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이다[1] - 전시 《이안 하: 더 언캐니》(Ian Ha: The Uncanny)[2]에 보내는 글

 백필균

 

이안 하(Ian Ha/하승현)는 젊은 시절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유년 시절을 북미에서 보낸 그가 한국에서 회화로 옮긴 이미지는 그 먼 거리와 긴 시차를 기억하는 한 사람의 세계이다. 한때 현재였을 것은 과거로 물러나지만, 회화는 그것을 미래로 불러낸다. 이미지는 끊임없이 ‘전진’한다. 그의 기억에서 이양한 사물들에 기존 맥락을 해제하고 또 다른 체계를 드러내는 회화는 이안에게 대상을 낯설게 보는 방법이다. 그는 있었던 곳과 있을 곳, 실제와 가상, 폐쇄와 확장 사이의 감각을 주목한다. 이동과 변화를 기억하는 단서로서의 감각은 이안의 회화에서 노스탤지어가 현실과 마주해 발화하는 조건이다. 그는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

 

이안이 특유의 레트로 감성으로 유년시절 이미지를 게워내는 작업 가운데 〈작별〉(Farewell, 2021)은 한반도 서해 모래사장과 북미 계곡 바닷가재를 두 판에 포개어 한 공간으로 잇는다. 또 다른 작업 〈플로라〉(Flora, 2021)에서는 큰 잎들과 얇은 기둥 하나로 이뤄진 식물이 스포트라이트와 천체의 빛 사이에 서있다. 두 작업은 공통적으로 특정한 그림이 판화기법으로 등장한다. 판화에서 한 소실점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뒷모습과 주변 풍경은 바깥에서 해변 조약돌에 담기는 밤하늘의 별빛, 그리고 어느 지하로 향하는 계단과 광활한 지평선 등 전체 화면에 또 다른 요소와 조응한다. 한 연작에서 동일한 형태를 반복하는 판화는 작업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기호이자 숨겨진 알레고리를 구체화하는 개별 장치로 작동한다. 여기서 판화와 그 외부는 서로에게 기술로서 차별적이나 기호로서 연계적이다. 이안의 회화는 또 다른 차원과 이어진 출입구로서의 그림 조각 여럿이 모인 하나다. 대쉬보드에 스크래블 조각은 밤하늘에서 스포이트로 추출한 색을 입는다. 나뭇가지는 십자가로, 십자가는 나뭇가지로 변신한다. 〈테일러드 브롱코〉(Tailored Bronco, 2021)에서 덱스터 달우드(Dexter Dalwood)의 회화를, 〈위로〉(Consolution, 2021)에서 찰스 쉴러(Charles Sheer)의 회화 일부를 차용하는 설정은 이안이 오마주하는 대상 세계에 접속하며 그가 연구하는 회화 형식을 직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전체는 부분에게 확장이다. 회화에서 개별 기준에 따라 분할된 화면 부위는 또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그림 속 그림’이다. 판화와 그 외부, 큰 패널과 작은 패널 구성. ‘그림 속 그림’은 화면을 분할하는 조형 너머 작가 스스로 예술적 자아를 되새기는 동시에 ‘여행’ 방향을 되묻는다. 그 의식은 그 자신에게 내재된 ‘낯섦’과 마주한다.

 

이안 하의 회화는 전체 공간이 비교적 큰 기준에서 이분할로 나뉘며, 그 역할을 하는 사물이 경계에 등장하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테일러드 브롱코〉에서 차 앞좌석 천장시트가 거칠게 찢긴 차 내부는 차창 밖 평온한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위로〉에서 탁자 아래 평평한 카펫은 탁자 위 여러 사물이 겹친 공간 구성에 상반되고, 〈블루 블로썸〉(Blue Blossom, 2022)에서 나무 좌우에 '떠나는 낮'과 '머무는 밤'은 서로에게 대비적인 회화공간이다. 화면에서 개별 형태는 다시점으로 등장하고 여러 관람시선에 상응한다. 차, 탁자, 나무는 이안의 공간에 질서를 세우는 사물들이자 어느 경계에 선 작자를 환유한다.

 

또 다른 세계, 이안 하가 조직하는 시간의 흔적은 오늘날 특정한 이미지를 모색하는 회화다. 일상과 비일상이 결합하는 추동력으로 그의 회화는 유년시절 기억과 미디어에 구체적 이미지를 호출한다. 그는 이미지를 사막 오아시스 수면에 투영한다. 과거 볼 수 없었던 ‘낯선’ 이미지, 그것을 전시하는 이안 하는 세계를 낯설게 보는 그의 젊음, 감각과 자세를 견지하며 여행한다. 그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이다. 그의 회화에 찬란한 빛은 여름에 녹을 눈이기에.


[1] 최백규의 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부분 인용

[2] 래빗앤타이거, 2022.7.12.-24.