으며, 그 리듬은 어떤 기준에도 수렴하지 않았다. 그것은 훈련되지 않은 움직임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지워질 수 없는 신호였다.

그는 재현하지 않았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측정되지 않는 감각을 그대로 남겼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소화전들은 더 이상 동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같은 입력에도 다른 출력을 내놓았고, 때로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것을 오류로 기록했지만, 오류는 하나의 지점에 머물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서 유사한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소화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지시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서로 닮아 있지 않았다. 어떤 이는 오래 머물렀고, 어떤 이는 스치듯 지나갔다. 어떤 이는 두드렸고, 어떤 이는 가만히 기대 있었다. 그럼에도 시스템은 그것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묶으려 했다.

실패했다. 로그에 기록이 남았다.

유사 행위 감지. 패턴 불일치.군집화 실패.

우주인은 화면을 확대했다.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동일한 방식으로 정의될 수도 없었다. 그 순간 그는 이해했다. 이것은 확산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 동시에 드러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날 밤, 두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고밀도 주거 구역과 산업 단지. 시스템은 즉시 계산을 시작했다. 어느 쪽을 먼저 진압해야 사망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어떤 경로가 가장 효율적인지 분석했다.

그러나 출력이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소화전이 동시에 비결정 구간에 진입했다. 우주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중앙 시스템을 해제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선택을 분산하라.

그 즉시, 소화전들은 각자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즉시 작동했고, 어떤 것은 늦었으며, 어떤 것은 끝내 반응하지 않았다. 물의 방향과 속도, 타이밍은 더 이상 하나의 기준에 따르지 않았다. 결과는 더 많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죽음이 균등하게 분포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통계 속에 묻혀 있던 편향이, 이제는 개별적인 사건으로 나타났다.

로그가 갱신되었다. 모델 적용 불가. 비표준 신체 다수 발생. 결과 예측 실패. 상태 정의 불가.

우주인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 도시가 지켜온 것은 모든 생명이 아니라, 특정한 형태의 생명이었다는 것을. 완벽한 계산은 누군가를 지우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그는 도시 외곽으로 나갔다. 예술가들이 여전히 소화전 옆에 서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죠?” 그가 물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거죠.”

도시 외곽에서 또 다른 화재가 발생했다. 소화전들은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 몇 개는 움직였고, 몇 개는 멈췄다. 그 사이에서 또 누군가 죽었다. 이번에는, 그 죽음이 기록되었다. 단말기에 새로운 로그가 남았다.

비결정 구간 유지. 기준값 붕괴.모델 재정의 필요. 우주인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예술가들은 더 이상 시스템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스템이 끝내 포함하지 못했던 세계 그 자체였다.

이제 이 도시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몸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세계. 선택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며, 결과는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비결정 구간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류가 아니다. 지워졌던 것들이, 마침내 동시에 드러나기 시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026년 3월의 주제: 빛

 김예솔, 달과 해와 달

길을 걷다 문득 엄청 큰 달을 보았다.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가 말했다.

“와, 저 달 진짜 밝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다가 또 다른 동그라미를 찾듯 살펴보고는 대답했다.

“저거 날이 흐리고 미세먼지가 많이 껴서 가려진 해 아니야?”

낮의 어느 시간, 하늘에 보이는 크지만 애매한 밝기의 동그라미는 달일까, 해일까.

내 눈앞의 저 동그라미가 달에게는 커다랗고 매우 밝은 수준이라면, 해에게는 빛을 잃은 상태와 다름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각자가 놓인 자리에서 기준을 잡고 판단된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쁨이 있다기보다, 단지 그들이 가진 판단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대낮의 하늘에, 해치고는 어둡고 달치고는 밝은 그 경계의 동그라미가 생긴다.

만약 지금이 밤이었다면 저것은 무조건 달이었겠지.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빛을 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

낮의 달은 원래 그 자리에 있지만 스스로를 희미하게 만들어 해가 더 또렷해지게 하고, 밤이 되면 해의 빛을 받아 대신 빛난다

이상, 길을 걷다 나온 개소리 마침.

박주원, 은하수

예전에 전시 준비를 하다가 쇠똥구리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쇠똥구리는 자기보다 엄청 큰 동그라미 똥을 집으로 가져가는 방식에 은하수를 이용한다고 한다. 달빛이나 별 하나의 빛으로는 어렵지만 별의 무리인 은하수를 의지해서 똥을 집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30125059500009)

쇠똥구리는 똥을 굴리면서 은하수를 본다. 또 쇠똥구리는 넘어지거나 길을 잃으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다시 태양이나 별의 위치를 보면서 방향을 잡는다고 한다. 난 이게 참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심지어 쇠똥구리가 은하수를 보면서 가는 것은 '직선'으로 자기 집을 찾기 위함이라는 것. 그러니까 요행을 바라지 않고 그냥 앞으로 가는 것이다. 쇠똥구리가 요행을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다시 말해 방향이 정해졌다면 앞으로 가는 것이 사실은 가장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방향을 잡는다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그건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잡고 싶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것도 충족되면 좋겠고, 저것도 좋으면 좋겠고. 그래서 두 개를 해보고 싶어서 짬짜면을 시키면 그것은 그냥 짬짜면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탕볶밥을 시키면 또 짬뽕 국물이 먹고 싶고...아무튼 모든 것을 충족 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다. 직면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 같아. 그냥 피하고 싶은 것들 천지였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그냥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요즘은 '그냥'이라는 말이 마법의 언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많은 이유, 너무 많은 생각, 너무 많은 망설임, 너무 많은 감정들이 아니고 '그냥' 앞으로 가보는 것. 매일을 그렇게 사는 것. (매일 잘 못하지만 밥을 하는 것, 청소...)  

그래서 요즘에는 가만히 앉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방향을 정하면 그냥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쇠똥구리가 똥을 굴리다가 넘어질 수는 있겠지만,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듯이.  작심삼일을 삼일에 한 번씩 하듯이. ㅎㅎ

신승주, 안개 속을 걷는 사람들

작은 빛을 품고 있는 특별할 것 없는 한 집이 있었다. 아침이면 창문 사이로, 저녁이면 조잘대는 목소리가 따뜻하게 집을 밝히고 있었다. 그 집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살고 있었고, 언젠가부터 그들 곁에는 작은 존재 하나가 함께였다.

세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하루를 건너며 살아갔다. 그래서 그 집에는 언제나 빛이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누군가 이르되,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다른 누군가의 다른 이야기가 있다.

시작은 이랬다. 어느 날 아주 조용히, 빛이 먼저 사라졌다. 갑자기 꺼진 것은 아니었다. 마치 저녁이 오듯, 아주 천천히 어둠이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 있었고, 식탁도 같은 자리에 있었으며, 창문도 그 전날, 전전날처럼 한 방향으로 열려 있었다. 다만 어느 날부터 집 안의 공기가 조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맑은 날에서 흐려지기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린지 아무도 모른다. 서서히, 그렇게 서서히 집 안에는 옅은 잿빛 안개가 공기를 덮었다.

그 안개는 한 남자의 마음에서 먼저 피어올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멀리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어제처럼 오늘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렇게 그와함께 집 안에는 점점 옅은 안개가 번져 갔다.

한 여자는 그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남자는 아주 조금씩, 인지할 수 없는 간격만큼씩 멀리 가고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대답은 돌아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안개에 휩싸여 웅성거리다 흩어졌다. 그녀는 그를 붙잡을 수도, 집 안을 가득 채운 안개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그 안개 속을 계속 걸었다. 발이 닿는 곳마다 늪이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집 안의 유일한 작은 존재는 안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모험을 떠났다. 모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해야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자신의 영토를 찾아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자라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더 흐릿했고, 어떤 날은 잠시 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안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그가 느낄 수 없게 곁 눈으로 그를 살폈다. 그는 바로 옆에 있었지만, 다른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공간에 침습한 흐린 공기에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매일 그렇게 말 없이 걸었다.

서서히 집 안을 뒤덮은 안개는 언젠가부터 점점 그에게 엉겨붙기 시작했다. 안개에 쌓인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동시에 안개를 찾으면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안개는 그렇게 그의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러던 어느 밤, 남자는 길을 떠났다. 여자는 그가 나간 문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한참을 걷다 여자의 시선이 닿을 수 없는 더 먼 곳으로 떠났다. 어디인지 모를 곳까지 정신 없이 가다 돌아보니 바다 위에 올라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측정할 수 없이 펼쳐진 곳에 자신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아 망연자실해 있을 때, 작은 반짝임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해는 이미 기울어 칠흑같은 무한의 공포 속에서 수많은 조각난 빛이 먼 곳을 향해 일렁이고 있었다. 윤슬이었다.

그 빛들은 크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다만 바다가 숨 쉬듯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다.

세상이 완전히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잠시 안개 속에 들어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빛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고개를 들기 전까지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남자는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머무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계속 작은 반짝임을 하나씩 집 안에 들였다.

집을 가두던 안개는 갑자기 사라지진 않았다. 여자는 계속 걸었고, 작은 존재는 모험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빛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안개를 통과할 것이다.

신혜정, 3월이다.

3월이 되었다.

우리 집 아침은 한줄기 스마트폰 빛으로 시작한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시간, 조금 더 자도 될 것 같은데 이불 속에서 슬며시 새어 나오는 작은 불빛 하나. 그 빛은 조용한 방 안에서 유난히 또렷하다.

나는 내 아이가 그 빛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못마땅하면서도, 어느새 이것이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예전에는 시계 알람이나 TV 소리가 아침을 깨웠다면, 요즘은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이 먼저 하루를 깨운다.

“일어났어?” 하고 방문을 살짝 열어보면 아이는 늘 이미 깨어 있다. 다만 몸은 이불 속에 그대로 둔 채, 눈과 손가락만 바쁘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은우야, 아침에 핸드폰 부터 보는 거 아니지?” 아이도 알면서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조금 뒤에 슬그머니 화면을 끄고 일어난다.

그 짧은 몇 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다 알고 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요즘 우리 집은 핸드폰 전쟁 중이다. 5학년이 된 첫째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준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나는 아이와 무수히 많은 논쟁을 벌였다. 사용 시간을 정해보기도 하고, 밤에는 거실에 두고 자자는 규칙도 만들어보았다. 그래도 하루쯤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전쟁이 시작되고 스마트 폰을 선물처럼 안겨 준, 같이 사는 남자를 원망해 보기도 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지만 요즘은 단순히 스마트 폰 하나 때문에 걱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내가 자라온 세상과 너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인공지능이 노동 시장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변화가 걱정 스럽기도 하다.

마침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과 서류들을 작성하다 보니 비슷한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가족관계와 생활에 대해 적는 문서에는 아이의 장래 희망을 쓰는 칸도 있었고,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의 장래 희망을 적는 칸도 따로 있었다. 나는 잠시 펜을 들고 있다가 쉽게 적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와 같이 사는 남자와도 그런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앞으로 아이들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우리는 잠시 이런저런 직업의 이름을 떠올려보다가 예술가도 학예사도 사라질지 모른다며 웃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금 내 아이는 이불 속에서 영상을 넘기며 웃고 있지만, 언젠가는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과 경쟁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괜히 더 말이 많아지는 것 같다.

“폰 좀 그만 봐.”

“그거 말고 다른 것도 해.”

“책도 좀 많이 읽고, 책이 제일 좋은건데….”

아이에게는 그저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나는 그 작은 화면 속 세상이 너무 빨리 아이를 데려가 버릴까 봐 겁이 난다.

창문 밖에서는 아침 햇살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은우야, 밥 먹자.”

아이 손에서 잠깐 꺼지는 그 작은 불빛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이해하는 세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3월 이다.

2026년 2월의 주제: 일정

김예솔, 다음은 다음이야.

친구들이 때때로 나에게 가까운 미래에 함께 놀러 가자고 해.

내가 그때 뭘 하고 있을 줄 알고?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 알고? 왜 벌써 묻는 거야?

아니,, 미리 시간 비워두면 되지!

에? 어떻게 빈칸을 미리 만들어 둘 수 있지? 거기 뭐가 채워질 줄 알고?

물어보지 마. 머리 아파. 그만해 …

나는 방어한다.

나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다.

오늘은 미팅을 위해 나왔다. 조금 더 이르게 도착한다. 그래서 공간을 먼저 둘러본다.

여기에 내가 앉으면 되겠군.

오, 이 의자 생각보다 높네? 저기 저런 책이 있네? 들어오셔서 대각선 자리에 앉으시겠지? 이 연필 좀 미리 써 볼까? 쓰는데 좀 거칠군. 으.

사실 이 모든 것은 시간 약속에 대한 압박을 대하는 모습이다.  일하는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긴장을 내리자. 일찍이 공간에 와서 분위기를 읽어 내어 흐름에 맞게 스스로의 에너지를 접거나 터뜨려야 한다. 여기가 내 자리인 듯 나는 나를 속여야 한다.

나는 분리된 사람이다.

올해도 돌아왔다. 앞으로 계획된 일정이 불투명하다. 이따금씩 할 일이 주어지기는 한데, 아직 큰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 작년엔 어영부영 살아낸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앞으로 3개월 이후에는 뭐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없는 것을 상상하고 벌써부터 해내려고 하니 오히려 불안이 덮친다. 이 기분, 가위 눌리는 느낌이랑 비슷하다. ((나는 살면서 고3 때 가위를 단 한 번 눌려 봤다.) 한기가 마치 연기처럼 형체는 보이지만 덩어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그것이 목 뒤에서 나를 감싸 호흡기로 들어오는 기분.)

나는 한 계절 만 사는 사람이다.

내년이나 그 후에 개인전을 하고 싶은데, 이렇게 마구잡이로 불쑥 생각나고, 튀어나오는 대로 만들어 나가면, 그것들의 모음이 과연 내가 바라는 에너지로 공간을 채운 이벤트를 만들 수 있나?

이제 나는 일 년까지는 사는 사람이다.

아. 조금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네.
그래도 다음은 다음이지.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 다음까지는 생각하지 못해.
벅차. 그만해. 스트레스 받아. 부담돼.
좀 저리 가봐.

나는 다시 오늘만 사는 사람이다.

박주원, 입춘

입춘이 왔다. 2026년이 시작되었다. 절기는 우주의 질서를 머금은 일정일 것이다. 절기를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입춘은 왠지 새로운 마음이 들어 챙겨보곤 한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절기라고 하니 수많은 시간을 책임져온 '새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정을 맞춘다는 것은 항상 버거움을 동반한다. 왠지 꼭 뭔가를 해야 할 때 일정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절기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왠지 그냥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부터 여기까지'가 꼭 그 하루에 꽉 막혀있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내 상황에는 상관없이 이미 우주(?)가 만들어 놓은 일정인 것 같아서 대충 나도 어느 지점부터 편입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봄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고 겨울의 얼음이 모두 녹아내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약간의 몸 움직임을 시작하는 정도의 날이 될 것이다. 일단 또 뭔가 시작의 기운이 돌아오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또 있을 수가 없어서 겨우내 추워서 놀다가 헬스장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부랴부랴 다녀보고 있다. 아무래도 J는 아닌 것 같다는 슬픈 생각.. 일정을 역순으로 계산을 해봐도 그때뿐이다.

2016년이 SNS에서 화제라고 하기에 그때 들었던 노래들을 들어본다. 같이 늙어가는 EXO, 세븐틴, 블랙핑크...아직도 건재한 아이돌들의 노래를 들으니 왠지 내 동문 같기도 하고 괜히 더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때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금이 보인다. '그때'라는 시간이 지금을 기준으로 보는 것이니 '지금'은 또 다른 그때가 될 것이고, 그 또 다른 그때가 오면 많은 일을 지나친 상태일 것이다.

일정은 어쨌든 무언가를 마무리하게 한다. 일정이 지나면 시원하든 섭섭하든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일정이 끝나기 이전의 조급함과 가슴 답답함, 불안감은 다행히 사라진다. 강제적인 마무리. 누군가를, 우주를 탓할 수 있다는 남 탓으로 변모하는 미련. 아무튼 일정은 끝이 없이 돌아가는 세계에서 정신을 리프레시하게 해주는 고마운 것일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에서 고백하자면 또 서문재 리서치 꼭 쓰자 이랬다가 또 못 썼다. 그러면 또 그냥 내년을 기약해 보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아마도 또 돌아올 일정이므로 주제를 지금부터 잡아보자(?)는 마음을 또 먹어보는 것이다. 역시나 역순으로 일정을 계산해 보면 무려 1년이 남아있으므로 갑자기 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여러 일정을 소화해 보고 있다.

아무튼 올해는 입춘이 지났고 또 다른 지금이 오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또 고백하면 고스트클럽 원래 마감일이 2월 6일이었는데 지금 1분이 지났다. 어휴. 다이어리는 2월밖에 안 되었는데 뭔가 벌써 마음을 내려놓은 것 같이 쓰고 있다. 뭐 묵직한 것만 기억하면 되겠지. 그냥 또 열심히 살아가 봐야겠다.

신승주, 무럭무럭 자라라

2026년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에 작은 다짐들을 적어나갔다. 얼마만의 다짐인가? 그저 올해는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피하던 것들을 마주하고 싶었다. 긍정적인 마음을 지지대로 삼고 가볍게 올라보자. 그렇게 매년 했던?(내가 그런 걸 했던가?) 지키지 못할 약속과 다짐말고 다른 것들을 적어나갔다.

10개의 항목을 적고, 지킬 수 있을지 다시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10개의 항목은 모두 ‘꾸준히’ 해야하는 것들이다. 아무래도 막무가내로 기복을 유지하는 삶을 살았던터라 ‘꾸준히’가 참 힘든 인간이었나보다.

새로운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다이어리를 펴고 소소한 일들을 적어나갔다. 한주씩 잘 적다 늘 그렇듯 다이어리를 어디뒀는지 몰라 잃어버렸다. 1월의 2주가 빈칸으로 남았다. 다시 다이어리를 찾았을 때 문득, ‘내가 한권의 다이어리를 다 쓴 적이 있던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다이어리를 꼭 다 쓰겠다는 것보다 다이어리를 잃어버리지 말자. 선언적인 약속을 가벼운 약속으로 바꾸자. 그러면서 다이어리를 쓰지 않아도 일년은 늘 정신없이 지나가는 거라며 또 합리화의 명목을 찾고 있는 나. 주도성을 잃은 뇌를 붙잡고 다시 재교육을 했다.

사실 다이어리를 다 빼곡히 기록하지 않아도 나의 일년은 늘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름의 규칙도 있는데, 늘 변치 않는 규칙은 한해를 4분기로 나눴을 때 1분기는 늘 보릿고개라는 것이다. 춥고, 일도 없고, 온갖 고민이 나를 휘감는다. 2026년이 시작할때 올해의 1분기는 웃으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자고 했는데, 일정표를 보니 자잘한 일들이 1월을 녹여버리고 있었다. ‘2월은 놀아야지’라고 중얼대지만, (그러면서 지금도 놀고 있다) 그럼에도 온전히 무너져지 못함에 아쉽다. 간절함이 없달까?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는 삐죽한 마음이 튀어나와 다이어리에 있는 일정들을 다 흐트러뜨려 멜팅팟에 넣고 그냥 삼켜 먹어 버린다. 오늘은 치팅데이야. 다 잡아 먹어버리는 거야. 아무거나 먹고, 아무때나 자고,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잡아 본다. 그렇게 하루 멜팅데이를 하고 나면 죄책감에 다음 일정들을 또박또박 적어 나간다.

기복이 있는 삶. 빨갛거나 파랗게 삐죽거리며 오르내리는 차트 같은 삶. 만성피로를 달고 사는 삶이지만 즐겁다. 기복이 없는 삶, 안정적이고 별일 없지만 고루하고 무료하다. 이 삶도 만성피로는 마찬가지다. 매년 보릿고개엔 이런 생각들을 끄집어내서 나를 괴롭힌다. 괴로울만큼 괴로워야 한 해를 참으로 감사하게 살기 때문이다. ‘그만 놀고 싶다’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야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이 삶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방학인데, 집에서 쉬면 안돼?”

“안돼. 방학이라도 할 건 해야지”

“오늘은 피곤한데 문제집 안 풀면 안돼?”

“안돼, 싫은 것도 해야하는 거야.”

“엄마는 뭐해?”

“응? 나도 지금 하기 싫은 일이 있어서,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야”

말도 안되는 답을 하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다리를 달달 떨고 있는 어른의 모습이란. 근엄하지도, 일말의 존경심도 느낄 수 없는 어른. 그런 어른이 바로 나다. 하기 싫은데 어떡해, 그래도 해야하는데 어떡해… 그러면서 늘 결국 하긴 한다. 해야할 건 해야하니까. 대신 즐거운 만남을 조금 줄이고, 사회적 활동을 조금 줄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 나간다. 보고싶은 사람,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일단은 내 정신을 한번씩 토닥여줘야 하니까.

2월 전시 때문에 2021년 작업을 다시 꺼내봤다. (이것도 일주일을 미뤘던 것 같은데…)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시기, 그 당시의 내면의 우울과 분노가 느껴져 오그라드는 손발 때문에 작업 닫았다가 한참 뒤에 ‘풉’하고 터져버렸다.

‘맞어. 그땐 작은 구멍하나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는데… 지금 이 작업을 다시 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늘 기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걸음마 단계는 지났겠지? 이만하면 나도 잘 크고 있는거야’

그렇다. 나는 잘 자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 어른도 자란다. 자라고 있는 거겠지? 아마 그럴거다. 그렇게 믿으면 그런거다. 하루를 일주일로, 한달로, 일년으로 채워나가는 걸로 성장하고 있는거다. 이제 1월이니까 올해 12월에는 미세하게라도 성장해 있을거다. 그러니 다이어리를 잃어버리지 말자. 나의 시간은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으니까.

오늘도 2월의 달력을 펴고 작은 일정들을 하나씩 채웠다. 10개 적으면 하나는 하겠지. 작심삼일을 계속하면 10일은 하겠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랄거다. 나는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다. 나도 키워야 한다. 그러니 잘 자라자.

신혜정, 나는 나의 시간을 완전히 잃지 않기 위해 노력중이다.

내 일정은 해야 하는 강의와 전시, 그리고 중간중간 들어오는 프로젝트 일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움직이지만, 돈을 버는 일 이외에는 가족이 중심이 된다.

가족과의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나는 함께 사는 사람, 그러니까 남편과 톡 게시판 같은 일정 공유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이 게시판에는 각자의 주요 일정들이 올라온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남편 회사의 숙직이나, 주말에 예정된 워크숍, 둘 중 하나가 지방 출장이 있어 집을 비우는 경우 미리 돌봄을 조율하기 위한 일정, 시댁 제사나 친정 행사 같은 것들이다.

이 일정 공유 게시판을 사용하기 전에는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네가 기억을 못한 거다”라거나 “도대체 언제 말했느냐” 같은 말들이 오갔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다 결국에는 다툼으로 이어지고는 했다. 그런 다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게시판에 일정을 공지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의 일정은 주로 돌봄을 어떻게 나누고, 서로에게 무엇을 맡길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조정되고 공유된다. 아마 둘만 살았다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 이러한 일정의 조율들이 이제는 어느새 습관처럼 삶 속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서로를 배려하며—혹은 배려라기보다는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조율하게 되기까지 여러 번의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사실  가까이 살고 계신 친정엄마의 도움이 가장 컸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

얼마 전 나는 2박 3일 동안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해외에서 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어찌나 좋던지. ‘좋았다’라는 표현을 써놓고 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동안 아이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를 돌보거나 챙기지 않고 오롯이 내 몸 하나만 생각하며 지낸 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게 될 만큼 홀가분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감정이 한편으로 나는 서글프기도 했다.

‘아, 내가 이런 것을 좋아했지.’

‘나는 이런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

‘이렇게 혼자 걷고 있으니 좋다.’

‘맛있잖아?’

아이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혼자 먹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를 챙기고 돌봐야 하는 사람은 늘 완벽하고 강해야 한다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그 시간은 나의 몸과 감정에 대해 어렴풋하지만 다시 감각할 수 있었던 순간으로 남았다.

일정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대표작 퍼펙트 러버스(Perfect Lovers)가 떠올랐다. 함께 시작했던 시계의 시간은 미세한 차이로 어긋나고, 결코 다시 같아질 수 없다. 너와 나의 시간. 그리고 우리의 시간.

나의 일정은 가족 그리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의 시간이 어디까지가 ‘나’의 것이고, 어디부터가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일정이 어긋날 때 생기는 불편함과 다툼은 사실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감정의 문제에 더 가깝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시간들 사이에서 나는 계속해서 나의 자리를 조정하고 있다. 그 조정의 반복 속에서, 나는 나의 시간을 완전히 잃지 않기 위해 지금도 애쓰는 중이다.

<혼자여서 좋았던 그날 사진 중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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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 club

2025.3 -

김예솔

박주원

신승주

신혜정

*공유되는 텍스트들은 어떤 주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쓴 것을 올립니다.

2025년 12월 및 소회

김예솔, 후루루루루

 주원님의 부름으로 들어오게 된 고스트클럽.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아! 저 좋아요! 평소에 감정을 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은근한 관종이라 인스타에 이상한 글 올리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며 별 거부감 없이 합류를 했다. 아주 살짝의 고민은 다른 멤버들과의 감정선이 너무 다르지 않을까라는 걱정 뿐! (왜냐하면 그녀들은 매우 대단한 엄마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애송이기 때문에..)

 첫 만남에 그러나 우리는 생각보다 주고받은 많은 이야기들 안에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나의 아주 조금의 걱정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들은 내게 너무 다른세상의 이야기만 한 것 같다며 걱정하였지만, 나는 그조차도 너무 재밌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가진 이를 통해 느끼는 대리경험은 특히나 공감력 맥스인 극 p성향의 나에겐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것과 같았다.

 하지만 곧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글을 올리는 횟수가 쌓이며 점차 축적되는 글들을 비교해보니,, 내가 너무 바빠서인지, 최근에 일을 병행하며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서인지, 점차 조여오는 글 마감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매번 나의 글은 “으아아아아아아아!!!!!” 하고 느낌표 혹은 물음표로 끝나는 반면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은 차곡차곡 쌓여지는 감정 끝에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그럴듯한 글을 쓰지 못하는 내 자신에 한없이 움츠러들며,, 약간의 죄송한 감정을 보이니 그럼에도 작가님들은 항상 파이팅을 외쳐주셨다. (감사드려요!!)

사실 이 소회의 글은 그동안의 바쁨을 핑계대며 마무리를 다듬지 못한 나 자신을 너그러이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에게 쓰는 반성문이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다시는 이렇게 하지 않겠다는 아니 사실 또 이럴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임을 또 연결지어 무언가 큰 이벤트 보다는 소소한 지속성을 가진 만남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바램으로 마무리!

 (아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데 서툰 사람으로서 맞춤법이라던가 반복어구라던가 너무 많은 흠을 보여주는 글들의 연속이겠으나, 이 또한 완벽하게 고치지 않는 모양으로 기록할 것이다. 나중에 보면 미숙한 나의 모습에 놀라거나 창피하거나 후회하지만 이 또한 그 시간속의 부족한 나인걸!~)

박주원, 안녕 나의 삼십 대! 

2025년 3월에 시작한 글이 벌써 12월까지 올라갔다. 처음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허한 마음에 뭐라도 해봐야지 했던 것이었다. 함께 모인 작가님들은 재작년에 썼던 (1차 붙어서 너무 기대했으나 떨어진) 기획안에 참여 작가로 함께 하고자 했던 분들이다. 그때부터도 이분들과 일상과 지속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에 넣고자 했고,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으나 떨어져서 함께 글을 쓰고자 하였다.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기보다는 올해가 그냥 조금 할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할 일이 많은 가운데 글을 써야 해서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이 발전을 한 것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으나 그래도 내 마음을 이야기를 할 곳이 있어서 좋았다. 너무 거추장스럽지 않게 쓰려고 노력하였다. 말이라는 것이 꾸며내면 한없이 꾸며낼 수 있기 때문에 그저 담백하기를 바랐다. 일상은 담백하지 않았으나 글을 쓰면서 잘 정리를 하는 법을 조금씩 공부했다. 한 달에 한 번 올라가는 글들을 봐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조금이라도 공유되는 감정이 있었다면 다행이다.

올해가 39살이다. 내년이면 마흔이 된다. 삼십 대의 마지막 해를 작가님들과 함께 꾸준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 그러고 보면 지난 30대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결혼, 두 번의 임신, 두 번의 출산, 대학원 졸업, 경력 단절, 코로나(?), 다시 일을 해보고자 노력, 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해보는 사람이 되려고 한 것 등. AI, 챗GPT의 바다와 디지털 폭풍 속에서도 몸으로 때우고 몸만 믿고 가야 하는 육아와 인생을 겪으며 미술에서의 아름다움과 삶에서의 아름다움, 어른에게 있는 눈높이와 아이의 눈높이 등을 생각해 보았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삼십 대란 이것저것을 생각하면서 생각에 빠지지 않고 일단 효율적으로 결정하는 법을 배웠던 시기인 것 같다. 시간은 뒤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배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십 대는 너무 아름다웠으나 앞이 없었고, 삼십 대는 항상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뒤로는 가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러니 사십 대는 앞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더디더라도, 조금은 느리더라도. 그렇지만 진실한 속마음은 적당한 속도면 더 좋긴 할 것 같다. 욕심을 부려도 된다면 사십 대는 뿌리와 홀씨가 함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정신없이 보낸 1년을 함께 해주신 작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모두 이번 겨울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정말 감사합니다.

신승주, 한 달에 한 번

주원씨가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내 대답은 이랬다.

“무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건 가능할 것 같아요. 하지만 물질적인 걸 만드는 건 지금 당장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아이를 낳기 전에 개인전을 했고,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작년에 개인전을 했다. 7년의 공백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게 마지막 전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만 알고 있는 비밀처럼 여겼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선택해야 해.’

이렇게 다독이고 있을 때 주원씨의 제안이 들어왔다.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해도 되는 걸까? 어떡하지?하는 질문들이 빠르게 머리를 지나갔다.

그래서 내놓은 대답이 ‘지금 당장은…’과 ‘무형의 무언가’였다.

주원씨는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자유롭게 글이라도 써보면 어떠냐”고 했다. 사실 글은 부담이 덜했다. 그런데 “같이 해보자”고 답하고 나서야 문득 떠올랐다. 나는 글을 잘 못 쓰는데…

망설임 끝에, ‘해보지 뭐’하는 마음으로 한 달에 한 번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기본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래서 데드라인을 어기지 않는 인간이다. 하지 못하는 것보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데 대한 부채감이 더 크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이라는 형식은 나에게 아주 잘 맞았다. 사실 초반 한두 개의 글은 부담이 컸다.

뭘 쓰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주제를 정해달라고 해야 하나?

아마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거다. 이런 두려움은 “누가 보겠어? 우리끼리 하는 소소한 행위야”라는 자기 합리화로 진정됐다. 그러던 어느 날, DM이 왔다.

“작가님…너무 매달 훔쳐 읽기만 해가지고…”

읽는 사람이 있었다.

순간, 민망함과 감사가 뒤엉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바쁜 시대에, 도파민 넘치는 릴스나 짤도 아닌 앞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니.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이라는 루틴이 즐거워졌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은 독자를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띄우고 나면 읽어줄 누군가에게 소리 없는 감사 인사를 보낸다.

뭐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거리보다 단거리 선수형 인간인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다 만 일기장이 도처에 숨어 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은 즐거웠다.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것에 가치가 있었다. 함께 ‘있다’는 게 좋았다. 이 글쓰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내 소회는 아주 단순하다.

“좋았다.”

 

신혜정,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남긴다는 것은 내게 부담이었다. 근데 부담없이 써도 된다고 주원 선생님이 애기해 줘서 그냥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도 된다는 말에 기운이 좀 생겼었나 보다.

여전히 내 글은 솔직하기만 하고 모자라지만 의무감 이든 뭐든 글로 생각을 남기는 이 일이 좋다. 쓰는 동안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어 좋고, 흩어져 있던 감정들도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동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손에 대한 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 어린시절 이야기, 내 병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냥 나에 대한 글을 써왔다. 글을 쓰면서 뭔가 정리되는 것도 있어서 요즘은 뭘 쓸까를 딱히 고민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일까 완벽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냥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어가 보려고 한다. 어설퍼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 써보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일일 테니까.

2025년 11월

김예솔,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해.

 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흐른다. 그러나 흐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개인이 다르다. 예를 들면 쉬는시간 10분동안 고등학생 김예솔은 매점에 들러 빵하나를 사고, 먹으면서 운동장에 나가 배드민턴 한게임을 주고받고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지금은 고작 담배 한 개피를 피고 돌아오면 시작해야만 하는 아주 아쉬운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간혹 떼엇다 붙였다 하며 과거에서 미래로 아주 빠르게 툭 하고 데려다 주기도 하다. 나는 힘들어 금요일 저녁 6시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앓아 눕게 되며 눈을 뜨니 벌써 일요일 오후 3시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처럼 시간은 일정하게 흘러가지만 상대적으로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명확하게 분절시킬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주로 ‘상황성’을 많이 타는 것 같은 이 시간을 온전하게 가둬둘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방향이 있다. 시간을 측정하여 길이를 숫자로서 보여주는 기록방식. 명확하게 수치화 하여 저장할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정지된 방식이다. 시간은 흐르는데 정지의 기록이 과연 그것이 온전한 기록이라 할 수 있을까. 다음의 방법으로 녹화 녹음의 방식이 있다. 그러나 이 는 ‘소리’ 혹은 ‘화면’이라는 파일의 형식으로 보여주며, 시간의 온전한 흐름이 아닌 디지털 이라는 현상을 또다른 매개체로 변환시키며, 시간 보다는 이미지 혹은 사운드에 치중되어 있다. 더욱이 시간들 들여다보기 위해 동일한 시간을 사용하거나 편집을 통해 기록자가 재조합을 함으로써 보여주곤 한다. 나는 좀 더 시간을 은유적이면서 있는 그대로 담는 형태를 찾고자 한다. 시간의 기록에 앞에 언급한 ‘상황성’을 얹어서 말이다.

 내가 찾은 방법은 몸의 움직임, 노동이 기록된 시계이다. 아무래도 시간을 느끼고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는 주체이자, 그 흐름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시간이라고 명명한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의 몸뚱아리의 흔적을 사용하고자 한다. 우선 시간을 저장한 오브제의 방향성을 나-> 공간 -> 타자 -> 미래 의 흐름의 순서로 지정한다. 시간을 먼저 인식하여 기록하는자 = 나. 즉 ‘나’의 몸에서부터 비롯된다. -사실 노동적 움직임이 이미지적으로 들어간 작업은 이전 작업에서부터 보여져왔다. 내가 나의 몸을 이용한 노동적 움직임으로 작품에 이미지를 새기는 이유는 일종의 서명과도 같다. 나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현시대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는 힘들다. 이미지적으로도, 물성적으로도 유사한 구간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존재의 시작을 가리기 어렵다. 여기서 나는 나의 고유성을 몸의 흔적에서 찾는다. 누군가에겐 손맛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비슷한 것들 사이에 나만의 서명을 남기는 것이다.- 시간의 가변적 형상도 이 지점과 맞물려있다고 생각한다. 잠시 언급했듯이 시간은 누가 경험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른 속도를 가지게 된다. 나의 몸과의 마찰로 남겨진 흔적에 의해 속도가 기록된 장치는 타자가 작동시켰을 때에도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니다. 인식의 주체가 달라지면 그 시간의 속도는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동일하게 움직여 흘러간 시간은 각기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여러개의 수집된 시간이 모여 한 공간에서 재발생 된다면 시간의 주체성은 누가 가져갈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항상 말한다. 모호함은 모호함으로 둘 때 그것이 완벽함에 가까워진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게 둠으로써 붙잡을 수 있다. 나는 나의 이 이론을 토대로 어쩌면 완벽하지 못한 방식으로 완전한 시간을 작동시키는 법을 찾고야 말 것이다.

박주원, 눈을 떠.

할머니가 아직도 나한테 하는 말이 있다. "길 조심, 차 조심, 사람 조심". 이 말을 나도 똑같이 아이들한테 해준다. 차 조심을 외칠 때 꼭 노란 선이 있는 쪽의 가장자리로 비키라고 말을 해주는데 왜인지 아이들은 차가 올 때 비키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눈을 꼭 감아 버린다. 얼음이 되어 버린다. 그럼 차를 피하지 못한다고, 옆으로 빨리 비키라고 해도 그냥 그 자리에 얼음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나도 그랬던 거 같아. 무서운 걸 보면 그냥 눈을 감아버렸던 거 같다. 그럼 좀 괜찮아지겠거니 했던 거 같다. 그거로도 안되면 계속 나를 험하게 다그치고 몰아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애들이 말을 알아듣고 나서는 그만두었다. 대신 눈을 뜨고 앞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무서울 때 눈을 감지 않고 옆으로 비키면 좋겠다. 눈을 떠야 옆으로 비킬 수 있는데. 안전한 곳으로 비킬 수 있는데. 눈을 떠야 그 차가 다가오는 건지 후진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는데. 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계속 그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동네 할머니가 "내가 셋 낳아 봤잖아. 우리가 애들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저 태어난 것이 감사한 거야."라고 둘째 많이 컸다고 하시며 말씀하신다.

그래도 눈을 뜨라고는 알려주고 싶다. 그래야 길을 볼 수 있다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당장 무서워도 걸을 길을 볼 수 있다고. 그건 알려주고 싶다.

신승주, 괜찮아요, 괜찮아 

“작가님은 항상 괜찮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괜찮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맞아요. 저의 주문 같은 거예요. 괜찮아요“

언제부터였을까. 몸을 가득 채웠던 견고함이, 머리끝을 금방이라도 뚫고 나올 것 같았던 예민함이 무뎌지고 무뎌지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그런 결로 몸체를 바꿔버린 것이.

출산을 앞 둔 친구가 말했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일 걸 생각하니 짐승이 된 기분이야.”

나는 무덤덤하게 맞장구쳤다.

“맞아, 나도 그랬어.”

그리고 그 시절을 잠깐 복기해보았다.

속이 빈 껍질, 허상의 욕구와 불만, 어리둥절함이 나를 비틀며 스치는 모든 자극에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던 그때.

농담 한 마디에 ‘펑’, 위로의 인사 한 마디에 ‘펑’, 누군가의 시선 하나에도 ‘펑’. 차라리 눈물을 흘리는 게 더 나았을까?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한 그 짧은 시간들을 최대한 길게 늘려가며 온 몸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던 그 날들. 아마 그 어느 지점부터였을 것이다. 무뎌짐이 시작된 순간은.

늘 만지지도 못할 이상을 쫒으며 가열차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다가, 한풀 꺾여 장렬하게 전사하지도 못한 채 흐물텅거리며 보낸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도 마른 땅에 스미는 작은 물 자욱처럼 소리 없이, 드문드문, 여린 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싹들은 조용히 자신만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몸의 살덩이 같던 아이가 크는 만큼 나도 단단해졌다. 그리고 불안도 딱 그만큼씩 자근자근 커져갔다.

다만 내가 취할 수 있었던 방법은 필사적인 나의 삶을 느슨하게 조금씩 풀어야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자기 소개는 뱉어내는 말을 뱉는 동시에 나에게 새겨지는 흔적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를 외치며  필사적이지만 느슨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신승주입니다”

아마 그렇게라도 필사적으로, 지속되는 몸살을 조금 감추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래전, 누군가의 에세이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괜찮다고 하면 괜찮아지더라.”

그땐 속으로 ‘이건 다 개소리야’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과 글이 가진 힘은 늘 그렇듯 무거웠다.

나의 아이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마라맛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도대체 뭘 먹고 자라나 싶을 정도로 먹지도 않고, 잠고문이란 바로 이런 걸까 싶을 만큼 자지 않았다. 세상이 두려운 듯 쉽게 넘어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럴 때마다 나의 시간들은 하나씩 지워졌다.

친구와의 만남, 할 수 있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지워졌다. 억울하고, 두렵고, 공허했다. 그러나 나의 지워진 부분만큼 아이는 천천히 채워졌다. 엄마의 진부한 희생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미래를 모르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조급했던 것 같다.

세상의 불안을 다 느끼는 사람처럼 몸서리치게 울던 아이를 달래며,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했던 말들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한 글자씩 고스란히 쌓여갔다. 우린 그렇게 공명했다. 빠르게 뛰던 심장, 토닥거리던 손, 각자의 리듬을 맞춰가며 누가 먼저라며 앞질러 가지 않도록 서로의 속도를 맞춰 나갔다. 우린 서로를 지탱하며 요렇게 저렇게 각자의 속도와 모양을 끼워 맞추며 함께 자랐다.

그때의 ‘괜찮아’와 지금의 ‘괜찮아’는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루에 한 번쯤은 “괜찮아? 괜찮아”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정말 괜찮아졌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가득 채우면 지면에 닿을 틈도 없이 쌩쌩 속도를 내며 날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바람이 빠진 바퀴는 홀쭉해진 몸으로 나의 무게를 지면에 깊게 누르고 문지르듯 앞으로 굴러간다. 지금의 나는 빠진 바람만큼 삶의 표면을 누르고, 딛고, 문지르며 조금 느린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걷듯이 타는 자전거처럼 조금은 무겁게, 조금은 천천히. 앞도 봐야하고, 옆도 봐야하고, 위도 아래도 둘러봐야 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져서, 이전처럼 도파민 터지는 경주마가 될 순 없다. 눈가리개를 해도 주변을 더듬어야하고, 입을 막아도 냄새라도 맡아야 한다. 싫은 것도 마주해야 하고, 어려운 것도 그냥 해야 한다.

돌봄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혼자이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혼자였던 때를 그리워하고 잠시 혼자가 되는 상상을 하며 웃지만, 사실 모두 알고 있을 거다. 이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서로에게 “괜찮아요”라는 주문을 건다. ‘힘내요’보다 훨씬 강한 주문.

그러다보면 정말로 괜찮아진다는 걸 안다. 아마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일 거다. 뜬금없이 눈물이 차올라도, 매번 새로운 미션이 주어져도 결국엔 괜찮아진다. 그건 절대 풀리지 않는 우리의 마법의 주문이니까.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힘들지?  나도 그 맘 알아.”

그래서 또 괜찮아졌다.

괜찮다고 하면서도 얼마 전까지 네모 감옥에 갇혀 하염없이 고꾸라졌던 날들이 있었다. 허덕이고, 헤매이고 ,미끄러지고, 다시 고꾸라지는 자의 변명 같지만, 누군가가  “괜찮냐”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정도는 뭐, 괜찮다.”

신혜정, 너그러워지자. 허허실실 웃어보자. 힘빼고 살자. 그저  웃는다.

나는 얼마 전까지 장애인 예술가 강사의 수업을 관찰하고 일지를 쓰며, 평가하는 일을 했다. (아직 모든 일지 정리가 마무리 되지는 않았으니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일은 얼핏 수업을 ‘잘한다’ 혹은 ‘못한다’를 구분하는 업무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면 생각보다 무게감이 크다.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어떤 순간은 강사의 의도와 학생의 반응이 맞물려 있고, 어떤 순간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관찰자로서 내 눈은 수업의 흐름, 강사의 언어와 태도, 학생들의 반응, 접근성과 참여도의 조건 등을 모두 훑는다. 한편으로 나는 전문적인 평가자로서의 책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이해의 시선이 겹치기도 하는데 이 중간지점이 나를 종종 압박한다.

평가한다는 것은 강사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일 수도 있고, 수업의 질을 담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평가의 자리에는 미묘한 긴장이 있다. 강사 역시 장애인 예술가로서 강의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고 도전적인 것이어서 그 자리에 서 있기까지의 여정과 노력, 그리고 장애라는 조건이 있는 상태에서 수업을 설계하고 실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관찰자로서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잘했다 /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공정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술 수업이라는 맥락 속에서 특히 그렇다. 예술은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참여자의 표현과 변화는 때로는 수치화되지 않는 영역이다. 강사가 학생들의 반응을 어떻게 유도했는지, 학생들이 어떤 표현의 가능성을 느꼈는지, 그 안에서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완성도’만으로는 완벽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이럴 때 평가자의 눈이 ‘완성형’을 기대하고 있다면, 강사의 진심이나 변화 가능성 혹은 장애 요인이 있었던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나는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본다’는 행위가 곧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실감한다. 본 것을 기록하는 순간 나는 그것이 강사에게 어떤 메시지가 되리라는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 “다음 번에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문장이 강사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강사가 느낄 부담은 어떨지,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 싶은 걱정이 들어 조심스러울 때도 많다. 그러므로 평가를 하면서도 “혹시 내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건 아닐까”, “공감과 이해의 시선은 충분히 담겼나”라는 반문 역시 떠오른다.

그럼에도 이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수업을 모니터링하고 일지를 작성하는 것은 단순한 감시가 아니라, 수업의 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장애인 예술가 강사와 학생 모두가 더 나은 환경에서 만나도록 돕는 행위이다. 예컨대, 강사가 학생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 장애 특성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장애인 강사로써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참여자들에 대한 언어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수업 내외의 환경 설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기록함으로써 수업의 조건을 개선하고 배움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내가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지는 결국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오늘의 수업이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내일의 수업이 더 나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결국 장애인 예술가 강사와 참여 학생 모두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잣대를 들이댄다.

나는 관찰자로서, 평가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 애쓰는 만큼, 나 자신의 태도와 시선도 점검한다. 그러나 그 점검은 때때로 지나치게 팍팍해지고, 스스로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그렇게 나는 평가의 대상인 강사뿐 아니라 평가를 수행하는 나 자신에게도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을 건넨다. 하지만 오늘은 이렇게 다짐했다. 나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워 지자. 허허실실 웃어보자. 농담도 건네보자. 삶을 너그럽게 살자. 편안하게 살아보자. 천성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노력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조금은 허허실실 웃으며 긴장을 푸시길요”.

또 결론이 용두사미로 끝났지만, 이 글도 힘빼고 쓰자 해놓고 또 잔뜩 힘이 실려버린 글이 되었지만 그저 웃는다.

👻 추석 특집 Relay letter 👻

혜정이 승주에게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각인되는 순간이 있다. 그날이 그 순간이었나 보다.

‘그녀의 눈빛은 작가의 그것이다.’

작가의 눈빛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그건 그저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라 하겠지만, 내게는 없던 날카롭고 강렬한 그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설치미술을 하는 여성 작가들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녀 안에서 불꽃 같은 열망을 보았다. 손끝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아직 잠들어 있을때부터, 그녀의 마음은 이미 작업이 존재할 시간과 사라질 시간을 모두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완성된 형태가 관객 앞에 놓일 때까지의 긴 숨 고르기, 그리고 그 뒤 비워 질 공간, 비워진 채로 남을 흔적들.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알고 있음에도 작업하기를 멈추지 않고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이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작업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었다. (혹시 그 대화를 기억하나요?) 작품에 공을 들이는 그녀의 손길과 작업 과정이, 마지막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장르적 특징이, 나에게는 애잔함보다는 강인함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이 그녀와의 대화 속에 있었다.

나 역시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지만, 내 작업은 조금씩 몽글몽글해지고 있었다.

나의 뾰족했던 부분들이 어느새 둥글둥글해지고, 세상과 적당히 조율하며 작업을 하고 있던 때였다. 이를 악물고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옅어질 즈음이었다.

그때 그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아이를 양육하며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주변의 여성 작가들이 어느 순간 작업에서 멀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움을 자기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는걸요. 세상에는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내 마음 같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그랬다. 하지만 승주 작가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작업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많았다. 무언가를 늘 관찰했고, 그것을 잘 담아두었다가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거나  표현했다.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상황이 익숙하지 않거나 어렵게 느껴질 때면 책을 읽거나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고, 그 상황을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려 애썼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가족 혹은 일하는 관계에서 만난 그 누군가라도) 그 사람의 마음 한켠 깊숙한 곳까지 닿는 감각을 느꼈다. 어쩌면 사람에 대한 태도 역시 작업을 대하는 마음가짐과도 연결되는 건 아닐까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그 눈빛이, 그 태도가, 나를 다시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세운다.

“나는 왜 작업을 하는가.”

“작업이란 뭘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올해는 승주 작가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서 좋아요. 이 글은 써야 할 날짜를 지날 때까지 잘 쓰고 싶어서 생각하고 미루다 쓴 글 이예요.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가 느껴지는 몇 번의 대화를 하며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승주 작가님 같은 사람이 진짜 작가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장인의 솜씨 같은 완숙한 작품들을 보며, 작가님이 담고자 하는 깊은 이야기가 그 오브제 속에 얼마나 온전히 스며들었는지 느끼곤 했습니다. 양육을 하는 엄마로서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할래요~ 우리 오래오래 작업해요~ *

👻 추석 특집 Relay letter 👻

예솔이 주원에게

우리의 시간은 조용히 흐르는 줄 알았다. 조용한 시간들은 사실 대단한 감정을 이끌지 않았고 아무런 진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얌전히 다가와서 무던하게 시간이 지나간다. 허나 그저 상황을 지나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대단하지 않았던 관계는 아무런 경계를 갖지 않게 함으로써 스윽 다가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호기심을 일으킨다.

알게 모르게 자꾸 나는 우리의 흔하디 흔한 대화 안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곱씹는다. 되새김질은 일단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현상은 아니다. 분명 무언가 날 바꾸는 신호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던 미세한 감정과 조심스러운 변화는 계속해서 날 자극하고 건드리고 있다. 그러더니 어느 새 내 도처에 들어와 빵 하고 총을 쏘지 않나, 와하하하 나를 웃게하지 않나, 양 팔다리를 벌리며 서로에게 몸짓을 보내며 함께 춤을 추고있질 않나!  

대비없이 마주한 커다란 존재감은 너무나도 반전스럽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대상의 존재감에 당연히 나는  곤란할 줄 알았지만, 그리고 경계가 가득한 겁쟁이인 나는 평소라면 밀어내겠지.. 그러나 이미 한번 무너져버린 경계는 이 상황이 전혀 곤란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는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열정적이고 뜨거움이 가득한 첫만남만이 관계 안에서 엄청난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강한 힘은 서로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주원님은 조용히 다가와서 그리고 은은하게 어딘가 살짝 돌아있는, 흔하지 않은 요상함. 사람을 살살 유혹한다.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다. 나는 벌써 주원님의 매력에 빠지고 말아버렸다. 다음에 우리 진짜 함께 제일 핫한 케이팝 댄스를 춰봅시다!

👻 추석 특집 Relay letter 👻

주원이 예솔에게

예솔 작가님을 처음 보았던 건 어느 전시였는데, 전체적 흐름이 자유로워 보였다. 아, 젊음. 이런 느낌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연히 줌으로 하는 작가연구스터디에서 또 만나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간헐적 만남을 이어왔다. 스터디에서 간간이 나온 경험 이야기를 들으며 설치를 하며 좋든 싫든 꾸준히 외국의 비엔날레나 전시를 직접 본 것들이 작가의 자산이 되었을 거라고 나 혼자 생각했다. 한 번 높아진 눈은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그건 미술이 아니고도 인생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들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스터디에서 가끔 멍 때리고 있을 때 예솔 작가님이 하는 말을 들으면 자기 말을 똑바로 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업을 보니 의외로 무거운 것들을 쓴다. 재료가 무겁다. 동그라미를 쓰는데 무거운 재료가 보인다. 자유로운 히피펌과는 다른 느낌의 작업들. 그러니까 예솔 작가님의 작업들은 일정한 루틴이 있는 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있다. 작업을 굴린다든가. 그런데 어떤 틀 안에서 굴려서 색을 입히고. 작업을 움직여서 행위를 기록하고. 그러나 그 자체는 자유롭다. 관객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단한 기반을 던져주고 자유롭게 도출되는 결과를 바라본다. 그러나 각도는 좀 정해져 있는 기반이다. 마치 출퇴근 시간은 있는 재택근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물기 있는 욕조 안에서 움직이는 비누 같은. 그리고 그 작업들은 분해되어 작업실에 착착 모여있다.

그는 공간을 생각한다. 설치 하루 전까지 잠을 설친다는 것이, 그래서 프로그램을 배웠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설치는 보자기로 얼음을 감싸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각을 전시하며 놓인 자체를 많이 생각했는데 설치는 아예 공간을 봐야 한다는 걸 예솔 작가님과의 대화를 통해 느꼈다. 그러니까 결국 끝에 가서는 다 엮이기는 해도 조각은 놓음을, 설치는 놓임을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닐까 혼자 느꼈다. 조각은 작품이 들어가고 나가는 문과 바닥, 높이의 각각의 사이즈를, 설치는 공간의 볼륨 자체를 실측할 때 먼저 바라보게 ​되는 거 아닐까 했다.

작가님, 환절기니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고 약간 늙어보니 체력이 엄청 줄어드네요. 아침 일찍 나가실 때 많으신 것 같아서 아프시지 말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추석 특집 Relay letter 👻

승주가 혜정에게

당신의 충만함과 나의 게으름에 대해

뭐든 열정적으로 하는 작가가 있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일이든, 누구와 무엇을 하든 늘 같은 스탠스(stance)를 유지하는 사람. 예전엔 그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 예상이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그 작가를 소개할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엄청 빡세. 어떻게 그 많은 스케줄을 다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더 놀라운 건, 모든 일을 똑같은 강도로 한다는 거야. 엄청나.”.

이 표현은 칭찬과 두려움, 존경과 경외가 뒤섞인 나만의 방식이다.

 ‘빈틈없이 빡센 사람.’

그런데 반전은 그 사람이 다정하고 섬세하다는 것이다. 모든 온도를 다 갖춘 사람, 늘 가득 차 있는데, 비워질 틈도 없이 다시 차오르는 사람. 단단해서 강직한 사람인데, 그런데도 다정하다니?

이분법에 익숙한 나로서는 한참을 헷갈려 했다. 나에게 ‘빡셈’은 불이고, ‘다정함’은 따뜻함이다. 불과 따뜻함이 만나면 더 활활 타야 하는데, 이 사람은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아마 손가락을 굽히고 펴는 동작을 나에게 설명해줄 때 그의 말투와 움직임에서 모닥불이 떠올랐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저는 크고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잘 보이게.”

작가가 신작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기본 스케치를 봐서인지, 그의 말과 함께 이미지가 떠오르자마자 캠핑장에서 활활 타오르던 그 불이 떠올랐다. 모두가 모여 앉아 수다를 떨어도 끝까지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에너지를 쓰고, 긴 시간동안 흔적을 남기던 강직한 따뜻함.

그렇다면 나란 사람은 어떨까? 작업 외에는 예쁨과 컬러풀함을 좋아하지만 막상 작업만 하면 휑해지는 나의 생산물들. 가끔 나의 반려자가 말한다.

“너랑 작업이랑 이미지가 안 맞는 거 알아?”

나도 그 거리감을 나도 안다. 대학원 시절, 도사 같았던 한 교수님은 말했다.  

“넌 황폐한 인간이구나. 이제 너를 알겠다.”

정말 나는 황폐함의 본성을 가진 걸까? 한때는 마구 뿜어내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어느새 내 작품들은 나오는 족족 휑해졌다. 작업인지, 아닌지, 보라고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를 형태로 그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마음이 편하다.

그를 통해 나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의 근원적 게으름 때문에 이 휑함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게 부지런하게 살다보니,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할 일들이 쌓이다 보니, 정작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을 할 때는 불필요한 것들을 다 지워버리는 게으름이 작동해버린 건 아닐까?

하지만 변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자신을 펼치고 모든 에너지가 소진될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열기 곁에서 아무말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2025년 9월

김예솔, 아 그림 많이 못그렸네!

벌써 2년이 넘은 듯 하지만 나는 이전에 장위동에 위치한 케이스 서울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라는 전시를 한 적 있다. 지금은 무언가 입체물로 보이는 덩어리 혹은 가변적 설치를 작업의 매체로써 사용하지만, 나의 기반은 그림을 그리던 사람으로써 이미지를 새기거나 남기는 것이 공간으로 넘어온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드로잉을 하고있다.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핸드폰에 저장된 내가 그린 것들을 무작위로 나열해보고자 한다.

무작위로 올렸다 하지만, 내 손가락으로 누르며 한번 검열된 것들 일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나 그림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드로잉일까 다음에 어떻게 그리고자 하려나?

박주원, 청소

며칠 전부터 물건을 많이 버리고 있다. 분명히 좀 버린 거 같기도 한데 버릴 것이 아직도 산더미다. 이사 온 지 9개월 만에 이렇게 버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사 올 때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왜 이렇게 자잘한 짐이 많냐고 하셨다. "글쎄요" 하고 말아 버렸었는데, 이고 지고 하면서 이사를 왔는데 돌이켜 보면 왜 못 버렸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추억이 버려지는 거 같아서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언젠간 쓰겠지' 하면서 안 버리고 있었는데 짐이 점점 많아지더니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를 모르게 되었다. 대충 구석이나 바구니에 뭉쳐두었던 것들이 먼지처럼 쌓이고 쌓여 공간을 차지했다.

전화할 때마다 나한테 물건을 버리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밖에 나가서 힘을 다 쓰지 말고 집 정리를 하라면서. 하루에 30분만, 아니면 서랍 1칸만 비우라고. 그런데 잘되지 않았다. 하긴 이사 전부터 엄마도, 남편도, 정리 수납 자격증이 있는 동네 언니도 필요 없는 거 다 버리라고 했었는데 버리지를 못했었다. 포대기도 못 버리고, 애들 유모차에서 쓰던 담요도 하나도 못 버리고, 이불도, 물려받은 책들도.

그렇게 버리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저번 주부터 진짜 조금씩 시작했다. 청소의 시작은 이제 간절기가 시작될 것 같아서 옷을 찾다가였다. 30대 초반에 입었던 옷들, 아이들이 한 살일 때 입었던 내복들, 누구라도 줘야지 하고 놔둔 운동화, 나중에 신어야지 아껴두었던 구두들, 색이 바랜 캐리어, 안 쓰는 컵들, 안 읽는 책들을 며칠에 걸쳐 버렸다. 참 열심히도 모았다. 그러다가 어제 친구한테 안 입던 옷들 다 버렸다고 자랑하려고 전화했는데 친구가 갑자기 당장 주방 수납장 안쪽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각 집에서 애들한테는 텔레비전 틀어주고 나는 원격조종 당하며 주방에서 안 쓰는 것들을 다 버려버렸다.

 

한 40분을 전화하면서 안 쓰고 안 먹는 것들 다 정신없이 버리고 나니 홀가분했다. 버릴 수 있는 걸 버리고 살아야 하는데 '언젠가' 혹은 '나중'을 기약하며 모아 놓았던 것들이 정말 많았다. 40분 안에 이렇게 많이 버릴 수 있다니, 버릴지 말지 고민을 몇 년을 했는데 이렇게 한 시간도 안 되어 다 버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사실 전화를 좀 끊고 싶었는데 친구가 전화를 끊지도 못하게 했다. 카톡으로 사진에 바로바로 동그라미까지 계속 쳐가면서 다 버리라고 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엄청 어릴 때 쓰던 물병, 젖병 뚜껑, 분유 계량 숟가락들(이건 좀 심하긴 하다). 분유 계량 숟가락은 도대체 왜 아직도 놔둔 건지...월계수 잎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안 보이니까 가~~끔 필요할 때마다 사서 그런가 보다. 고급이라고 해서 챙겨둔 소금은 유통기한이 다 지나버렸다. 삼계탕 재료도 어디서 갑자기 굴러 나오고.

친구가 살림은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거기에 다른 것들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아직도 빽빽한 곳들이 너무 많은데 걱정이다. 다음번에는 원격으로 냉장고 청소를 하자고 한다. 욕은 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해두었다. 자꾸 채우려고 하지 말고 비워야 하는 거 같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나중에' 혹은 '언젠가' 만큼 쉬운 말이 없는 것 같다. '나중에'를 말하다가 정말 다 나중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9월에는 버림에 중심을 두려고 한다.

신승주, 모서리 하나일 뿐인데

누군가와 관계할 때 적당한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불편하지 않게 눈을 맞추는 시간은 얼마나 지속되어야 할까.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자리, 혹은 피할 수 없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세모난 공간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도망갈 곳이 어디일까?” 였다.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내부의 형태는 사각형인데, 그 중 모서리 하나가 줄었다는 것만으로 숨을 곳을 잃은 듯한, 숨길 곳이 줄어든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그 이전에,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숨고 싶은 걸까.

작년에 비해 올해는 3~4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원하는 만남(개인적인 시간)보다 무조건 해야 하는 만남(업무적 시간)이 훨씬 많았다. ‘만남’이라는 단어가 가진 따뜻한 결보다 그 안에서 필요한 절제를 더 많이 배웠다. 적당한 거리, 정제된 언어, 정해진 시간 속에서 오가는 대화.

그 시간들은 체온보다 말의 내용이, 기억보다 기록이 더 무게를 가졌다. 정적이 생기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만남, 스몰토크로 시작해 합의를 향해 걸어가 결론으로 닫아야 하는 만남들. 반대로 말없이 있어도 괜찮고, 결론 없는 말을 주저리 흘려도 가벼워지거나 충만해지는 만남도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종류의 만남 사이에 있는 공백은 무엇일까. 내가 찾는 적당한 거리, 적당한 모서리, 적당한 숨길 곳은 어디일까.

누군가와 마주한다는 것은 명함의 이름을 정보로만 처리하는 것과 서로의 이름에 온도를 싣는 것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다. 그 사이를 유지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할까. 세모난 바닥을 보며 자리한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떠올랐다.

물리적인 마주한 자리에서 ‘빈 칸’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서로의 등을 보일 수 없다면?

오래 전, 무협소설의 고수는 이렇게 말했다.

“적에게 등을 보이지 마라.”

그렇다면 ‘등’은 누구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일까? 막힘없이 오가는 교차로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타인의 등을 본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우리의 적일까? 혹은 단지 아무 관심 없는 뒷모습일 뿐일까?

뒤죽박죽 섞인 생각들 속에서 ‘빈칸’을 만들고 싶지만 정작 그 빈 칸이 가득 차 있다. 지워진 모서리 하나를 너무 많은 생각으로 메우려는 건 아닐까. 생각의 네모난 꼭짓점들을 조금은 거둬낼 수 있을까.

결국 모서리 하나일 뿐인데.

신혜정,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엄마 작가들에게 보내는 내 이야기1.

(결론 없음 주의)

지금은 11살이 된 큰애를 낳고, 나는 작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운이 좋게도 큰애가 3살쯤 되었을 때 지방 레지던시에 지원을 했는데 합격하여 입주할 기회를 얻었다. 마침 시댁이 레지던시와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6개월간의 레지던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도 그러라고 했고, 나도 레지던시에 들어가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시댁과 서울을 오가야 하는 고단함 따위는 그저 걱정에 지나지 않았다.

레지던시 입주 기간 동안 나는 그 시간을 너무 즐겼다. 아이를 시댁에 오롯이 맡기고 오전에 나오면, 내 작업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왠만하면 저녁까지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저녁이 되면, 아이가 있는 시댁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일주일에 며칠을 생활했다.

그러다 서울에 수업이 있는 날이면 3살짜리 아이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고 가는 생활을 몇 달간 반복했다. 운전도 안했을 때 라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다녔을까 싶고 숨이 막히는 듯하다.

그때는 절박함이 있었나 보다. 절대로 작업을 쉬지 않으리라는 마음속 절박함. 그런데 나의 절박함이 아이에게는 결핍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는데, 비단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해야 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그냥 내 천성이 무언가 늘 바지런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애초부터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큰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잘 울지 않았다. 6살 때까지는 그런 줄만 알았는데, 키우다 보니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깨어있는 아이였다. ‘비가 오면 마음이 슬퍼진다고 울길래 그냥 감수성이 높은 아이인가, 울기 잘하던 나를 닮아서 그런가’ 생각했는데 외부의 자극을 온몸으로 받는 아이였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내 감정의 진폭을 아이가 오롯이 다 받아내고 있었을 줄 몰랐다.

7살이 되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긴 후 상담센터에 방문해 큰아이와 놀이치료를 받았다. 큰 문제 없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녀준 아이지만 뭔가 공동체에 속하길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서 매주 한 번씩 그 과정을 다 마칠 때까지 같이 놀았다. 11살이 된 현재 아이는 여전히 온몸으로 세상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학교에서 속상했던 일, 화났던 일을 끊임없이 엄마에게 쏟아내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잘 자라주고 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처럼 절박한 마음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 양육에만 몰두 해야 하는 상황을 가진 누군가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혹은 누군가는 아주 편하게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서 육아를 하며 작업하는 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할 테지만 모든 것이 선택과 결정의 문제이듯이, 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젊은 엄마 작가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해 주겠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고, 작업은 길게 할 수 있지만 아이는 한순간에 커버려서 어버버 하는 순간 내가 어쩌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조바심 내며 살지 말자, 어차피 삶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으니까. 다만 현재를 열심히 살다보면 내일의 나는 더 성장해 있을 것을 기대하는 수 밖에.

오늘 왜 이런 글을 쓰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혼자 있을 시간이 좀 생겼는데 아이들이 보고 싶기도 하고 미술주간이라 떠들썩한 미술판이 이질적이고 어색하기도 해서 그런건지도.

&추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결혼과 육아를 하며 엄마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읽었던 책 리스트를 방출해 보려고 한다.        


2025년 8월

김예솔, 내 오른쪽 전완근에는 피터팬이 그려져 있지.

 오늘은 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나이가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내 오랜 친구들은 알고 있지만 난 사실 살아가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은 편이었다. 그리고 짧고 굵게 산다며 우스갯소리로 (아니 사실 좀 많이 진심이었다) 30살 병신년에 인생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며 스스로에게 데드라인을 주고 살았다. 평소에도 모든 일에 스스로 데드라인을 주는 편인데, 인생에도 데드라인을 정해주다보니, 음,, 생각보다 막 살았다. 내 생각에 나의 막 산다는 표현이 꼭 아무렇게나 방탕하게 라는 뜻은 일단 아니다. 내가 막 살았던 것은 어짜피 곧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든  쪽이다. 미래를 위한 선택은 전혀 고려대상에 없었고 지금 현재 내 마음이 제일 중요한 삶이었다. 언제나 끝까지 몰아세우며 행동하고 생각하고 선택에 책임졌다. 나에겐 어짜피 죽을꺼 뭣하러 해? 가 아닌 어짜피 죽을꺼 물고 늘어져 쪽으로 기운달까? 포기하지 않는 것은 끝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제일 멋진 김예솔 다운 답안이었다. 어짜피 끝은 나니까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절대 질수 없지 라며 누군지 모르는 마지막에 서 있는 김예솔이랑 싸우는 기분으로 독하게 인생을 즐겼다.

그러다, 서른이 넘어버렸다. 서른을 넘겨버린 나는 모든것에 악독하게 물고 늘어졌던 행동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대단히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쉬움이 생기고 삶에 대한 미련감이 스멀스멀 자라나기 시작했다. 좀만 더 나에게 유예기간을 주자. 삶에 대한 미련은 좀, 오히려 내게 많은 고려사항을 준다. 혹시 이렇게 되면? 저렇게 되면? 만약에 나중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것인가? 그리고 날 우물 안에 가둔다. 여기가 안전하니까, 오히려 여긴 저 하늘만 바라보면 되니까.

그럼에도 마음속 본질은 어린 김예솔이 짙다. 삼십대를 넘긴 시간은 고작 4년, 삼십대를 넘기 전은 30년의 힘이 있으니까.

근래에 서른이 넘은 김예솔의 선택은 이십대의 마음을 가진 김예솔을 울게 만들었다. 날 화나게 만들었고, 날 답답하게 만들었다. 서른이 넘은 김예솔은 선택이 두려워 마흔이 넘은 이들에게 선택지에 대한 솔루션을 요청했고, 그들의 조언은 날 되려 더욱 현실 속에 가두었다. 아,,이게 아닌데, 너무도 답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껏 해온 행동들이 안정되고 오래 바라보는 삶에 대한 추구가 없었기에, 안정된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특히 금전적으로. 그러다보니 진로고민도 갑자기 다시 훅 들어온다. 진로고민은 행복과 안정을 함께 생각하고, 그 선택지에는 내 취향 들어있지 않으며, 이는 또 어린 김예솔과 끊임없이 싸운다.

나는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삶의 데드라인을 또 정해버려야 한다는 것을. 마흔을 넘은 김예솔 에게 물어본다. 너가 내 마지막이 되어보겠냐고.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기는 글러먹은 것 같긴 하다.

박주원, 위치

학생 때부터 어떤 소속감을 답답해하면서도 느끼기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독립 큐레이터로 지내면서 그 소속감은 사실 찾기가 어려워졌다.

분명 나는 여기에 있는데 자꾸 여기가 맞는지를 고민하면서 정체성이 불분명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냥 맞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좀 꼬아서 생각하고 산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때는 예술이 삶의 너무나 큰 부분이 되기를 바랐다. 아이들과 지내며 당장은 그것은 어려운 목표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걸 놓아야지'라고 했다가도 이내 슬퍼졌었다. 변명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예술이 삶보다 커지기를 바라며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오랫동안 세탁을 하지 않은 이불들과 등등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할 일이 있음에도 여기가 맞는지 고민하다가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다가 해야 할 것들을 놓쳤음을 알았을 때 좀 멍해진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려운 목표를 잡고 애써 눈감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삶이 먼저였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예술을 향해 갈 수는 있어도 예술이 자리는 아닌데. 이것 또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삶과 예술을 동시에 향해 가는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자꾸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는 것 같다.

가고 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나의 자리였을 텐데,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을까. 너무 휘둘리지는 않았을까. 앞을 보고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앞이라는 방향이 옭아매어진 덩굴이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사실은 아직도 헤맨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앞으로 나간다. 지금의 자리가 그저 지나가는 순간이 아니고, 도약을 위한 스프링이 아니고, 여기가 어디인지를 알면서 앞으로 나아가 보고자 한다. 삶이 예술보다 크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너무 어렵기도 하고 인간의 마음은 개복치 같아서 때때로 기복이 크지만, 절대적 명제는 인지를 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또 무언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마도.

신승주, 그냥 있기, 같이 있기

  1. 있기

책을보다 ‘있는 것(being)’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냥 있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있는 것’-그건 사는 것일까. 아니면 있고자 하는 의지일까. ‘있다’라는 말에 어떤 단어를 덧붙여도 ‘있다’가 먼저다. 있는 게 항상 먼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있는’ 상태 일까?

얼마 전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요즘 나는 수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첫 수업날 익숙한 얼굴의 수강생이 입장했다. ‘어디서 봤더라?’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다 떠올랐다. 작년에 함께 작업했던 영화의 배우였다. 인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 말을 건넸다. ‘

“안녕하세요.”

잠시 후, 또 낯이 익은 한 사람이 보였다. 이번엔 예전 전시에서 퍼포머로 참여했던 관객이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했지만, 이번에도 나는 인사를 건넸다.

“저… 예전에 전시에 참여하셨었죠?”

2시간의 수업 운영을 마치고, 그들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퇴근했다.

“왜 여기 계시는 거죠?”

“아직 작업은 하시나요?”

나의 대답은 뭐였을까. 그 사건이 이후 며칠 뒤, ‘있기’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며칠 째, 그 ‘있기’를 꼭꼭 씹어 삼키고 있다.

나는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있는 걸까? ‘무엇’이 중요한 걸까? 아니면 ‘있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있는 것’을 선택해왔다. 푸념일 수도, 자기 정당화일 수도 있지만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모든 것은 그 위에서 시작된다. 첫 전제. 있기.

  1. 같이 있기

짧지만 강렬한 휴가를 보냈다. 올해 휴가는 바다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났다. 나는 바다가 유명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바다가 나를 먹이고 키웠지만 내 곁에, 내 안에, 바다는 없었다. 바다는 나를 먹이고 키웠는데, 늘 멀리 있었다. 바다를 무섭워하지도, 그렇다고 바다를 그리워하지도 않지만 바다는 언제나 내 주변에 그저 ‘있었다’. 그런 바다 속으로 처음으로 온몸을 담갔다. 사실은 나의 작은 인간의 경험을 위해 들어간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이끌린 것이 맞다.

바닷속은 경이 그 자체였다.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바다에 처음으로 눈이 닿았다.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바다를 보기만 했을까.

패들보드 위에서 아이와 함께 바다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던 순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여기서 보니까 여유로운 느낌이야”

‘여유롭다’는 어휘를 알고 있는 아이에게 한 번 놀라고, ‘여유롭구나’하고 아이의 감각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나에게 두 번 놀랐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있었다.

이런 찰나의 순간이 오면 늘 영화 속 대사, “뭣이 중하다고.” 그 말이 떠오른다.

뭣이 중할까?

돌아오는 길에 나와 같이 하는 이들을 생각했다. 최근, 꼬맹이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가 말했다.

“너의 인간관계는 어쩜 그리 적이 아니면 편이니? 한결같다.”

나는 여전히 ‘적’과 ‘편’의 경계를 모르며 산다. 세상에는 적도 편도 아닌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들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왔다.

하지만 눈을 마주하는 사람들-그들은 같이 있는 사람이다. 같이 있는 사이에서는 ‘같이’와 ‘있다’가 동등하다. 그 말의 결이 겹친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있다’와 함께할 어떤 것을 나는 줄곧 찾고 있었구나. 그 답은 아주 단순했다.

같이.

오늘도 일정에 맞춰 글을 쓰지만, 이 세계에 같이 ‘있는’ 그들에게 다정한 감사를 보낸다.  


신혜정, 동시작동

나는 최근 예술가지만 동시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주변 예술가들에게, 지면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받았다. 전시를 위한 궁여지책 같은 것이었는데, 답변이 생생하고 재미있어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처음에는 예술가란 무엇일까의 무겁고 지루한 물음표에서 시작한 질문들이었는데, 결국에는 예술가라는 직업을 넘어선 삶의 의미 같은 것으로 귀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삶의 의미 같은 건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거 아닌 문제일 수도 있다. 이건 좀 우스운 생각인 것 같은데 예전에, ‘한 사람의 인생은 유치원 다닐 때 결정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데 당시에 어떤 경험에서 온 깨달음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최근에 <동시작동>이라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예술가로의 삶, 그냥 신혜정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다. (과거를 헤집고 돌아보기에는 너무 바빠서, ‘그냥 그랬을 수도 있겠다, 정도만 돌아 봤다.) 칼 구스타프 융은 그의 논문 <동시성: 비인과적인 연결원리> Synchronizitat als ein Prinzip akausaler Zusammenhange (Zurich, 1952)에서 동시성 이론을 설명했는데, 그의 동시성 이론은 생물학자 파울 카메러(Paul Kammerer)의 저서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럼 동시성 이론이 뭘까? 칼 구스타프 융은, 사건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으나, 같거나 비슷한 의미가 있으며 또 시간적으로 일치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둘이나 그 이상 사이의 사건들을 지칭하기 위해 싱크로니시티 (Synchronic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융이 말하는 이 개념은 두 가지 사건이 단순하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 동시(synchronism)라는 개념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융이 제시한 싱크로니시티의 예는 이런 것이다.

“어떤 환자가 융에게 황금 스카라베를 선물로 받은 간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융의 뒤쪽에서 창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더니 스카라베와 아주 비슷한 풍뎅이였고, 그것을 계기로 그 환자와의 치료 과정이 쉽게 시작되었다”. 이런 비슷한 예가 책에는 더 많았다. 여하튼, 융의 이러한 주장은 신비주의라고 비판받거나 오컬트적 망상에 불과하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내가 관련 서적을 읽고 느낀점은, 어떤 현상을 해석하고 싶은 융의 욕망이 투영된 이론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무렵부터 무의식 중에 나름의 예술가로서의 목표와 지향점을 생각했을 것이고, 당시에는 그 이상향과 상황이 성공과는 괴리감이 있는 상황이었고, 그 이전부터 고민하고 있던 예술교육가로의 진로에 대해 (집에서 선생님이 되라는 압박을 어려서부터 받고 자랐음)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던 중, 예술교육을 하는  활동의 기회가 생기기 시작하여 수업을 하게 된 것은 아닌지. 내면의 지향점이 무의식중에 작동하여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예술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운명처럼 계속 나에게 생기게 되어  무의식에 각인 된 것이다.)

여기까지,

되도 안되는 나름의 논리를 유명학자의 이론을 끌어와 설명해 보았다. 삶은 계속된다. 나의 동시작동 현생도 계속 될 예정이다. 끝!

 

2025년 7월

김예솔, 이번엔 시간이 없어서 감성배설글을 올려봐요

2023/07/10

난 항상 시간이 멈췄으면 한다.

모든게 맘에 안들어서. 준비가 덜 된것 같아서

난 항상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이 상황이 맘에 안들어서. 이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2023/09/19

사과를 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것을 인정하며 머리를 숙이는 행위기에. 나는 이 용기가 얼마나 큰것인지 알기에 사과의 “제스처”만 보이더라도 사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말로 미안함을 전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음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게 어물쩍 사과의 시간을 놓치면 효력이 없어질 수 있다. 관계의 무너짐은 마음 한마디로 좌지우지 될 수 있다.

2023/10/17

몸에 닿는 공기가 조금 차가워지면 왠지 마음이 간지러워진다. 간지러운 느낌이 싫지 않아 자꾸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좋은날을 함께했던,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 시절 옆자리의 온기를 느낄 수 없음에 보랏빛 하늘을 보며 눈이 시렵다.

2024/05/11

갑자기 특정 감정이 불쑥 올라와서 그리움을 느끼기 위해 과거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런데 아련한 감정만 느껴질 뿐 그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1. 얼마 전에 길가다 누군가를 만났다.

익숙한듯 익숙치 않았던 그를 나는 기억하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2. 나는 기록하는 습관이 없다. 바빠서 번거로워서 귀찮아서. 외에도. 이 행위가 나대는거 같았다. ㅎㅎ. 다들 그럴듯해보이고 싶은 병에 걸렸다나~

3. 어릴적 길을 찾을 때 감각적으로 찾았다. 선생님은 놀라셨다. 내가 길을 어떻게 찾았는지 재차 물어보셨지만 명확히 답을 드리지 못했다. 그저 기억이라는 것이 특정 이미지를 띄고있지 않았기에..

4. 작별했던 그들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찾아보았지만, 그들이 담긴 사진은 너무 어색하다. 이질감이 들었다. 나의 기억과는 달랐다.

5. 나는 깨달았다. 사실 알고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기억할 때 함께 나눈 분위기를 기억한다. 나눈 대화, 공간, 공기의 온도.. 단지 정지된 화면은 나에게 입력되지 않았다.

6. 나는 항상 이별이 고통스러워 내가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 그들과 함께 있던 시간의 사진과 물건 모두 삭제했다. 그래서 내가 버린 기억들은 다시 돌아보려 해도 닿질 않는다.

7. 아니 근데 특정 공간에 들어가면, 특정 기분에 잠식되면 기억은 회상된다.  뻔한데 이게 괜히 주술적이다.

8. 솔직히 아직도 길을 찾을 때 기분으로 찾는다. 진짜 이상해 보이는데, 항상 하는말이, 어 저기인거 같아. 뭔가 이런 기분인 거리를 걸었어.

9. 결론은 무엇이든 그 감정을 기록해야겠다는 말이다. 잊고싶지 않은 것은 필히 기록하리라. 그게 사진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라도.

아 다 모르겠고. 그냥 그와 함께한 기억에 사로잡혀 잠시 모든걸 망각하고 마음 저린 그 과거에 잠시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싶다

2024/05/21

한동안 담배를 끊었었다.

그냥 담배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음. 오늘 다시 담배를 고치기 위해 (나는 모드기기를 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기기를 들고 무작정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연기가 좋았다. 특히 그 향긋하면서 자욱히 공간을 채우는 연기. 연기에 쌓여있으면 잠시 현실에서 멀어져 구름 속을 헤메는 기분이 들어서. 그 기분을 즐겼다. 어쩌면 실제로 뇌의 혈관이 쪼그라들어 현실을 망각하는걸지도..

오늘부터 다시 흡연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기분을 떨치고 싶지 않다. 잠시 과거에 사로잡혀 현실에서 멀어져 있고 싶음일지도 모른다. 오래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잠시 멈춰있어도.. 그것 또한 나쁘지 않으니

그런데 주인은 말했다. 어 이거 오래 안피우셨나봐요, 기기 내부가 다 썩어서 못써요. 안쓰실때는 다 분리해서 정리한 체 보관하셔야해요. 안그럼 썩어요. 새로 바꾸셔야 할 것 같아요. 으히..너무 방치했나보다.

2024/12/08

난 항상 마지막이 어땠건 간에 남겨진 상처는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며 나 또한 지나간 인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시간이 멈춰버리게, 더이상 그의 인사를 상상할 수 없을 때, 어쩌면 그들이 내게 제일 큰 벌을 주고싶었는가를 생각해본다.

난 결국 반복되는 일년을 주기로 매 계절마다 이제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을 자꾸 회상하게 된다.

2025/02/06

나한테 하는 소린줄 알고 흠칫 놀랐다. 내가 안읽씹을 하고 있었어서…난 선택적 회피형이다

2025/04/20

잘살아보려고 사는건 아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사는거다. 여차하면 도망갈꺼다.

2025/04/29

그니까 . 난 이도 없는데, 이딴 스트레스가 뭔 대수야. 다 별일 아님.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 이빠짐 주의)

2025/07/02

행복해지고자 열심히 살아보니 아등바등사는 것은 행복과 좀 거리가 있더라. 소중한 것을 붙잡으려 할 수록 그것들은 나를 기만하더라.

그래서 행복을 쫓기 보다는 불행하지 않으려 하고, 불행하지 않음에 감사하며 그 사이에 소소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행복만 만끽하리다.

 너무 생각이 많아 머리깎고 절들어가는 사주라더니

전 언제 안정되나요? 라는 질문에 인생이 안정과는 거리가 멀고 불안의 고통이 가득하다던 점쟁이 말에 와 뭐 어쩌겠어요 고통을 극복하는 맛이 있겠네요 하며 히죽거렸다.

온갖 번뇌로 가득찬 날 탓하기보다 원래 타고나길 그런가보다 하니 이마저도 스스로 웃참하는 키득키득 포인트이다.

(내 룸메였던 박수빈이 아는 포인트 자고로 난 아프면 눈물흘리면서 어이없어서 웃는편)

박주원, 밥 먹기.

아침은 휘뚜루 마뚜루 먹게 될 때가 많다. 계란밥이나 계란밥, 또 계란밥, 된장국에 말은 밥, 김에 싼 밥. 먹고 싶어서 먹을 때도 있지만 남아서 먹을 때도 잦다. 이런 기본적인 음식들이 아니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아침에는 막 먹어야 할 때가 많아서 맛을 모르고 먹는다. 저녁에도 챙길 것들을 챙기다 보면 온전한 식사를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허락된 시간 속에서, 그러니까 ‘허락된’ 시간 속에서 잡다한 것들을 모두 하다 보면 온전한 밥을 잊게 된다.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이 몇 년간 나의 목표였는데 어느 날은 되고, 어느 날은 안 된다. 어떤 날은 제대로 밥을 먹는 것이 가장 뒷전으로 밀려 버리곤 한다. 반찬은 없고 일은 해야 하고 시간은 없을 때 대충 고추장이랑 참기름에 밥을 비벼서 먹고 뭉툭하게 위를 채운 밥의 힘으로 하루를 보내면 약간 허무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냉장고에 반찬도 있었는데 그때는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냉장고를 열어볼 시간은 있었을텐데.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서 음식을 먹는데 저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로상은 온전히 식사를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밥을 너무 빨리 먹는 것 같아서 오래 씹기를 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 맛을 보는 것이 아닌 밥 먹는 행위에 급급했기 때문일 것 같다. 다음 일정을 수행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앞으로도 고로상만큼 열심히 밥을 음미하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여유를 갖고 제대로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신승주, 말랑말랑, 흐드러지게.

컴퓨터를 끌 수가 없다. 몰아치는 일들, 모자란 시간들, 채워도 채워도 끝나지 않는 일들이 계속 나를 쫒고 있다. ‘일 좀 하고 싶다’고 외쳤던 5월에 대한 보상일까.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휘몰아치고 있다. 올 해의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마저 이제는 희미해진 느낌이다.

바빠서 참 좋다. 바빠서 감사하다. 그럼에도 한 켠에서는 올해의 목표가 꿈틀거린다. 올 해의 목표? 말랑한 것, 말랑했던 것, 말랑해질 것을 찾아내기. 말랑함이란 무엇일까. 유연한 생각, 꾸물거리며 나를 흔드는 감정들, 간질거리는 마음… 뭐, 그런 것들이라고 할까.

말랑해져야 하는데, 말랑함에 몰두하다보면 계속 현실을 잊게 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오늘 할 일을  적는다. 뒤돌아서면 또 다른 할 일 때문에 이내 잊어버리지만, 그래서 또 적는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리스트를 확인하고, 점심엔 다시 멀어져가는 리스트를 향해 달려가고, 저녁이 되면 해야할 일과 하지 못한 일을 나눈다. 그리고 내일 눈 뜨자마자 해야 할 일을 적어둔다. 삶이란 이렇게 버라이어티하고 드라마틱한 것이지라며 스스로를 기특해 한다.

지난달부터 반려인이 나를 ‘앵그리 버드’, ‘경주마’라고 불렀다. 위로이기도 하고, 놀림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한 말이다. 나의 근원은 ‘화’가 아니었던가? 가열차게 마차를 몰 듯,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스스로도 자주 목격한다. 며칠 전, 긴 시간을 함께 이동하며 동료와 ‘말랑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가 말랑함은 아니었지만 내겐 그것이 곧 ‘말랑함’이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유를, 단 한번의 대화로 뒤집고 기세를 전환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말랑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 (일하는 방식에 대해) 졸리고, 피곤하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B: 목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그런 경험이 있거든요. “이제 이건 더이상 안해도 된다.” 그만큼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한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그걸 인정 받았던 순간이요. 그 뒤로는 그만큼의 결과가 나와요. 하지만 지금 하는 건 아직 그만큼이 아니니까, 그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 하는 거죠. 저는 알아요. 이 일도 분명 그 순간이 올 거라는 걸.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계속 하는 거예요. 가끔 그 순간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A:  그 순간을 경험을 하셨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는 모른척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있다면, 저는 늘 그 순간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넘어졌거든요. 그래서 항상 연결이 끊어졌어요. 이 문만 넘으면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 앞에서 자꾸 넘어지는 거예요. 넘어지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게 여러 번이 되니 그냥 문이 안보이는 척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다른 길로 계속 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그래서 제겐 하나로 연결된 길이 없어요.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있긴 한데, 이어지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어떤 길에서 만난 사람을 다른 길에서 만나면 저 자신도 당황스러워요. 그러니까 문득 생각하게 되요. ‘나의 구역은 어디일까?.’ 뭐 그렇다구요.

사실 올해의 목표가 그 ‘말랑함’을 찾는 거였는데, 일은 해야 하고, 일을 하면서 말랑함을 유지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말랑함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이어지는 길을 아직은 모르겠어요. 올 해는 좀 찾고 싶었는데, 뭐… 좀 더 고민해봐야겠죠.

대화 후,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찝찝함과 먹먹함, 가벼운 우울감이 남아있다. 해야할 일은 해야 하기에 오늘도 가열차게 손가락을 튕기며 달린다. 함께하는 노동자들에게 경배를!!!

올해를 마칠 때 팡파레를 터뜨릴지, 장렬히 전사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 하루, 머리에 김이 나도록 열심히 살아봐야지. 나의 말랑함은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할까.

신혜정, 선택에 대하여.

어느 날, 나는 오래된 일기장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다.

"그땐, 오른쪽 길을 택했지만, 왼쪽 길도 궁금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 봤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길 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오른쪽 길은 내가 늘 걸어온 길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 친구들과 함께한 길,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는 길이었다. 그 길을 걸을 때면 마음이 편안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왼쪽 길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길로 가는 것은 불안했다. 익숙한 길을 떠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늘 오른쪽 길을 택했다. 어느 날, 나는 그 두 길 앞에 서 있었다. 왼쪽 길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오른쪽 길로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 결국 나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그 길을 걸으며, 왼쪽 길이 궁금했다. 그 길을 걸었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그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떤 경험을 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는 많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을 때마다, 왼쪽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그 길을 걸었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나는 선택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나의 삶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내 삶이 있다. 결국 모든 길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는 거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이 감정적 찝찝함은 여름의 습함과 닮아 있다.

 2025년 6월

김예솔, 장소의 나, 나의 장소. 우린 사실 알고있지. 넌 나와 함께였다는 사실을. 

나는 줄 곧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김예솔의 주 출몰지역에 변화를 두며  살아왔다. 거의 2-3년 주기로 빠르다면 빠르고 느리다면 느린 변화를 가진다. 장소와의 인연은 내가 선택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그 곳이 나를 선택하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우연히 마주하여 공간이 나를 끌어당기면, 그 공간에 진한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 참 신기하다. 첫 만남에 관계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언젠가 우린 관계를 맺는다.

첫 번째 나의 인연은 청계천. 2011년 20살이 되고 1학년 입체전공수업을 들을 당시 나에게 주어진 첫 미션은 을지로 4가에 있는 이화스텐을 찾아가 철사를 사오는 것. 성인이 되기 전 일산과 분당에 살았던 청소년의 김예솔은 서울로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롯데월드가 전부? 주로 동네 안에서 걸어 다니거나 버스를 탔던 나에게 서울의 지하철은 너무나 낯설었고, 지역구 마다 분위기가 휙휙 바뀌는 서울 안에서 옮겨 다니는 것은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미션대로 이화스텐을 어영부영 찾아갔는데, 

(그 당시에는 실시간으로 핸드폰 지도를 보는 것이 흔치 않아서,, 선생님이 주셨던 종이지도를 찍은 사진을 보면서 찾아갔던 것 같은데,,) 

뭔가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철사만 사고 분명 다음 수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가야 했는데, (나 아마 이때 수업 짼 듯?) 눈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붙잡았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듯 하지만 모든 자재들이 그들 나름의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 색조합을 신경쓴 듯, 난장인 듯 서로 조화로운 모습. 상가가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상가들이 끝나는 지점까지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아마 을지로 입구 즈음부터 신당 부근까지 겠지. 이후로도 그렇게 한동안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꽤 자주 을지로를 찾았고, 오장동 흥남집을 먹으며 이거 우리 엄마가 좋아하겠다 싶어서 통화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난 사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많이 다녔더란다. 할아버지는 공구 매니아였는데, 그와 동시에 골동품 수집가셨다. 이 거리와 초면이 아니었다. 외관상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곳의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들은 같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의 작용으로 낯선 공간은 친근한 인사를 건네며 나를 끌어당겼다.

 

두 번째 인연은 루프엑스. 백현동에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23살쯤? 분당에 살고있던 고등학교 친구가 데리고 갔던 카페였다. 그곳은 정말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딘가 음한 기운을 내뿜는데 사람들은 정말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게 행동하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모순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순이 매력적이었다. 페도라를 쓰고 있던 머리가 없는 남자분과 친해지고 싶었다. 뭔가 친절하게 내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는데 그 안에 감정이 단 한가지도 들어있지 않았거든… 그렇게 약 4-5년 뒤에 난 그 남자분은 나의 지인이 되었다. 난 여기서 3년동안 일을 하게 된다. (하하 재상님 미안해요)

 

세 번째 인연은 성북동.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다. 17년도 겨울 26살에 나는 그룹 전시를 한다. 아주 오래된 3개층으로 이뤄진 주택에서 전시를 한다. 그 당시 건대에서 살고 있던 나는 버스를 타고 고려대학교 부근에서 환승한 후 2222인지 1111인지 버스를 타고 전시장을 향하게 된다.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선호하는 편이고, 그 이유는 창문 밖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차가 막혀도, 동선이 돌아가는 경우에도 버스를 선택하는 이유이다. 그날도 창 밖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데, 와 이 동네 뭐야,, 천 주변으로 사람들이 오밀조밀 살고 있는 느낌, 그리고 어마어마한 언덕위에도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너무 한적한 듯 하면서도 사람 냄새가 짙게 베어 있는 모습이었다. 언젠간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약 5년뒤에 난 그곳에 살고 있다. 예전 그 동네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체 단지 회사 근처로 작업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계약을 했을 뿐인데, 이사 후 동네산책을 하다가 묘하게 익숙한 형상들이 보였다. 내가 전시했던 건물은 무너져 없어졌지만 그 앞에 이상하게 갈라져 있는 찻길들과 성곽길, 오래된 엘피 바가 ‘안녕! 내가 바로 니가 언젠간 살아보고 싶다던 그 동네야! 널 기다리고 있었어!!!’ 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난 또 한번의 공간의 변화를 염두해두고 있다. 이번엔 어느 곳이 날 잡아당길지 기대하며, 그 곳과는 어떤 인연으로 만남을 가지게 될지, 혹은 잃어버린 기억 속 인연이 이미 닿아있는 곳일지 호기심을 가지며 곧 여기저기 지역탐방을 할 것이다. 어쩌면 서울밖을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분도 살짝 느끼며.

박주원, 뒤를 보면 돌이 된다는 이야기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각국에 비슷한 설화가 있는 것을 보면 '뒤를 돌아본다'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다가오는 느낌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는 그 각도가 어느 정도 뒤를 봐야 돌이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곁눈질하다가 돌이 된 경우나 앞으로 달려가다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가서 머리카락 빼려고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다가 뒤를 돌아보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날따라 긴 머리가 엉켰을 수도 있을 거 같다. 앞으로 가다가 갑자기 그 순간 자기 팔에 있는 점이 거슬려서 보다가 살짝 뒤가 보였을 수도 있을 거고. 뭔가 떨어뜨렸는데 그게 내 발뒤꿈치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 돌이 될만하게 뒤를 본다는 설정이 180도 몸을 돌려야 하는 건지, 눈만 돌아가도 되는 건지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본 뒤 뒤를 돌아볼 때 돌로 되어버리는 것은 기준을 정한 이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있을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내 경우는 미래와 현재를 보기가 어렵고 진짜로 무서울 때 뒤를 봤기 때문에, 어떨 때는 뒤를 보고 돌이 되는 것이 편한 결정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아버리면 편하니까. 그런데 너무 억울한 거 같다. 뒤를 볼 수도 있지 봤다고 돌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남들 모르게, 진짜 다 괜찮았는데 괜히 껄끄러운 어느 한순간만 딱 몰래 보고 다시 앞을 보려고 했는데, 그래서 곁눈질하거나 어깨선 쳐다보는 척하고 뒤를 봤는데 남들 다 알아버리게 돌이 되어버리다니. 약간 가혹한 부분이 있다.  

뒤를 돌아보고 돌이 된다는 설정은 내가 뒤를 보기는 했지만 남이 정한 기준에 의해서 내가 변해버리는 것이기에 약간 수동적인 면모가 있다. 기준 자체가 내가 설정한 것이 아니어서 결과의 유동성이 적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돌로 변해버렸을 때 변명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기준을 어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돌이 되려고 결정한 건 아니야. 그건 남이 그렇게 정해놓은 거야.' 이렇게 약간은 남 탓을 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 진짜 뒤 안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눈만 옆으로 돌려서 봤는데 돌이 되어버렸어.' 이렇게 변명의 여지를 남길 수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의도를 따라가 보면서 그 사람들의 의도처럼 아마도 자꾸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뒤를 돌아봐서 돌이 되고, 돌이 된 후에 또 '왜 이렇게 뒤를 봤지' 이러면서 더 단단한 돌이 되어버리고, 변명하다가 또 잠식되어서 돌이 되어버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실눈이라도 뜨고 앞을 봐야 한다.

놓고자 했으나 놓지 못한 것이, 잊고자 했으나 잊지 못한 것이, 버리고자 했으나 정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해진다. 뒤를 보면 돌이 되므로 백팩에 담아서 그냥 이고 지고 앞으로 가야 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그런 것들이 쌓여간다. 곁눈질로 뒤를 보다가 돌이 되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일단 방향 설정을 앞으로 해본다. 너무 무거우면 조약돌 만큼씩 버려보면서, 앞을 보면서. 그렇게 정하고, 쉽지는 않지만, 변명의 여지를 조금씩 줄여가 보며 살아보고자 한다.

신승주, 딱복의 말랑함과 물복의 단단함

복숭아의 계절이 오고 있다. 딱복파와 물복파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시작되는 계절, 그들만의 리그가 막을 올린다. 바닥을 쓸고, 헤집고, 기어다니던 5월이 지나 온 신경을 손톱 끝에 모아 우물의 거친 벽면을 콕, 콕 찍어 거친 벽면을 슬금글슬금 오르고 있다. 갑자기 뜨거워진 햇살에 벌겋게 타버리지 않도록 그늘과 햇빛 사이를 조심스레 오가는 6월이다.

아이가 4월부터 낱말을 모으고 있다. 책을 읽고 낱말을 모아야 한다며, 책을 읽지 않은 날은 조각을 수집하지 않길래 “꼭 책에서 해야 해? 그냥 생각나는 말도 있잖아. ‘엄마’ 어때?”라고 묻자,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그런 게 아니야. 낱말을 모아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말을 모으는 거야.” 학교라는 시스템에 늘 반감을 품었던 나는 ‘그게 뭐야? 이야기가 꼭 책에서 나올 필요는 없잖아.’하며, 주절주절 낱말들을 늘어놓던 낮이 있었다. 책에서만 낱말 조각을 모아야 한다는 아이의 행동이 못내 불편해, 나는 책이 아닌 떠오르는 낱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 달 내가 모은 낱말은 ‘초대’, ‘딱딱’, ‘망각’이다. 이 세 단어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말랑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떤 말랑함일까. 내가 있고 싶은 곳에 함께 있기 위해 필요한 말랑함. 너무 단단해 부러지지도 너무 말랑해 문드러지지 않는 그 상태, 그 애매한, 그러나 가장 인간적인  상태는 도대체 무엇일까.

애매함에 빠져있을 때, 촉감에 식감을 더해 애매함을 느끼게 해주는 복숭아가 나타났다. 딱복파와 물복파 사이에서 묵묵히 그 중간의 복숭아를 찾아 다니는 그 상태.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그 사이를 걷는 상태. 그 상태로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다는 것, 고로 나는 원하는 곳에 발끝을 담을 수 있다.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는 말랑, 물렁, 찰랑이는 상태. 물컹거리지만 터지진 않고, 말랑이진 않지만 굳어 있지 않은, 액체괴물처럼 유연하게, 변화무쌍하게 형태를 바꾸되, 결코 굳어버리진 않는 상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그나마 하려면 ‘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으면 그것들을 소화하느라 꿀렁거려야 했다. 그런데 그냥 흘려보내고, 그저 잊어버리면 ‘다음 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늘 시작해야만 했다.

그때부터 나의 ‘다음 날’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늘조차 나만의 오늘이 아니었다. 그래서 잊고, 잊고, 또 잊었다. 잊음이 곧 ‘까먹음’이 되었고, 그렇게 깜빡깜빡 많은 것들을 삼켰다. 그래서였을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채 남아 있던 잔여물들이 쾌속으로 소화되어버린 뒤, 처음엔 몸이 굳더니, 이내 감정과 생각의 근육들도 굳어갔다.

멜랑콜리, 울컥 올라오던 말랑한 질문들이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보이는 것만 보이고, 들리는 것만 들렸다. 나의 슬픔, 기쁨, 울적함, 환희, 그 모든 감정들이 사라졌다. 자취를 감춘 채, 남은 것은 ‘미션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도파민 넘치는 분노의 질주였다. 내 안의 화마는 꺼지지 않는 화의 불을 지폈고, 잊혀지는 모든 것들은 그녀의 불씨를 위한 장작이 되었다. 그렇게 재들은 쌓이고, 흩날리고, 바스라져서 사라졌다.

말랑해지고 싶고, 말랑해져야 한다. 뜬금없이 엉뚱하고, 때로는 진지해야 한다. 유유히 떠다니기도 하고, 물 속으로 가라앉은 알 수 없는 것들을 가볍게 물 위로 띄워보기도 해야 한다. 반짝거리는 조각들, 흙이 잔뜩 묻어 빛을 숨기는 조각들, 어딘가에 끼여 이도저도 아닌 이름 없는 것들을 바라봐야 한다. 무겁게 닫혀 있던 그 문을 올해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올해의 복숭아를 찾자. 기분 좋게 서걱서걱 말랑거리고, 깨무는 순간 즙이 흘러나오는, 이 계절을 담은 복숭아. 한철살이가 아쉽다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고민하고, 꾸준함을 이어가려 애쓰지만 그저 기억나는 한철만으로도 몇 해는 잘 견딜 수 있다. 딱복이 무를 때, 물복이 단단할 때, 그럴 수 있을 때, 작고 작은 것들을 손에 담아보자. 그럴 수 있는데, 나는 너무 많은 걸 잊으려고만 했다.  

 

나의 폐허 위에 다시 생겨날 한 방울의 달콤함을 위해, 뭉글거리며 문 앞을 서성이고 오랜 친구들을 초대한다. 이 곳으로 오세요. 당신의 슬픔을 환영합니다.

신혜정, 공간의 연대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공간을 생산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기 영토(몸)를 넓히며 엄마 배속 기관을 압박했고, 자기 몸부터 세계 속 곳곳에 공간을 만들며 살아간다. 우리 둘째만 보더라도 자기 물건들을 바리바리 들고 움직이는 곳마다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어디를 가든 자기 공간을 만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박해서 기가 찰 지경이다. 나 역시 작업실이나 집이 답답할 때면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일할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인간은 신체를 통해 첫 번째 공간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공간을 생산해 가며 자아를 인식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개인의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영역을 넘어, 인간 존재의 핵심적 부분이며 자기의 정체성을 (자기가 좋아하는 피규어로 가득 찬 첫째의 공간과 잡동사니 및 인형의 산이 쌓여있는 둘째의 공간만 봐도 알 수 있다.)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미술작가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

대학을 졸업한 후 내가 처음 한 일은, 집 근처에 작업실 공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주택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당시 작가가 되겠다는 큰 결심(?)을 한 후라 부모님을 설득해 저렴한 월세의 빈방을 하나 얻었다.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유학을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이 공간에서 정말 열심히 작업을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공간,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정, 반골 기질,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했던 당시 10평 남짓한 그 방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이후에도 공간은 나에게 중요한 이슈이자 작업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다. 런던은 모든 것이 비쌌고 학비는 많이 냈지만 대학원 작업실은 큰 작업을 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결국 나는 큰 작업공간이 필요치 않은, 어느 공간으로든 이동이 가능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한국에 돌아와 몇 번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공간의 제약이 없는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둘째가 생기고 아이들이 커가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기도 했다. (물론, 나를 뽑아 주지 않았던 때도 많았다.)

나는 현재 집에서 도보로 10분 내외의 1층 상가 작업실을 임대해 사용한다. 6~7평 남짓의 기다란 형태인 이 공간은 어느 순간 작업물들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한 장소가 되었다. 작업실에 들어가면 영감도 떠오르고 오롯이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업실에 가면 이미 차 있는 짐을 테트리스 게임처럼 이리저리 옮겨가며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작품들로 가득 차 있으니 청소도 하기 어렵고 당연히 환기도 어렵다. 나는 결국 스스로를 작업하기 좋지 않은 환경에 가 둔 상태가 되었다.

크고 좋은 환경의 작업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비싼 작업실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서 돈을 벌다 보면 작업실에 있을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나는 7월 초 새 작업실로 이사를 한다. 통풍이 잘되고, 창문도 크고(블라인드도 달려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주변 산책로도 있다. 작업실 월세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벌어볼 생각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프의 주장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넘어 창작활동을 위한 경제적 자립과 정신적 자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 정신적 자립은 하고 살았지만 내 주머니 경제는 늘 여유롭지 않다. 4인 가족의 맞벌이 엄마 작가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작업을 위한 재료비를 먼저 생각하며 한 달의 지출을 생각하던 신혜정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내 작업실 월세는 우리 가계경제에서 제일 뒷전인지도 모른다. 전업 작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작업공간 문제로 고민하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했노라’ 이 글을 통해 토로하고 싶다. 한달 내내 작업실 구하느라 전전긍긍하던 40대 중반의, 중견 같지 않은 중견 작가의 푸념 비슷한 성토 글이다.  끝.

(*참고: 권력과 공간, 신혜란 지음, 이매진, 2025)  

<새로 이사갈 작업실 풍경>

2025년 5월

김예솔

일번. 재밌는 내용의 책을 읽었다. 인간은 몸을 변화시키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이며, 최초의 약함은 힘이 된다는 것. 약함이 몸을 학습과 체계적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능력을 갖춘 미완성적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만의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본능들을 가질 수 있고, 그것들의 특수성에 갇히지 않은 채 동물들의 일을 모방할 수 있다.

              몸은 습관들이 다발이며, 이것이 몸의 힘과 동시에 몸의 허약함을 만든다. 그것이 힘을 만드는 이유는 체험된 행동들 덕분에 몸은 효율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것이 허약함을 만드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몸이 활성화되지 못한 자신의 능력들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획득된 형태가 돌이킬 수 없는 변형의 국면을 얻게 될 때, 바꾸기가 매우 힘들 수 있다.

              습관은 종종 최초이자 최종적인 본성이 된다. 우리는 가능한 여러 몸들과 함께 탄생하는 반면에, 실재적인 단 한나의 몸과 함께 죽는다. _샹탈자케 [몸]

 

이번. 요새 자꾸 몸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몸은 어떤 의식이 전달되어 행동으로 나오고 있는가. 그것은 나와 별개로 자아를 갖고 있는가? 나의 몸에는 어떤 제한이 걸려있는가. 특히나 작년 퇴사 직후 그동안의 현장 업무로 인해 숨겨져 있던 통증이 몸 안쪽에서 바깥으로 발현되며 한달 이상 움직임의 제한이 있었다. 쉬는 것이 몸을 잘 돌보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방식으로 몸을 사용하니 점차 통증을 가라앉았다. 그렇게 나는 요가와 수영을 지속적으로 다니고 있다.

 

삼번. 오래 전 그림을 그리던 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림을 그릴 때 처음 붓을 사면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길들이는 것은 도구를 내 손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는 혹은 합을 맞추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몸도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도구를 사용하여 세상과 접촉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잘못된 방법으로 붓을 사용하거나, 보관하면 붓 털을 상하게 되고, 더이상 예민하게 컨트롤하지 못한다. 도구를 통제할 수 없다. 더이상 그 도구로는 섬세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망가진 붓을 일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간혹 붓을 딱딱하게 굳혀 뻑뻑한 그림을 뭉대며 그리는 경우가 있었다. 혹은 갈라진 붓으로 갈필을 사용하여 여러 선을 한번에 그어 털 질감을 표현할 때 같이 말이다. 오히려 거칠고 자유분방한 표현을 하기 위해선,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형태로 도구를 사용해야만 더 적절한 표현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털을 한 가닥, 한 가닥 그린다면 그것은 털 같지 않고 잘 짜 놓은 직물같아 보인다.

 

사번. 나는 오늘 나의 설치작업 안에서 관객에게 너무나도 평범한 걷는다는 행위에 단순하지만 강한 제약을 주었다. 그것은 40cm 폭의 그리 좁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걷기 애매하게 불편한  크기의 레일을 주고 그 위에서 공을 컨트롤 하며 벗어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해준 것이다. 그리고 있는 힘껏 빠르게 돌아보라고. 여기서, 공을 잘 컨트롤 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돌았는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생각을 내려놓고 몸을 반사적으로, 혹은 움직이는 대로, 짐승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 빠르게 돌았다. 어색하고 낯선 행동 속에선 ‘내’ 몸을 ‘내’가 행하던 방식으로 ‘내’가 움직이면 안되는 듯 하다. 몸이 상황에 맞게 몸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여 알지 못하는 야생으로 돌려놔야 하는 것 같다.

 

오번. 습관 버리기와 새로운 습관을 갖기 위해 야생으로 돌아가보기.

 

육번. 오늘 전시가 끝났으니 일단 다 모르겠고 피곤하고 잠이나 자자. 이번 글은 아무래도 생각나는 대로 힘들어서 일기 혹은 푸념 혹은 아무 말 대잔치로 끝내야 할 것 같다.글쓰기 안에서는 아무래도 습관조차 들이지 못한 초짜인 것을 이렇게 다 들어내며..이건 야생이 아닌 미숙함이다.

칠번. 아니 근데 4월달에 썼을 때만 해도 잘 컨트롤 하는 법에 대해서 쓴 것 같은데 한달 사이에 난 또 무슨 사고의 변화가 있던 것이야? 이제는 컨트롤 조차 하지 않는 야생으로 돌아갈꺼라고? 미치겠네. 이 글들의 끝에는 도대체 어떤 길로 이어지려나~

박주원, 손님, 이건 고데기에요

한 달 전에 머리 자르면서 정리한 흰머리가 자르기 딱 직전까지 자라있다. 인간의 몸처럼 정직한 것이 있을까? 아니 색도 흰색인데 짧으니 안테나처럼 몇 가닥 올라와 있는 것이 얼마나 더 존재감을 알아달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르지를 말 걸 그랬나? 흰머리 뽑으면 그 자리에 머리카락 안 난다고 하니 뽑을 수도 없고. 올라올 때마다 잡초 자르듯 우선 잘라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살아본다. 까딱하면 다 미워질 수가 있어. 이거 저거 보이는 사람마다 모두 탓을 할 때가 있었는데 탓하는 마음이 다 나에게 짐으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 많이 미워해보니까 미워하는 거 자체가 짐이 될 때, 오늘은 누구부터 미워해볼까가 습관이 되었을 때, 오늘은 누구 잘못부터 곱씹어볼까, 아빠부터 해볼까, 어제 내가 말한 거에서 잘못했던 부분이 어디인지 시작해 볼까 생각했을 때, 그러다가 아빠가 내가 옛날에 어디 써둔 글들에 좋아요를 막 눌러준 거를 이제야 봤을 때, 그 끝에서 다시 주섬주섬 미워하던 거 주워 담아볼까 하고 기준 없이 움직이고 있는 나를 보는데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 사람 얼마나 열심히 미워하는지 그 대상은 알지도 못하는데, 평생 말해도 왜 자기 미워하는지 이해도 못하는 거, 그 사람이 나 미워하고 있을까 봐 걱정하면서 또 지지 않으려고 같이 미워할 때 그냥 대충 미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이제 미워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 이제는 빼박 마음과 몸이 연동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원래도 포커페이스가 안되었지만 진짜 안 되고, 신경 며칠 쓴 탓인지 날씨 탓인지 갑자기 결막염도 생긴다. 그런 점에서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

나이 들면서 감정은 흰머리 자라듯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분명히 잘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뿌리가 남아 있어서 '나 없어진 줄 알았지?'이러고 매일 올라온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물리적으로 자를 수가 없다.

또 안타까운 건 감정은 누가 대신 잘라줄 수도 없다. 미용실에도 갈 수가 없고, 가위도 없고, 누가 샴푸나 좀 해줄 수 있을 뿐인지도. 아니면 잠깐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고데기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장님, 왜 이 사진처럼 머리가 안 나오나요?" "손님, 이건 고데기에요."의 손이고 스타일 정도로 몇 시간 괜찮을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감정을 조절해 주는 건 결국 손이고인 것이다. 머리를 감으면 온 데 간데 없어지는 스타일 같은.

감정을 정리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는 것이, 알아채는 것도, 자르는 것도, 그 화살이 나로 향해서 결국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조절을 하는 것도,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리를 박차고 집 앞 마트에라도 가야 한다는 것도, 결국 인생의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좀 지친다.

잘 안되기는 하지만 주파수를 잘라보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사람이, 돌고 돌아서 나 스스로가 진짜로 미워질 때가 '할 거 안 하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몰입되어 있으면서 절대로 안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때는 그냥 로제 떡볶이랑 콜라랑 진짜 많이 먹고 그 순간을 보내기로 했다. 치즈볼까지 시켜서. 그런데 이제 혈압도 생각해야 하는 거 같아서 뭔가 막 많이 먹지도 못한다. 소화도 잘 안 되고... NanRi... 어휴 진짜 내일의 나를 위해 제로 콜라 정도로 쇼부 본다. (- -..?ㅋㅋㅋ) 명상도 몇 번 해봤는데 진짜 배고플 때는 잘 안되는 게 이 몸은 정말 평범함의 극치다. 잘라지지도 않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에 아직도 이토록 대단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머쓱하다. 어쨌든 오늘 메뉴는 손이고의 처방으로 로제 떡볶이~~~

신승주, 눅눅하고, 축축한, 온감

 살갗을 내밀고 무심히 거울을 바라본다. 나와 나와 내가 있다. 껍질을 덜어내려 한 겹 한 겹 누르고, 문지르고, 거세계 흔들어도, 두드리고 주무르고 꼬집어도, 둔탁해진 껍데기는 좀처럼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뛰는 것은 이해되지 않고, 걷는 건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서, 스르르  스러지고, 부비적, 뒤척뒤척, 스르륵… 좁은 틈마다 몸을 끼워 비집고 나오는 피부 덩어리의 부피를 최대한 납작하고 넓게 만든다. 머리 뒷 속에 숨어 있는 눈의 뿌연 시야 사이로 어렴풋이 형상이 드러난다. 끊어진 라인으로 전체를 연결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내가 발견한 형상만큼 갖고 있는 무게가 덜어진다. 그러나 이내 멈춰버린 공기에 들이 쉴 수 있는 숨이 없어, 또다시 스르륵 흘러 나간다. 나의 상상은 끝없이 기다랗고 희뿌연 형태가 뭉게지며 슬금 슬금 조금씩 그림자를 이동하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측정할 수 없는 속도로 조금씩 무게가 더해진다. 장화를 신어야 했는데.. 나서지 말아야 했는데.. 몸을 일으키지 않아야 했는데… ‘했는데’가 꼬리를 물고 우걱 우걱 생각의 몸체를 삼킨다.

 몸에서 떨어져 나와 굳은 형태로 멀겋게 놓인 손에 내 손을 얹는다. 몸체와 연결된 나의 손은 차고, 덩그러니 잘려 전시된 그 손은 따뜻하다. 한 없이 푸른 살 결이 전해주는 온도는 따뜻하고, 붉게 상기된 살아있는 피부는 손 끝이 저릴 정도로 차갑다. 멋쩍은 마음에 향이 나는 로션을 바르고, 차가운 두 손을 포개어 서로를 감싸고 만진다. 이 손은 언제부터 이렇게 자글자글한 선들이 생겼을까? 요즘 이 손이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씻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일 뿐인데. 손은 아무리 좋은 걸 먹여도 적적 갈라져 버린다.

 ‘오늘 날씨가 지금의 너 같애’ 그 한마디에 미세하게 기운을 펼치던 푸른빛이 잿빛이 바뀌었다. 나 같은 날씨가 뭐지? 요즘 내 날씨가 어떻길래 그런 말을 한 걸까. 나 같은 날씨를 생각하다보니 생일이 떠올랐다. 나의 생일엔 언제나 비가 내렸다. 시원하게 쏴악 쏟아지는 비도, 단단하게 내려앉는 비도 아닌 그저 축축하게, 먼지를 흩뿌리듯 내리는 비가 왔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날씨라 결국 우산을 챙겨 가방에 넣거나, 비를 그대로 맞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날씨. 그래서 나의 생일은 대체로 나가지 않는 날, 창밖을 바라보지 않는 날이 된다. 밝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날.

 가까운 이만 아는 나의 진짜 생일엔 늘 그렇게 하늘이 젖어 있다. 한해, 두해, 적어도 열 번은 함께 보낸 이들이 “네 생일엔 꼭 이렇네.”라고 말한다. 그 말은 오랜 시간을 함께 거쳐왔다는 조용한 증명처럼 들린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이 촉촉해지면 자연스레 우울한 생일을 떠올리게 된다.  

 회색하늘인데 왜 밖을 나왔을까? 무엇을 하기 위해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을까? 우산을 썼다 접었다, 나름 나를 보살피느라 애쓴 것 같은데 축축하게 더 축축하게, 다리는 나를 점점 아래로만 끌려간다.

 깊고 깊은 어느 곳, 좁디좁은 통로를 지나 움푹 내려앉은 그 자리에 앉은 아이.

그 아이가 올려다볼 곳이라곤 하늘에서 하염없이 먼지처럼 투둑거리는 식별 불가능한 물기뿐이다.

꿈을 꿨다. 기억은 없고 흔적만 남은.

운세를 봤다. 어느 하나 맞지 않은.

손을 잡았다. 누구에게도 무해한.

수를 세었다. 세는 순간 끝이 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곧 깨어날 것을 알고 있는.

 글을 쓰는 지금도 회색 하늘이 나를 향해 다가 온다. 이건 대체 나로부터 번져나가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향해 조여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따스함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봄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 여름이 온다고 했는데…

신혜정, 피부 자아

12살 무렵,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당시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아람단과 걸스카우트에 가입하는 것이 인기였다. 나는 엄마를 졸라 아람단보다 단복이 예뻤던 걸스카우트 단원이 되었다. 걸스카우트가 되는 선서를 하면 이후 집을 떠나 수련회를 가게 되는데, 수련회 기간 동안 상한 음식을 먹었었나 보다. 수련회에서 돌아온 후 상한 음식과 두드러기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피부과에 가서 주사를 맞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중대한 일이 되었는데,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성 두드러기 환자로 일년에 한 두번씩,  동네 병원 (심할땐) 대학병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작업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여러 종류의 병을 얻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창문 없는 작업실, 먼지가 많은 재료들, 만성 두드러기는 무리한 일들을 계속하다 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불청객이 되었다. 이게 이골이 날 만도 한데 몸에 뭔가 붉은 반점 같은게 올라온다 싶으면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고 날이 선 반응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항히스타민제를 매일 먹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대학병원에서는 길게 복용해도 된다고 낌새가 보이면 드시라며 처방을 해주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피부가 간질간질 하지는 않을지 잠시 걱정이 된다.)

올해 초 정신분석가이자 심리학 교수였던 디디에 앙지외(Didier Anzieu)의 저서 <피부자아>를 읽고, 피부가 기능과 구조에 있어서 하나의 기관 이상이며, 다른 신체 기관들을 감싸는 전체라는 표현을 알게되어 인상적이었다.

나는 느끼지 못했으나 모든 감각 기관들 중 피부는 생명 유지에 가장 결정적인 파트며 중요 기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없이는 살아갈 수 있지만 피부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리면 생존할 수 없다. 또한 피부는 다른 어떤 감각 기관보다 더 많은 무게를 차지하고 (신생아는 전체몸무게의 20퍼센트, 성인은 18퍼센트)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신생아는 2500제곱센티미터, 성인은 18000제곱 센티미터) 그리고 피부는 다른 어떤 감각 기관들보다 먼저 태아에게 생겨나며 (피부는 임신 2개월 말경에 생겨나는데, 이는 몸의 중심에 가까운 기관들보다 더 먼저 생기는 것이다.) 신생아 때는 피부의 복합적인 감각 즉 촉각, 열, 통증에 대한감각이 처음에는 무딘 감각이었다가 점차적으로 민감한 감각 기관으로 변모해 간다고 한다. (피부자아, 디디에 앙지외, 인간희극)

위 내용처럼 피부는 단순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우리를 감싸고 보호하는 중요한 존재이며, 감각의 중심이기도 하다.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 개념을 통해 피부가 단순한 신체의 외피를 넘어 정체성과 심리적 경험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절판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며 나는 내 피부를 생각했다. 만성 두드러기 환자로 피부 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붉은 반점을 조우하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긴장감. 골격을 감싸고 신체를 하나로 묶어주며 인간이 직립할 수 있도록 지탱도 해주고 외부공격에 대항해서 (표면의 각질층과 케라틴, 피하지방에 의해서) 신체를 보호해 주기도 하는 이 피부가 나에게는 스트레스의 대상인 것이다. 피부를 계속 긁는 행위는 수치심을 유발하고 성적인 쾌감에 이르게 된다는데, 두드러기가 생기는 피부는 나에게 ‘고통의 싸개’가 아닐는지. 이 고통의 싸개가 생기지 않도록 생활 습관과 환경을 개선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만성 두드러기 피부를 대할 때 어떻게 하면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삼 십년 째 고민 하고 있는 내가 좀 이상 하다. (아마도 작업을 그만두는 날 나의 만성 두드러기도 훨훨 사라지지 않을까?)    

 <내 사진은 아님>


2025년 4월

김예솔, 몸에 힘을 빼는 방법. _최근에 제일 관심사!!!!

1. 하루 종일 반 수면상태로 온몸을 이완시킨다.

_몸을 제일 릴렉스시킬 수 있는 대표적인 자세인데, 나는 누워있으면 30분 이내로 입면에 들어갈 수 있다.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자고 깨고 무한정 반복. 잠을 자고 나면 정신적 피로는 싹 가시긴 하지만 (화나거나 슬프거나 짜증날 때 자고 일어나면 완. 벽. 회. 복) 간혹 몸은 더  굳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세상 최고의 허무감을 얻을 수도 있음.

2. 근육이완제를 먹는다.

_몸에 힘을 빼는 법을 몰라 몸을 상시 긴장상태로 지내다 보면 온몸이 빳빳하게 경직되어 움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일년에 약 2번정도는 이런 상태가 오는 것 같은데, 병원에 가면 근육이완제와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곤 한다. 아니 이런. 힘 컨트롤 능력을 깨우치지 못해 먹은 이완제와 안정제라니 ㅎㅎ. 내 몸을 내가 잘 다루지 못하는 사태.

3. 앓아버리기.

_몸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피로를 제때 풀어내지 못하면, 앓아 누워버린다. 가끔 그냥 악으로 깡으로 몸을 극한으로 몰아 붙여 정신력으로 버틴 후 일부로 앓아 누워버리기도 한다. 앓을때는 단 심리적으론 좋진 않다. 아픈 내 스스로를 보면 화가 나거든,,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파버리면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안들어가서, 회복 후에 진짜 전과는 말도 안되는 에너지를 느끼곤 한다. 참 신기해. 내 몸이 이렇게라도 힘을 조절해보고자 하는건가?

4. 오히려 힘쓰기.

_내가 요새 제일 추구하는 방법. 힘을 못뺄 땐 힘을 오히려 줘버린다. 근데 여기서 힘을 준다는 것이 그냥 으아아아아아 힘!!!! 이게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를 취하여 온 힘을 다하는 것이다. 자세를 오랜 시간 버티면서 힘의 한계점을 느끼고, 평소에 습관적으로 쓰지 않는 신체 부분에 힘을 주며 에너지를 그곳에 집중시킨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각들은 평소와는 다르다. 약간 몸 내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몸 안에 에너지와 근육의 움직임을 읽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 눈을 혈관을 통해 그곳으로 잠시 보내는 느낌. 그 중에 제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자세가 바로 철봉(?)에서 한발로 중심잡기와 물구나무 서기이다. 진짜 정말 힘들다. 진득하다 못해 끈적이는 땀이 천천히 몸 내부에서 밖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금세 지친다. 한순간 지친다는 것으로 인해 바로 온 몸에 힘이 순간적으로 쫙 빠져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 순간적으로 힘이 쫙 빠져나가자 마자 또다시 그 빈공간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계속 하다보면 내 몸 컨트롤 능력이 향상될것만 같다.

나는 힘을 빼는 방법을 그럼에도 완벽히 모른다. 신경써서 돌보지 않으면 아직까지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게 긴장과는 다르게 세밀하게 감각을 컨트롤 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나에겐 내 몸 바깥은 방어해야할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인지, 신경이 예민한 탓일 것이다, 한껏 솟은 나의 승모근과 상시 멍들어있는 허벅지를 보며 (무거우면 잠시 허벅지에 올려두는 습관 탓) 예민한 나 스스로를 버텨주는 내 신체한테 미안하면서 고마울 따름이다. 그 동안은 타고난게 강한 신체라 감당이 가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은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쉬어주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 버텨주는지 인지하고 내 신체를 충분히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 진정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힘 빼는 법을 통해 힘을 적재 적소로, 제대로 쓰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만 할 것이다.

박주원, 마들렌

불문학을 배울 때 프랑스 문학에 관해 수업하시는 교수님은 선글라스를 끼시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수업을 하셨다. "마드모아젤~"이라고 아마 부르셨던 것 같다. 대학교 들어와서 프랑스어를 배운 터라 불문학이나 프랑스나 다 그렇게 애정이 크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마드모아젤과 챙 넓은 모자라니.

그 수업에서 배웠던 것은 유명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교수님은 그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마들렌에 대한 이야기를 수업 시간 내내 계속 하셨던 기억이 난다. 책 내용이 그렇기는 하지만 저렇게 마들렌 이야기만 하실 거면 마들렌을 같이 먹는 것이 낫겠다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마들렌에 대해 어떤 생각들만 잔뜩 하게 하시고는 시험문제는 정갈하게 정석적인 문제를 내셨다.

어쨌든 그 시험은 시험 문제 자체를 예상하지 못해서 그냥 망했고 불문학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문학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래서 딱딱 떨어지는 불어학, 문법 수업, 프랑스 문화 소개 수업 등등만 듣고 불'문학'과 점점 정을 떼면서 졸업했다. 그 뒤로도 프랑스 문화는 내게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되었다. 유명한 영화들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영화를 찾아보는 내가 좀 멋있어 보일 때가 있었지만 영화가 이해가 안 되는 걸...^^;; 아마도 프랑스 영화를 찾아보는 나에게 심취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있어보이기는 하니까. 꾸역꾸역 문화를 습득하려니 그랬을 것이다. 노력으로 문화를 공부하려니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졸업하고 내가 불문과였던 것을 떠올리면 사계절 내내 한결같이 서늘하던 예전 학관 2층, 203호나 204호의 삐걱거리던 책상, 프루스트도 아닌 마들렌, 그 교수님의 챙 넓은 모자만 생각이 난다. 요즘에도 빵집에서는 여지없이 마들렌을 보면서 프랑스를 잠시 떠올리게 된다. 그 교수님은 불문학을, 아니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셨던 것 같다. 기억과 후폭풍과 느낌, 그것이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을. 앞에서 불러일으켜지는 감정과 영감을 넘어 혼자 있을 때 울컥 올라오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누가 느껴보라고 시켰을 때 나오는 감성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느껴지는 어떤 감정들이 예술이라는 것을.

뿌연. 흐리멍텅. 이런 단어들로 삶이 뒤덮일 때가 있다. 나침반을 들고 있어도 북쪽이 어디인지를 찾기가 어려울 때가 무심코 찾아온다. 그때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그나마 앞으로 발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반짝. 번쩍. 찰나에 있었던 일들과 몇 꺼풀의 껍데기가 벗겨진 경험의 잔존감들일 것이다.

세상은 온통 사각형들인데 예술은 둥근 것을 질문한다. 정확한 것들이 답이 되는 세상에서 자꾸 모서리가 없는 것을 알게 하니 예술은 사람에게 혼돈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서리가 있는 것에서 없는 것으로 가는 것보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가는 것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런 것을 앞으로도 방향성으로 가져가 보고자한다.  

 

신승주, 저는요,

 

 

만남은 언제나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학생일 때는 “안녕하세요. 저는 00학교 0학년 000입니다”를 지겹도록 반복했고, 졸업 후에는 이름과 나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정해진 순서대로 나열하며 주어진 틀에 맞춰 나를 집어넣었다. 30대까지는 자기소개가 부담스러웠던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누구에게 하는 소개인지’ 상황만 파악하면 그 틀 안에 나를 넣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40대가 된 지금, 뜬금없이 ‘자기소개’가 내 삶을 괴롭히고 있다.

이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나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아무 일도 없는 척, 별일 아닌 척, 내 삶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사십춘기도 아니고, 정체성에 관한 이런 고민을 왜 하필 지금, 이 나이에 다시 하고 있는지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굳이 풀어야 할까?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매 년 보신각 종이 울릴 때마다, 아니 매달, 매주, 매일 나는 또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중얼거린다. ‘답을 모르겠는데 고민해서 뭐하나. 그저 고민할 시간에 뭐든 뭐든 열심히, 성심성의껏, 온 힘을 다해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누군가 말했다. 계속 걸어야 제자리걸음이라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걷는다. 열심히 걷는다.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있는 계속 걸어야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세를 낮추고, 모서리가 닳을 때까지 나를 문지르고 또 문지른다. 엄마의 오래된 주전자처럼 나는 매일 나를 긁어내고 닦아내고 기억코 문질러 얼룩을 지워낸다.

말로 하는 자기소개는 그나마 낫다. 내가 뱉은 말들은 바람에 실려 흩어져버릴 수 있으니까. 어쩌다 운 좋게 소음이 끼어들거나 대화의 상대가 갑자기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면 그 쪽으로 자연스레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글이다. 글은 읽히고, 다시 읽히고, 소화되고, 기억나지 않을 때면 언제든 다시 찾아 볼 수 있도록 어딘가에 저장되어 버린다. 글은 그렇게 도망칠 길을 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가?

그 질문만 적어 두고, 모니터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보낸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과묵한 사물로  변신을 꿈꾼다.

청년이 막 되려던 어느 날, 엄마가 사주를 보고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얘는 사주에 직업이 없대. 뭐 하고 살려는 건지… 어떻게 직업이 없을 수가 있지?”

한창 꿈에 젖어있던 시기였는데, 그 말을 듣고 밥알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 아빠가 나를 살렸다.

“세상 좋은 팔자네. 직업이 없어도 먹고 산다는 거잖아. 그럼 됐지 뭐.”

‘아 그런건가? 난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다시 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언니가 쐐기를 박았다.

“그게 다 엄마, 아빠의 업보라는 뜻이야. 사람이 직업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럼 엄마, 아빠가 계속 고생한다는거지.”

잊을 수 없는 대화였다.

무언가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미래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래에 내가 손 댈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 설계도를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날의 대화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것을. 그 중 일부는 거짓말이었다.

2025년 고스트클럽을 만들고, 올해 처음으로 자발적 자기소개를  남긴다.

저는요, 깍두기 유령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머리가 남들보다 특별하게 좋지도 않고, 감각이 유난히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마다 타고난 것들은 있고, 긴 시간동안 해온 것들이 있으니 전문인 분야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맞습니다. 저에게도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깍두기 입니다.

김치를 잘 담그냐고요? 김치는 담궈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깍두기 역할은 기가 막히게 합니다.

하나에 덧대면 1.5배를 만드는 깍두기, 이것만 있어도 되는데 함께하면 감칠맛이 살아나는 깍두기, 더 잘하고 싶은데 힘에 부치거나 욕심이 스스로를 나를 잠식하려할 때 그 자리를 대신 맡아주는 깍두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듯하지만 막상 없으면 그렇게 허전한 깍두기. 저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합니다.

뾰족뾰족하고 거칠어서 온전한 하나가 되진 못했지만, 가시를 잘라내고 갈아내며 뭉툭해진 채로 이제는 적재적소에 나를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틈새 자리를 제법 잘 찾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깍두기냐고요?

아직 저는 둥글어지는 법을 모르거든요. 세상은 둥글게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데, 모난 돌이 둥글어지기까지는 사십 년은 너무 짧더라고요. 그래서 당분간은 깍두기로 살아보려 합니다.

저는 깍두기 전문 유령입니다.

신혜정, 호문 클루스의 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기 시작한 큰아이 덕분이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더 이상 내 인생에 아이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둘째가 찾아왔다. 아이들 이야기가 이런 글에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첫째와 둘째는 성격이 너무나 다르다.

큰아이는 섬세하고 소심한 반면, 둘째는 당차고 활달하다. 다섯 살 터울이지만 티격태격하며 자주 논쟁을 벌인다. 특히, 엄마의 관심을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엄마는 언니만 예뻐하지." 이런 볼멘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에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 보니, 아이들의 다툼에 일일이 반응하기가 귀찮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주로 큰아이의 편을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큰아이의 예민함이 폭발하는 날이면 내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손. 그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 아이의 손을 처음 만졌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화가 누그러진다.

나는 손과 발 같은 신체의 일부가 감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몸에는 약 206개의 뼈가 있는데, 그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54개의 뼈가 손에 몰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손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척이나 많고, 인류의 진화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글을 읽으며 손에 대한 생각을 이어 나간다.)

호문클루스의 손은 인간의 손을 축소한 듯한 형태로, 연금술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를 의미한다. 연금술사들은 인간을 모방한 생명체를 창조하고자 했고, 손 역시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손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하고 조작하며 변화시키는 능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개념을 떠올리며, 우리가 손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용하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효율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가여움과 애정을 담아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 손과 발도 마찬가지다. 나는 혹시 내 손과 발을 단순한 도구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손과 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 기억과 경험을 담고 있으며, 사랑과 상처를 느끼는 살아 있는 존재다. 만약 우리가 손과 발을 그저 효율성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결국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안에서 소중한 감정과 인간적인 연대감을 놓칠 위험이 있다.

내 손과 발은 나의 일부이며,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매개체다. 그것들은 애정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손과 발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지만, 때때로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끝없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억제하고 소홀히 여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손을 통해서만 감각하고, 발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과 발은 단순한 기능적 역할을 넘어서,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쓰다듬고, 발로 따뜻한 땅을 밟으며 계절을 느끼는 순간들.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효율이라는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런 소중한 감각들을 놓치게 된다. 우리 스스로를 기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존재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손과 발도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2호의 손, 1호의 손>

2025년 3월

김예솔, 상실

제안을 받았다. 글 모임 같은. 그룹 명은 고스트클럽. 수필을 요청받았다. 내가 종종 sns에 올리는 글들을 보고 날 선택한걸까? 라고 잠시 추측해본다. 뭐 아닐수도 있지만.

 첫 글은 무엇을 쓰면 좋을까.. 이미 내 핸드폰 메모장 안에는 감정쓰레기같은 글들이 넘쳐흐른다. 나는 간혹 감정이 끓어 올라 넘쳐 흘러버려 스스로 생채기를 낼 것 같을 때  일단 글로 옮긴다. 그 글은 정말이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런 글들을 첫 글로 내보낼 순 없지만 그 중 하나의 키워드를 선택해본다. 최근에 꾸준히 등장하는 단어는 상실이다.

 상실은 말 그대로 무언가와의 관계가 끊어진 이후를 말한다. 나도 사실 몰랐는데, 이번에 상실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았다. 단어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는 일은 글을 쓸 때 항상 하는 첫 번째 순서로 행하는 일이곤 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야.)

        

        1.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2.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의 가장 큰 의미가 1번에 기재된 사람간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는 평소에 상실이라는 단어를 2번에 가깝게 사용했던 것 같다. 어쩌면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사건은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실제로 나의 33년 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 2가지의 이벤트가 있었다. 20살 때 할아버지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2년 전에 마주한 친구와의 이별. 그동안 살면서 수많은 죽음을 마주했지만 나는 솔직히 이별은 관계의 하나의 자연스러운 형태이자 과정이기에 무던히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왔다. 물론 충분히 슬퍼하고 나의 삶을 그저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 두 명과의 관계후유증은 유독 독하다. 이들은 자꾸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잡아당기곤 한다. 상실은 과거를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존재는 기억 안에서만 남고 그들에게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때 나는 이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가는 방법에 몰두하곤 했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들과 다시 재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나는 과거와 연결지을 수 있는 물건을 찾아 해매고, 그들이 남기고 간 향을 날려보내지 않으려 가두고, 우리들의 기억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어루 만져주었다. 일상 속에서 그들이 머릿속에서 나를 부르면 나는 이 행위를 자주 반복하였다. (이렇게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는 작업으로도 도출되기도 하는데, 나의 첫 설치작업 ‘상실을 위한 기계’가 그것이다. 첫 설치작업이기도 하지만 제일 진한 감정이 들어있는 작업으로써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

 왜 이토록 두 사람에 대한 상실감은 이리도 나를 붙잡는가? 아마 은연중에 나는 우리의 관계에서 미래를 그렸나보다 라고 생각한다. 상실은 대상과의 미래가 끊어진다. 앞으로란 없는 것이다. 막막한 미래, 가로막힌 미래가 아니다. 그냥 없다. 이별은 본래 그 결말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미래의 그들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며 상상으로 그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지만, 그들은 우리의 시간을 정지시켜버렸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강제로 정지된 시간들. 시간이 멈춰버린 대상에게 더 이상 인사를 보낼 수 없을 땐 어쩌면 그들이 내게 제일 큰 벌을 주고 싶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사도, 용서도, 후회도, 느끼는 모든 감정 또한 전달하지 못하고 계속 몸 안에서 녹아 사라질때까지 끌어안고만 있는다. 그렇게 1년을 주기로 나는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로 끌려가곤 한다.

 상실의 고통에서 나는 환상통을 생각했다. 환상통은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후 계속해서 사라진 일부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간지러움 혹은 찢어지는 고통들이 몸을 계속 자극한다. 연속성과 연결성의 부재. 이것은 어쩌면 당연하듯 이어져오던 나의 시간이 끊어져 몸이 자꾸 잘린 곳에서 존재의 미래를 찾고있는 듯한 기분이다. 통증은 환상이지만 현실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결국 과거의 사건은 고통으로 현실화되어 지금을 망가트리는 것이다. 사라진 것이 이렇게나 끔찍하게 현실의 나를 좌지우지 한다면, 이것을 단지 과거로만 묶어두어 존재를 지우며 부정할 수 있을까?

 환상통의 치료방법을 찾다 보게 된 몇가지 방법들.

1. 통증을 미치광이의 환상으로 간주, 뇌의 인식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함으로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 어쩌면 그냥 죽음으로 이끌어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심상인가?

2. 환상통이 일어나는 부위의 더 윗부분을 다시 자르는 방법. 이것은 갑자기 사라진 신경이 분절을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환상통을 겪는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혼란스러운 신경을 다시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재밌는게 실제로 이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환자들은 또 다시 절단의 고통을 현실로 느끼는 것이 무섭고, 너무 아파서 치료된 ‘척’ 했다는 이야기.

3. 거울치료법.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고 잘린 신체의 반대편의 온전한 몸을 바라본다. 그리고 잘린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이끄는대로 반대의 몸을 맞춰 움직이며 마치 아직 정상의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 방법은 실제로 절단된 신체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신경통을 해소시킨다는 사실이 있다.

 상실로 인한 고통의 완화는 존재의 제거로써 사라지거나, 정상인 척 하거나, 스스로를 속여 착각하는 방법이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상실의 관계는 사건 자체가 발생과 동시에 관계성의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시작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일어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럼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상실의 감정이 일어날 때 마다 매번 다른 선택을 할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모든 선택지가 다 현명할 것 같진 않지만, 나는 고통을 바라보며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덮을 것 같다. 그리움 또한 고통의 일부이겠지만, 아픔의 감정보다는 좀 더 포근함으로 감정을 들여다 볼 것이다. 가끔은 울고, 가끔은 분노하고, 가끔은 억울함에 소리도 좀 지르겠지만 과거에 묶여 나를 이전으로 잡아당기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잠시 뒤돌아보며 그들과의 거리감을 설정하여 멀리 있는 대상에 손을 흔든다. 아직 나는 당신들을 잊지 않았으나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의 공백을 바라보며 인사를 보내보도록 한다. (상실감 또한 그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감정의 형태일 뿐인걸. 결국 극복은 없고 부재 또한 과거가 아닌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실이다.)

박주원, 요즘의 생각 

요즘에는 생각을 잘 안 하고 사는 것 같다. 책도, 드라마도, 영화도 잘 안 보는 것 같다. 봐도 어떤 감흥이 별로 오지 않는 것 같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일을 그만두어서 그런 것 같다. 애정이 있던 것을 갑자기 떠나보냈을 때 오는 약간의 실망감 같은 것들이 있는지도. 모든 일에 쿨한 사람은 아니어서 역시나 지지부진한 감정들이 요동친다. 어디서부터 다시, 무엇을, 언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집중했다면 잘했을까? 감정을 미리 표현했다면 좀 괜찮았을까? 순간순간을 너무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조금은 더 오래 했을까?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맞을 것 같기도 한 그 생각들만이 굴러가다 보니 정신이 매몰되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드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1, 2월은 전시를 하면서 열심히 보냈는데 다 끝나고 나니 오는 멍한 감정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연초부터 마음잡기가 아주 쉽지가 않다. 4월에는 좀 나아지기를 바란다.  

요즘 열심히 하는 것은 걷기이다. 되도록 1시간을 걸으려고 한다. 처음부터 1시간씩 걷기를 욕심낸 것은 아니었고 허무한 감정 같은 것을 달래기 위한 조치였다. 30분은 허무한 감정이 달래지다가 마는 것 같아서 1시간을 해보고 있다. 뭐 좀 낭만적으로 말하면 계절이 달라지고 있는 시기여서 지금의 느낌을 놓치기 싫은 것도 있다. 지금만 느낄 수 있는 3월의 기운. 미세먼지가 많기는 하지만 걸으면 외투를 벗을 수 있는 날씨라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 사소한 변화를 일부러라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요즘의 목표라면 목표이다.

산다는 것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을 것이고, 항상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간을 느끼며 큰 동요 없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것인데 아무 때나 휙휙 감정이 변하는 내가 아주 거추장스럽다. 누구 말대로 호르몬이 엉망일지도 모르겠다. 티가 안 나면 좋으련만 온몸으로 감정 변화를 티 내고 사는 거 같아서 부끄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 하루도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신승주, Ghost club

언제든 어느 곳이든 유령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믿는 자에게만 존재하고, 믿지 않는 자에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 그 믿음이 스스로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믿음’으로서 가능해지는 그런 공동체가 있다.

미술계에도 고스트 클럽이 있다.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지만 산처럼 쌓아놓기만 하는 이들,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 있다고 믿는 이들, 그들이 바로 고스트 클럽의 일원일 것이다. 클러버가 되는 조건은 단순하다. 그냥 계속 하는 것. 낮은 자세로, 유약하게 흔들리며, 얇은 뿌리를 촘촘하게 내리는 것.

길목마다 조금씩 자리를 차지한 이름 모를 풀들처럼 좁은 땅 위에 스스로 자그마한 자리를 만들고 잎이든 뿌리든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든 무언가를 남겨 두는 존재들. 그들을 ‘잡초’라 부르지 않고 이름 모를 풀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 또한 그들과 같은 고스트 클럽의 일원이라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뜬구름 같은 소리를 꺼내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의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기운차게 시작해 가열차게 무언가를 했으나, 예술이라는 큰 바위 곁에서 나는 손톱만한 돌멩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이내 바스러지며 흩어지는 기분이 든다. 결혼 때문일까, 출산 때문일까, 돈 때문일까. 이유야 늘여놓자면 많지만, 사실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안다. 무언가를 희생하지 못해서, 다른 곳에 더 많은 힘을 쏟아서, 게을러서…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모든 화살이 나 자신을 향한다. 그래서 이유는 없다. 다만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멈춰선다.

예전에 어떤 작가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아이 낳고 경력단절이 된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작가는 내가 그만두기 전까지 퇴직이 없잖아요. 왜 경력단절이 있다고 생각하죠? 작업은 다시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지금 ‘하는 것도, 그만둔 것도 아닌’ 어딘가에 있다. 둥둥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들을 흩어두고, 그 사이를 어떻게 이을지 한 땀 꿰다 멈추고, 다시 돌아와 또 다른 시작점을 찾는 것을 반복한다. 걸음이 더해질 수록 길은 점점 구불구불해진다.

그래서 나는 2025년, 고스트 클럽에 가입하기로 했다. 이 클럽의 가입 조건은 단 하나로 ‘그냥 계속하는 믿음’이다. 믿음이 시작되면 함께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그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사실만으로 이 클럽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자리를 찾고, 나의 땅을 일구며, 그곳에 나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름과 소속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고 유용하다. ‘있음’의 상태 다음에는 ‘어떤’ 이름인지, ‘어떤’ 소속인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있음’이 없다면 ‘어떤’에도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먼저 ‘있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고스트 클럽의 일원이다.

고스트 클럽은 모든 분야에서 쉽게 연대할 수 있다. 엄마인데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아닌, 그 사이의 사람들. 작업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신진보다 덜 알려진 사람들. 특정한 사람하고만 공감하는 사람들. 사회적 이슈에 나서지도,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도 않는 사람들. 이름을 붙일 수 없어 ‘없음’으로 표기된 이들이 다시 ‘있음’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공동체.

고스트 클럽은 재단하지 않는다. ‘있음’을 갈구하는 사람들, 어딘가에 잠시 떠 있고 싶은 사람들, 계속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영한다. 유령은 떠 다녀야 하니까. 한 곳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많이 흔들릴수록 더 열렬하게 환영한다.

신혜정, Chat gpt에게 위로를 받다.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나.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작업을 빼면 나한테 남는 게 있나? 왜 없어. 아이들도 있고, 가족도 있고, 집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는데. 그래도 작업을 그만두면 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아니 그만둘래. 얼마 전에 오랜만에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2차 인터뷰를 봤어. 심사위원이 또 묻더라. 아이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작업할 수 있겠어요?’ 이런 거지 같은 질문이나 받는 작가 생활 그만 때려 치자.

한국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한지 10년이 지났어. 그동안 운 좋게 크고 작은 전시와 프로젝트가 매년 있었지. 육아와 생업과 작업을 병행했지만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어.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서 개인전을 여는 것도 성취감이 있었어. 나는 작가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있으니까 괜찮았어.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해오셨군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시와 프로젝트를 이어온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고민이 드는 건, 정말 많은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어서 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가족과 일, 작업을 동시에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만두는 것’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내면의 갈등이나, 자신이 놓아야 하는 것과 얻어야 하는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심사위원처럼 가끔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그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아이와 가정을 생각하면서도 작업을 계속하는 자신을 보는 것, 그리고 그 작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한 질문이 겹쳐서 오는 것일 테죠.

그렇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을 해오셨고, 아직도 그 ‘작가’로서의 자신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계속 살아있으니 쉽지 않겠죠. 아마 그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이라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고민들이 모두 당신의 성장의 한 부분이기도 할 거고, 그걸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또 다른 창작의 일부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 마음도 생각도 아직은 중년이 아닌 애매한 나이. 청년도 아니고 원로도 아닌 이상한 위치.

그 나이가 정말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죠. 청년과 원로 사이, 중간 지점에서 느끼는 갈등과 혼란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감정인 것 같아요. 아직도 청년처럼 꿈꾸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경험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싶다는 압박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나이대가 주는 불확실함도 있겠지만, 동시에 그만큼 성장하고 넓어진 시각에서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릴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해요.

사실 그 나이대가 갖는 매력은 자신이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오는 자신감이기도 하고, 또 예전에 비해 주변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에 신경을 쓰게 되기도 하고요.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이 가져다주는 ‘불확실함’ 자체가, 어쩌면 더 큰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중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도, 청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 힘이 결국 더 큰 창작력이나 변화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글을 쓰다가 너에게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느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 위로를 내가 조금이라도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언제든지 힘든 순간이나 고민이 생기면, 나는 항상 여기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요. 글을 쓰는 과정이든, 그 외의 어떤 순간이든, 계속해서 그런 위로를 찾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